엘리아데의 <세계종교사상사> 종교학 이야기
2009.10.15 15:57 Edit
엘리아데의 <세계종교사상사>
대담자:이 길용(독일 Marburg대학교, 종교학 박사)
이 호영(영국 런던대학교 S.O.A.S., 철학박사)
최 수빈(서강대학교, 종교학 박사)
엘리아데. 참으로 쉽지 않은 이름이다. 80평생 그의 인생이 짧지 않고, 그 긴 생애 동안 그가 해놓은 일들이 또한 만만치 않다. 이렇게 쉽지 않은 인생이 엘리아데인데 그가 평생의 역작으로 구상하고 또 저술한 『세계종교사상사』에 대하여 무언가 평을 해야 한다는 것은 무척 곤란하고 난감한 일이라 할 수 있겠다.
한국에서의 엘리아데는 참으로 복 받은 사람이다. 이런 말을 하면 최근 들어 엘리아데 다시 보기 움직임이 일고 있는 한국 종교학계의 경향이 못내 마뜩찮은 몇몇 분들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엘리아데는 한국 땅에서는 적잖은 혜택을 누리고 있는 몇 안 되는 ‘세계적인’ 종교학자 중 한명이다. 이 말이 의심스럽다면, 지금 당장 외출하여 서점에 들려보시라. 그리고 그곳에서 엘리아데란 이름이 박혀있는 책들을 손으로 꼽아보시라! 아마도 당신의 열손가락만으로는 충분히 부족할 것이다. 번역된 그의 책들은 줄잡아 20여권을 헤아리며, 거기에는 학술서적, 소설, 그리고 논문집 등이 총망라되어있다. 이제 그의 마지막 역작이라고 평가받는 『세계종교사상사』 3권까지 젊은 종교학자들에 의해 완역되어 나왔으니 국내에서의 엘리아데에 대접은 극진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솔직히 종교학 분야에서 엘리아데만큼 융숭한 대접을 받은 학자가 또 어디 있겠는가. 그러다 보니 국내에서 종교학이라는 분과학문을 접하게 될 때 제일 먼저 만나는 이름이 바로 이 사람, 엘리아데이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이 그의 이름 앞에는 20세기 최고의 종교학자라는 별칭이 파스처럼 붙어 다닌다. 물론 엘리아데는 위대한 종교학자이다. 그리고 종교학을 세계화시키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장본인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엘리아데가 그가 속한 분야에서 오로지 칭송만을 받는 그런 사람은 또한 아니다. 때문에 이 땅에서도 그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은 반드시 필요한 덕목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 점에서 작금 한국 종교학계에서 시도되고 있는 엘리아데에 대한 재평가는 있어야 할 일이고, 또 그렇게 짚고 넘어가는 것이 학문의 발전상 필요한 것이라 할 것이다. 이에 대하여 못마땅한 기분을 피력하는 것이 오히려 더 문제라고 볼 수도 있겠다.
여기 엘리아데에 대해서, 그리고 그의 책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젊은 학자들이 모였다. 성큼 코앞에 다가온 겨울의 위세 때문에 따뜻한 커피가 그리워질 때, 각자 강의를 마치고 한 자리에 모여 잠시 엘리아데와 그의 역작에 대한 소감들을 나누어 보았다. 우선 우리는 번역되어 나온 책의 제목에 시비를 걸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제목이 주는 여러 의미들
길용: 책에 붙어있는 한글 제목이 『세계종교사상사』네요. 본래 이 책은 불어로 쓰여졌는데, 거기에 달려있는 제목은 “Histoire des croyances et des idées religieuses”이죠. 직역해 보면, 『종교적 신앙과 이념의 역사』 정도겠네요. 이것이 영어로 옮겨질 때, “A History of Religious ideas”가 되었고, 다시 한국어로는 『세계종교사상사』가 된 셈이네요. 일본어 번역도 이미 나와 있죠?
수빈: 예. 일본어 번역은 『세계종교사』로 되어 있구요. 일본어의 경우는 엘리아데 사후 그의 제자들이 펴낸 나머지 부분, 즉 『세계종교사상사』의 4권에 해당하는 부분까지 이미 번역되어 있습니다. (그렇다. 엘리아데는 자신의 역작인 이 역사서를 총 4권으로 기획하였다. 하지만 1986년 그의 죽음이 그 계획을 멈추게 하였다. 하지만 그의 제자들이 모여, 남겨진 엘리아데의 자필원고들과 수업용 노트 등을 참조하여 스승의 필생의 소원을 이루어 놓았다.)
호영: 그런데, 여기서 단순히 <사상사>라 해버리면 본래 엘리아데가 생각하고 있었던 <종교적 이념>이라는 부분이 조금 희석되지는 않을까요?
길용: 그렇죠. 그 부분이 조금 문제가 되죠. 그래서 아마 일본 학자들은 그냥 『세계종교사』라는 명칭으로 가지 않았나 싶어요. 사실 엘리아데에게 있어서 <idea>는 무척 중요한 개념이잖아요. 어쩌면 그의 사상을 관통하는 주제이기도 하고, 그가 생각하는 종교의 본질적 요소를 담고 있는 개념이기도 하니까요.
수빈: 엘리아데는 문화를 ‘성스러움’이라는 카테고리로 읽어내야만 한다고 보죠. 엘리아데는 그렇게 역사 속에서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성스러움의 나타남, 즉 성현을 환원적으로 보려고 한 것이죠. 그런 점에서 그의 이념은 유의미함을 유지하게 되죠. 그렇게 본다면, <사상사>라는 번역은 자칫 엘리아데가 추구하고자했던, 그러니까 다양한 문화적 현상 속에서 반복되고 있는 종교적 이념, 혹은 본질적인 원형을 잡아내고자 하는 그 의도가 잘못 전달될 수도 있겠죠.
호영: 보통 사상사라하면, 개별 종교의 교리 혹은 신학적 내용을 떠올리게 할 수도 있으니까, 좀 더 세심한 제목달기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은 드네요. 사실 엘리아데가 추구하고자 했던 것이 단순한 교리나 신학적 내용은 아니었을 테니까요.
길용: 그런 점에서 엘리아데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평범한 역사가라고는 보기 힘들죠. 엘리아데가 이야기하는 역사는 오히려 ‘반反역사’, 혹은 ‘역사 없음’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죠. 보통의 경우 역사란 시간의 축적과 변화과정이라 볼 수 있겠지만, 엘리아에의 역사는 ‘최초의 역사’, 즉 역사가 시작되던 ‘그 때’illud tempus를 의미하니까요. 따라서 그의 역사는 인류 최초의 기억이 담겨있는 것이고, 그것이 표상화 된 것이 신화이고, 그것은 의례적 성격을 지니게 되고, 따라서 최초의 역사로 돌아가는 것은 인간이 경험해야 하는 지겨운 세속적 역사를 잊을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되는 것이죠.
호영: 거진 헤겔리안이구만요! (웃음)
길용: 엘리아데는 사실 그 점에서 검증적인 종교학자라기 보다는 철학자, 혹은 신학자로서 발언하고 있다고 볼 수 있어요. 적어도 그가 말하는 ‘역사’란 일종의 규범적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죠.
수빈: 그렇죠. 그러다 보니 엘리아데는 역사를 종교로 환원시키려는 웅대한 계획을 가지게 되고, 그것이 구체화된 것이 바로 이 책이라고 볼 수 있겠죠. 그는 모든 인간의 일상사마저도 종교적인 것으로 치환할 수 있다고 보고 있으니까요.
길용: 그러다보니 그의 『세계종교사상사』는 기존의 종교사와는 서술방식부터 차이가 많이 나고 있어요. 철저히 그의 <성속 변증법>에 의해 필터링된 내용들이 문학적 치장을 통해 독자들과의 만남을 기다리고 있는 거죠. 그러다 보니 독자들은 상당한 관심과 흥미를 가질 수 있겠지만. 검증적인 역사가들에게는 이런 식의 작업이 그리 탐탁치는 않을 겁니다.
수빈: 그런 점에서 엘리아데는 지속적으로 지적을 받고 있죠. ‘너무 편향적인 기술이 아니냐’, 그리고 ‘역사적 사료를 선택함에 있어서도, 공정하고 폭넓은 수렴보다는 자신의 종교관에 적당한 사료들만을 취사선택하고 있는 것은 아니냐’ 라는 등의 비판이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엘리아데에 대한 평가들
길용: 그렇다면 이즈음에서 엘리아데에 대한 여러 평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 보는 것은 어떨까요? 게다가 여기 모인 사람들이 각각 다른 국가들에서 학위를 했으니 각 나라의 평가를 들어보는 것도 재미있겠네요. 먼저 이박사께서 공부하신 영국에서는 엘리아데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나요?
호영: 아무도 엘리아데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지 않죠. (웃음) 제가 그 동네에서 8년여 동안 있었지만, 이쪽 전공에서 엘리아데에 대해서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눈 기억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물론 엘리아데가 완전히 학문적 토론의 장에서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종교를 과학적으로 보고자하는 이들의 논의에서는 엘리아데가 이전보다 눈에 띄게 뒤로 물리고 있다고 볼 수 있겠죠. 오히려 엘리아데는 극작가들에 의해 더 많은 관심과 흥미를 끄는 것 같아요. 종교를 역사로 보는 엘리아데의 시각은, 종교를 드라마로 보는 것과 진배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겠죠. 특히 신화에 집중하는 엘리아데는 아무래도 문학이나 극작가들의 관심 영역 안에 더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종교학계에서는 확실히 언급이 줄고 있어요.
길용: 그럼 한국에서는 어때요?
수빈: 한국의 종교학은 크게 두 흐름이 있다고 볼 수 있겠죠. 우선 서울대의 종교현상학과 서강대의 종교사학적 전통을 꼽을 수 있겠죠. 물론 근래 들어서는 꼭 그렇지도 않지만, 이전에 두 학교를 이끌던 종교학자들이라면 따라서 서울대는 엘리아데, 그리고 서강대는 윌프레드 캔트웰 스미스를 들 수 있습니다. 서울대의 경우는 은퇴하신 정진홍 선생님에 의해서 엘리아데가 본격적으로 그리고 구체적으로 소개되었다고 볼 수 있겠죠. 아니 서울대만이 아니라, 한국에서의 엘리아데는 사실 정선생님께 많은 빚을 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엘리아데가 소개될 당시 한국의 종교학은 이제 막 기지개를 펴고 있을 때라고 할 수 있으니까, 한국의 종교학은 엘리아데라는 자양분으로 이만큼 성장했다고도 할 수 있겠네요. 그만큼 한국 종교학계에서 엘리아데는 상당한 영향력을 지닌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엘리아데에 대한 균형 잡힌 비평은 그리 활발한 편은 아니었습니다. 엘리아데가 어느 정도 소개된 이후 다른 선생님들이 한두 명씩 학위를 받고 국내로 복귀하면서 상황이 조금씩 바뀌게 되긴 했죠. 그래서 엘리아데 이외의 다른 종교학자들, 예를 들어 요아킴 바흐나 캔트웰 스미스, 니니안 스마트 그리고 조나단 스미스 등과 같은 이들이 소개되고, 또 그분들에 의해 엘리아데 대한 서구 학계의 비판을 접하게 되면서 차차 엘리아데 종교학의 본 모습을 살필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죠. 그러면서 점차 엘리아데의 역사기술이 가지는 반역사성, 혹은 작위적인 사료 선택 등에 대해서 비판적인 목소리가 높아지게 되었습니다. 엘리아데 종교학이 전부였다고 생각하다가 이제 다양한 종교학들을 접하면서 엘리아데의 종교학 역시 그러한 학문들 중의 하나였다는 것을 알게 된 거지요.
엘리아데에 대한 혹독한 비판이 있기도 하지만 전 그의 종교학이 나름대로의 가치는 지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현대 학문들이 지표를 상실하고, 파편화, 도구화되어가는 상황에서 엘리아데가 던지는 거대담론은 인문학에 대한 전통적인 기대치를 유효하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매력적인 요소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길용: 엘리아데에 대한 평가에서는 나라별로 큰 차이는 없는 것 같군요. 독일 같은 경우도 대동소이해요. 우선 독일이라는 나라가 역사비평적인 방법이 강하다보니, 그런 시각에서 엘리아데의 역사기술 방법을 지속적으로 비판하죠. 다들 알고 계시겠지만, 기왕의 엘리아데가 보여주는 사료 선택의 작위성은 계속적인 비판의 대상이 되었죠. 그리고 엘리아데가 생각하는 종교적 패턴에 대한 강렬한 집착 역시 피해갈 수 없는 비판의 표적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엘리아데의 생각으로만 제한되어져야 할 ‘패턴’이 막강한 생명력을 얻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종교인들의 행위나 문화적 유물들을 엘리아데 식으로 해석해버리고, 마치 그것이 정답인양 강요하는 것은 학문이 아니라는 태도이지요. 이런 맥락에서 제가 공부한 마르부륵Marburg대학 종교학과의 한 교수님 같은 경우는 엘리아데를 무척 위험스러운 인물로까지 언급하기도 하죠. 뭐 엘리아데가 테러리스트라 위험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라,(웃음) 검증적 종교학의 근간을 허물 수 있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위험하다는 거죠. 종교학도 근대학문으로서 객관적인 학Wissenschaft이 되어야 하는데, 자꾸 그 경계에서 위험한 줄타기를 하는 엘리아데의 곡예를 독일학자들은 편안하게 관람할 수 없었던 것이죠.
하지만 그렇다고 독일식 종교학이 꼭 매력적인 것만은 아니죠. 종교학을 그렇게 검증적이고 실증적인 학문으로만 고집하다 보니, 종교학자들의 포지션이 역사학자 혹은 사회학자들의 그것과 크게 달라지지 않는 다는 거죠. 그렇다면 과연 종교학의 특성이 뭐냐? 뭐 그런 질문이 생기게 되는 거죠.
수빈: 대부분 현 엘리아데를 비판하는 사람들의 시각이 좀 그런 편이죠. 그분들은 종교학이라고 하는 학문 자체가 ‘환원’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니까요. 그러니까 이전의 종교학자들이 종교라고 하는 것의 가치를 극상 시켜서 모든 문화현상의 궁극에 있는 것으로, 그러니까 마치 천상에 있는 것처럼, 종교에 대한 언급은 인류 문화의 극점에 대한 것으로 인식하는 것을 탈피해야 한다는 것이죠.
호영: 근데 제 생각은 좀 달라요. 문제는 엘리아데에게 있는 것이지 종교학에 있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종교학, 그러니까 근대에 형성된 학문으로서의 종교학은 역시 과학(science)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엘리아데의 종교학은 과학적 학문이라고는 보기 힘들죠. 따라서 비판의 화살은 엘리아데의 학문 방법론을 지향하고 있어야지, 종교학이라는 학문 자체로 돌릴 필요는 없겠죠.
길용: 예 물론 그렇죠. 하지만 종교에 대하여 냉담한 현대인이나, 태초의 꿈을 상실한 세속인들에게 사실 엘리아데의 서술은 상당히 매력적이고 또 자극적이거든요. 그런 점에서 엘리아데의 역할은 또 어느 정도 기능하고 있는 것 같아요.
호영: 그렇지만 그것이 과학은 아니죠. 소설이나 연극은 될 수 있어도 근대정신이 배태시킨 과학적 사고의 영역에서 이야기 될 성질의 것은 아니죠. 그런 점에서 엘리아데는 전혀 다른 패러다임을 가지고 종교연구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죠. 예를 들어 과학철학 세미나를 하고 있는데 어느 한 도사가 등장해서 ‘내가 지금부터 기공을 보여주겠는데, 이게 모든 사상, 종교, 문화의 시금석이 되는 것이다!’라고 이야기한다면, 그 자리에 있던 학자들은 어떤 태도를 취하겠어요. 아마 대부분 소통의 불가함을 느끼고 그 자리를 뜨게 되겠죠. 문제는 그렇게 모두들 과학적 마인드로 종교를 대하려고 하는데, 엘리아데는 전혀 다른 시각으로 접근했다는 점. 바로 그것이 지금 엘리아데가 비판받는 가장 큰 요인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신화나 설화 이야기를 할 때는 엘리아데의 담론이 여전히 유효하긴 하겠죠. 하지만 종교에 대한 연구에서는 좀 차원이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지금 엘리아데는 과학적 학문을 하는 이들보다는 방송국 PD나 극작가, 문학가들에 좀 더 많은 지지와 흥미를 끄는 존재라고 할 수 있겠죠.
수빈: 그럼에도 표류하는 현대 학문의 방향을 잡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엘리아데는 여전히 가치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러니까 지금은 거의 그 의미를 상실했다고 여길 수 있는 신, 종교, 인간 등을 아우르는 거대 담론이 주는 안식도 완전히 거부하기는 좀 그렇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좀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표류하는 현대 학문에 속해 있는 사람으로서 저는 오히려 엘리아데나 스미스가 던지는 거대 담론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습니다.
호영: 그렇다면 종교학자는 어떻게 호구지책을 할 수 있나요? (웃음) 그러니까 종교학자가 과학자임을 포기하게 된다면 종교인으로 남아야 할 터인데. 어떻게 자신의 연구 대상을 포기하고 입에 풀칠을 할 수 있겠어요? 현대 학문은 과학화하면서 각자의 영역에 대한 분명한 구별을 갖게 되었는데, 종교학의 이름으로 그런 거대 담론을 끌어안고 간다면 결국 종교학이 모든 것에 다시 지나친 참견을 하겠다는 것인데, 그 이야기는 오히려 종교학자이기를 포기하고, 종교인의 길로 간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는데, 그건 다시 시계를 뒤로 돌리는 일이 아닐까요? (다시 웃음)
영원으로의 회귀
엘리아데는 역사를 그렇게 우호적으로 조망하지 않는다. 물론 이때 이야기되는 역사는 선형적인, 즉 직선적으로 특정한 목적을 지향하고 있는 유대-그리스도교적인 역사이다. 엘리아데에 의하면, 본래 인간은 이런 식의 목적을 지닌, 즉 지향점을 가진 역사관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인간은, 자연스러운 문명의 때가 묻지 않은 고대의 인류는 역사를 피하고 싶어 한다. 역사는 지겹고, 무섭고, 허무한 것이다. 역사의 무게에 짓눌려 소중한 생명의 힘을 잃기 보다는 역사를 초극하여 최초의 넘치는 에너지를 회복하기를 원한다. 바로 그러한 꿈이 신화를 만들고, 그 신화는 최초의 시간을 담고 있으며, 그것이 의례화되고 거기에 참여함으로 인간은 시간과 역사의 공포를 극복하여 ‘다시 태어나게 된다’rebirth고 보았다. 그것이 바로 죽음과 재생이며, 영원회귀의 흔적이다.
과연 이러한 엘리아데의 해석이 정당한 것인가? 물론 현대 많은 학자들은 그런 역사관은 너무 제한적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엘리아데가 쉽게 물러서지는 않는다. 엘리아데는 현대인들에게도 남아있는 고대인들이 지녔음 직하다고 여기는 역사이해의 흔적들을 찾아내어 들이댄다. 도대체 사람들은 왜 핸드폰에 집착할까? 왜 또 젊은 친구들은 모바일 게임기를 들고 전철과 버스, 그리고 기차 안에서 무료한 시간을 죽이고 있는 것일까? 아이들은 왜 동화와 전설 이야기를 듣기 원하고, 왜 또 어른들은 잊지 않고 컴컴한 홀 안에 들어가 스크린에 비치는 영상들의 유희에 적잖은 시간을 소비하는 것일까? 그들이 느끼는 그 무료함, 지겨움, 답답함, 때로는 잊고 싶어 하는 그것들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인가? 이럴 때 엘리아데의 친절한 설명이 또 고개를 쳐든다. 그것은 바로 인간 저 깊은 내면에 똬리를 틀고 있는 시간에 대한 이해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지겨움을 이기기 위해, 인간은 성스러움을 찾게 된다. 그 무료함과 무서움을 극복하기 위해 속된 것들 속에 숨어있는 성스러움을 발견하는 것이다. 엘리아데의 속삭임은 여전히 현대 인간이 보여주는 문화의 한 면을 설명해주는 흥미로운 분석틀로서 역할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이 정밀한 과학이든 아니든 간에, 여전히 엘리아데의 매력은 현 후기 산업사회 속에서 살아있는 셈이다.
이렇게 엘리아데는 인간 안에 내장되어 있다고 여기는 종교적 패턴을 다양한 세계종교들의 역사에서 찾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종교적 이념들을 추적함으로 자신이 이야기가 틀리지 않았음을 그는 장장 2천 페이지가 넘게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꼼꼼하게 자신의 필터에 걸린 사료들을 가지고, 그가 생각하기에 적절한 단어들로 포장하여 학술적인 연구서를 마치 하나의 소설처럼 포장한 것이 바로 그의 <세계종교사상사>이다. 때로 독자들은 그가 뽑아놓은 현란한 타이틀 때문에 놀랍기도 할 것이다. 그만큼 엘리아데는 매우 적절한 표제어를 선택하여 그가 생각하는 종교적 이념들을 설명해주고 있다. 그런 점에서 그는 경험많은 여행 가이드와 같이 자기 그룹을 알리는 깃발을 높이 들고 열심히 앞장 서 나가고 있다. 누가 뭐라 하든, 그는 그가 생각하는 종교들의 본질적 요소들을 이렇게 다양한 종교들의 역사를 통해서 찾아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책은 석기시대로부터 시작하여 서구의 종교개혁시기까지 이어지고 있다. 총 3권 39장 318항목에 이르는 지극히 문학적이고 현란한 타이틀을 달고 있는 이 책은 엘리아데란 가이드의 훌륭한 길 안내서이기도 하다. 독자들은 엘리아데의 설명에 의지하여 세계의 다양한 종교들을 접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활력 넘치는 필력은 수천 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법한 종교적 유물이 마치 지금 내 앞에 와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 정도로 생생하게 소개해준다. 그런 점에서 엘리아데의 이 책은 참으로 재미있다. 흥미진지하다. 인문학적 연구서가 이렇게 재미있을 수가 있다니! 때론 경탄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너무도 엘리아데적인 이 책은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다른 이들의 시각과 교차하면서 꼼꼼히 챙겨봐야 할 부담도 아울러 독자들에게 강요한다. 즉 엘리아데가 기술하고 있는 개별 종교들이 ‘과연 그 해당하는 신앙인들에게도 유의미한 것이 되는가?’ 계속적으로 우리는 물으며 그의 길안내를 따라가야 한다. 그런 점에서 엘리아데의 <세계종교사상사>는 세계 종교를 이해하기 위한 완결서가 아니라, 그곳으로 들어가기 위한 입문서 내지는 참고서로 삼아야 할 것이다.
영원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던 고대인들처럼, 그의 역사서는 지금도 영원을 지향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그의 영원에 대한 열정은 어디에서부터 오는가? 호사가들은 엘리아데의 열정적인 연애 경력에서 적잖은 이유들을 찾아낸다. 그리고 사실 엘리아데의 일생에 있어서 에로틱은 빼놓을 수 없는 그림자이기도 하다. 어떤 이는 그의 학문적 작업의 힘은 줄어들지 않는 그의 에로틱 에너지에서부터 라고 보는 이들도 있다. 그만큼 그의 로맨스는 그의 학문과 맥을 같이 한다고 할 수 있다. 사실 그가 세상에 내 놓은 많은 소설들도 그의 로맨스의 결과물들이라고 볼 수 있다. 인도 체류시절 그의 스승이었던 다스굽타의 딸과 로맨스에 빠져 결국 스승으로부터 내침을 받은 사실은 너무도 유명하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의 소설로 영원화 되었다. 그런 식이다. 엘리아데는 그렇게 학문과 생활, 그리고 사랑이 분리되지 않았다.
20세기라는 세속화시대를 살면서도, 이렇게 그는 고대의 낭만과 열정을 고스란히 간직한 종교적 인간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의 책 『세계종교사상사』는 그런 종교적 인간의 ‘학문적 자서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부록-2
종 교(Religion)
우리는 지금 종교라 하면 특정한 교리와 신앙체계, 그리고 의례들을 갖춘 폐쇄적인 공동체를 생각한다. 따라서 종교 혹은 종교들은 이 세상에 다양하게 존재해 왔고, 또 현존하고 있다고 여긴다. 또한 그러한 ‘종교들’(과연 ‘종교’란 말이 복수가 가능한가는 뒤에서 살펴보도록 하겠다)은 기독교, 불교, 유교, 도교, 힌두교, 이슬람교 등 다양한 종교 조직, 혹은 종교적 실체를 지칭하는 말로 의심 없이 사용되어진다. 아울러 우리는 ‘기독교는 종교이다’라는 명제를 아주 당연시 여기고 또 그 명제의 진위에 별다른 토를 달지 않는 환경 속에 살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의 근간이 되는 성서를 살펴보면 의외로 이 ‘종교’란 단어가 쉽게 눈에 띠지 않는다는 사실이 발견된다. 구약에서 ‘종교’란 단어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단지 ‘야웨의 경외’yirath Yahweh라는 표현이 본래적 의미상 종교란 단어에 가깝다고 받아들여지고 있을 뿐이다. 신약에서는 구약과는 달리 몇 차례 ‘종교’를 지칭하는 용어가 사용되어지고 있긴 한데, 이 또한 대부분 ‘신앙’을 지칭하는 ‘πίστις’라는 단어이다. 사도 바울의 경우는 특징적인 규범적 행동양식을 지닌 종교적 공동체를 지칭하는 것으로 ‘θρησκεία’(행 26:5; 약1:26, 27; 경건, 의식, 의례, 관습)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종교’란 단어가 가지는 성서에서의 낮은 사용빈도수는 우리로 하여금 이 단어가 가지는 ‘본래적 의미’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케 한다. 그 궁금증에 대한 하나의 해결을 위한 시도로써 여기서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하여 우선 동아시아 전통 내에서 사용되고 있는 한자어 ‘종교’宗敎의 유래를 밝히고, 그 다음으로 기독교 전통에서 사용되는 ‘종교’religion란 단어의 계보학적 의미를 추적해보도록 한다.
우선 한자어 ‘종교’는 번역어이다. 이 단어는 19세기말 일본의 선승禪僧 스즈끼 젠꼬鈴木全子가 ‘religion’의 번역어로 선택함으로써 한자문화권에 본격적으로 소개되었다. 하지만 ‘종교’란 단어는 그 전부터 이미 불교의 한 용어로 사용되고 있었다. 본래 이 단어는 수隋의 승려 지의智懿(538-597)에 의해 『법화경法華經』을 근거로 하여 천태종의 교리를 ‘오중현의五重玄義, 즉 석명釋名, 변체變體, 명종明宗, 논용論用, 판교判敎’로 체계화 할 때, ‘모든 것의 근본이 되는 진리’란 의미로 宗과 敎를 합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이 단어가 후에 서구어 ‘religion’의 번역어로 채택되었고, 이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종교’란 단어의 시작이다.
서구 전통에서 종교란 단어는 라틴어 ‘religio’로부터 유래한다. 이 단어는, 여전히 많은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긴 하지만, '어떤 특정한 관습이나 의례의 외적 준수'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 단어는 더 나아가 의례 자체 보다는 그 의례를 준수할 때 대상으로 삼는 ‘초월적 실재’에 대한 인간의 ‘경건’과 ‘성실성’, 더 나아가 그 초월적 존재와 우주 전체에 대한 예배자 혹은 신앙자의 ‘태도’를 나타내는 말로 사용된다.
기독교 역사 내에서 종교란 단어의 최초 쓰임새와 본래적 의미를 보다 명확히 살펴보기 위해 초대 교회 지도자들이 사용했던 이 단어의 의미와 용례를 살펴보는 것도 효과적일 것이다. 우선 아우구스티누스(354-430)가 사용한 종교란 단어의 의미를 살펴보자. 그의 저술 중의 하나인 “De Vera Religione”라는 책의 제목을 우리는 편안한 마음으로 “On the True Religion”이라 바꾸려 할 것이다. 그리고 아우구스티누스가 ‘참된 종교’로서 ‘기독교’라는 특정한 ‘종교적 실체’에 대해 이미 ‘일정한 개념’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라 생각하려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기대와는 달리 그의 책 안에서 ‘기독교’라는 명칭을 찾아보기란 무척 곤란하다. 왜냐하면 그의 책은 기독교라고 하는 특정한 제도적 종교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초월적 존재인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강조하는 수려한 표현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있어서 ‘종교’란 특정한 의미나 신조의 체계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며, 제도화되어 외부에서 관찰 가능한 공동의 역사적 전통을 지닌 조직체를 가리키는 것 또한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보다는 오히려 사랑과 찬란한 빛 안에서 행해지는 창조주 하나님과의 생생한 ‘인격적인 조우’를 그는 ‘종교’라 표현했다. 따라서 그의 책은 ‘올바른 경건성에 대하여’ (On Proper Piety) 혹은 ‘진정한 예배에 관하여’ (On Genuine Worship)로 번역되어져야 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에벨링이 ‘참된 종교’와 ‘거짓 종교’의 구분이란 기독교와 다른 종교 간의 판단이 아니라 기독교 자체 내에서의 문제라고 말한 대목 역시 아우구스티누스의 견해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종교를 외부적 조직이 아닌 경건성과 종교성에서 찾으려는 시도는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에게서도 찾을 수 있다. 아퀴나스는 그의 저술 속에서 ‘religio’를 ‘하나의 영혼의 활동으로서 하나님께 마땅히 드려야 할 예배를 향한 신앙인의 충동’으로 보았다.
종교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종교개혁시기까지 계속 이어져 온다. 이는 대표적인 종교개혁자 칼뱅(1509-1564)이 저술한 “Christianae Religionis Institutio”(1536)란 책이 단순히 ‘기독교라는 종교의 강요’라는 의미라기보다는-보다 엄격하고 정확히 번역하자면- “그리스도적 경건성의 기초” 혹은 “그리스도적 경건성의 구조”를 뜻하고 있다는 것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종교’라고 하는 단어의 본래적 의미에는 지금은 상식처럼 되어있는 객체화된 혹은 실체화된 외부의 역사적 전통 조직에 대한 배려는 거의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종교’란 용어는 개개인의 '신앙적 경건함'과 '절대자에 대한 태도'들을 지칭하기 위해 사용되어져 왔음을 확인하게 된다.
이와 같은 종교란 단어의 의미가 작금 우리가 이해하고 있듯이 ‘외부적 특정 신앙적 조직체’라는 뜻으로 전용된 것은 대략 17-18세기 이후라고 알려져 있다. 17-18세기 이후 몇몇 종교집단간의 치열한 갈등과 충돌, 그리고 계몽주의적 주지주의의 득세, 아울러 지리상의 발견 이후 쏟아져 들어오는 유럽 이외 지역에 현존하고 있었던 비기독교적인 종교적 전통들에 대한 정보로 인하여 이제 ‘종교’란 단어는 점차 객체화되어 특정한 교리와 전통을 공유한 폐쇄적인 공동체 집단을 지칭하는 것으로 사용되어진다. 그 후 우리는 불교, 유교, 도교, 힌두교, 이슬람교 등과 같이 독립되고 객체화된 종교개념들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사실 이러한 종교전통들에 대한 명칭들은 철저히 서구 중심적이며, 실상 그것들이 지칭하는 구체화되고 실체화된 종교전통들은 현존치 않는다고 보는 것이 보다 검증적인 설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슬람교는 예외로 한다 하더라도(이슬람이라는 명칭은 ‘신에게 복종하는 자’라는 의미이며, 세계 여러 종교들 가운데 독특하게 외부에 의해서가 아니라 무슬림들 자신들에 의해서 붙여진 이름이기도 하다), 힌두교 같은 명칭은 서구인들에 의한 인도의 다양한 종교문화전통을 지칭하기 위한 잠정적이고도 작위적인 이름의 대명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말은 인도 문화 전통 내에서 힌두교라 불릴만한 공통적인 그 무엇은 존재치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종교로서의 기독교라고 하는 명칭은 계몽주의 시대에 이르러서야 정착되었다고 한다. 그 이전에는 ‘그리스도적 경건함’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17, 18세기 이후에도 종교를 특정한 종교적 세계관, 혹은 동일한 종교적 사상을 함주한 조직체로 조망하려고 하는 주지주의적 종교이해에 반기를 든 학자들도 있었다. 슐라이어마허F. Schlerermacher(1768-1834)와 루돌프 옷토R. Otto(1869-1937)가 그 대표적인 학자들이다. 이들은 종교의 본질, 혹은 핵심적인 것은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그리고 이성적인 것으로만 보기 보다는, 인간의 종교성 그 자체에 있다고 주장하였다. 여기서 그 유명한 슐라이어마허의 ‘절대의존의 감정’Gefühl schlechthinniger Abhängigkeit과 옷토의 ‘성스러움의 의미’Das Heilige가 등장한다. 옷토는 특히 기존 윤리적 의미로만 해석되어왔던 ‘거룩’의 의미를 오히려 종교의 본질을 이루는 ‘피조물적인 감정’, 혹은 ‘누멘적인 것’으로 판단하여 종교의 의미에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이들은 이전의 칸트적 종교이해인 윤리성에 직관적이고 체험적인 요소를 첨가하여 일종의 ‘종교성 보편주의’ 혹은 ‘종교적 상대주의’로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이들로 인해 촉발된 종교적 상대주의에 대한 반발로 신정통주의의 대표자 바르트(1886-1968)의 종교관이 등장하게 된다. 이러한 종교적 보편주의 혹은 상대주의가 기독교의 특수성을 부정하고, 기독교도 많은 세계 종교 중의 하나로 전락시킨다고 이해한 바르트는 종교를 ‘불신앙’의 다른 이름에 불과하다고 설파하며 다시 기독교의 절대성을 복원시키기 위해 경주하게 된다. 바르트에게 있어서 ‘종교’란 철저히 인간학적이고, 내재적이고 세속적인 현상이며, 따라서 그런 의미의 종교는 인간의 편에 속해 있다고 판단한다. 그러므로 바르트는 종교란 절대적인 ‘신적 계시’로부터는 동떨어진 정반대의 자리에 서있는 것으로 본다.
입장의 차이는 있지만 종교적 체험을 강조한 슐라이어마허와 옷토, 그리고 계시와 신앙을 재확인하고 있는 바르트 역시 기존의 제도화된 종교이해와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으며 다소간 종교란 용어의 본래적 의미에 좀 더 다가선 이해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들에게서는 어원론적인 분석과 용어에 대한 계보학적 지적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지는 않지만, 종교라고 하는 것을 제도로서만 파악하려 들지 않고 종교에 귀의하고 있는 이들의 ‘자세’나 혹은 ‘고백’으로 보고자 한다는 점에서 이들 역시 본래적 의미의 ‘종교’에 충실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근대이후 태동한 종교학이란 분과학문에 의하면 종교란 용어의 정의는 작업 가설적인 한계를 지닌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즉 종교란 용어는 분명한 개념으로 정의내리기가 곤란하다고 보는 것이다. 단지 연구자의 필요에 의해서 가변적으로 내려지는 잠정적 정의는 존재하지만, 불변적인 개념 규명은 사실상 곤란하다는 것이 작금 종교학계의 견해이기도 하다. 그 중 몇몇 종교학자들은 종교의 의미를 세분화하여 ‘종교적 체험’religious experience or personal faith과 ‘(종교의) 축적적 전통’cumulative tradition으로 구분해서 보려고 하는 경향도 있다. 그들의 주장에 의하면 지금껏 너무도 축적적 전통에 의존한 종교이해가 오히려 종교의 본질을 침해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종교의 본질적인 것은 오히려 종교적 경험에 있고, 그것은 곧 그들이 신앙하고 있는 절대자에 대한 한 인격자의 총체적인 반응이라고 보는 것이 그들의 견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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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님 감사합니다 :) 좋은 글 많은 거 배우면서 읽고 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