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사회와 환경문제 그리고 여가개발
- 새만금 여가개발을 중심으로 -
최석호
2004년 10월 19일 화요일
전통사회와 근대사회
근대성의 본질을 분석하는 고전이론가들의 저작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제도적 차원에서 근대성은 다차원적이라는 점이다. 마르크스(Marx)는 근대성의 사회적 질서가 자본제적으로 변형되었다고 주장하고, 뒤르껨(Durkheim)은 복잡한 분업과 자연에 대한 산업적 착취에서 비롯된 산업주의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베버(Weber)는 기술․인간활동의 조직․관료제의 형성 등에서 표출된 합리화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도대체 어떤 질서 속에서 살고 있는가? 자본제적 질서인가 아니면 산업적 질서인가 그도 아니면 합리화된 통제인가? 근대성은 제도적 차원에 보았을 때 다차원적이기 때문에 이러한 질문에는 하나의 대답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각각의 주장이 상호배타적인 것도 아니라고 기든스는 말한다.
사회학자들은 사회를 논할 때 발생적인 방식으로 사회적 결사를 지칭하기도 하고 독특한 사회적 관계의 체계를 뜻하기도 하기 때문에 사회의 개념은 모호한 채로 남아있다. 사태가 이러한데도 사회의 개념을 연구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사회학자가 사회를 언급할 때 염두에 두고 있는 바는 근대성이기 때문이고 또한 질서의 문제, 즉 현존과 부재를 연결하는 조건으로써 시간과 공간을 묶어주는 사회체계의 문제가 질서에 대한 의문이기 때문이다. 이 양자의 의미에서 민족국가는 대단히 중요하다. 따라서 근대사회의 본질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전근대 국가와 대비되는 사회적 공동체의 한 형태로써 민족국가의 특징을 규명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회학은 예측과 통제 양자에 사용할 수 있는 근대생활에 관한 지식을 생산하고 있다. 사회학적 지식은 사회생활 안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나오기도 함으로써 그 자체를 재구성한다. 한편으로 사회학적 지식을 축적하고 다른 한편으로 사회발전에 대한 보다 포괄적인 통제를 시도하는 평형적인 과정으로써 성찰적인 모형이다. 근대성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기존의 사회학적 조망으로부터 어느 정도 단절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근대사회와 전통사회간의 단절을 설명할 수 있는 근대제도의 극단적인 역동성과 세계화를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근대제도의 극단적인 역동성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가?
근대성의 역동성
근대사회와 전통사회를 갈라놓는 가장 명백한 특징은 근대성(modernity)의 극단적인 역동성(dynamism)이다. 전통사회보다 훨씬 빠른 변동의 속도와 범위 그리고 깊이 등이 근대사회의 특징이다. 따라서 근대사회는 질주하는 세계(runaway world)다. 근대적 사회변동의 역동적 성격은 이하의 세 가지 요소로 설명할 수 있다(Giddens, 1990: 1-54; 1995: 14-21; 1999: xi-xii).
첫째는 시공간분리(the separation of time and space)다. 전통사회에서 시간에 관한 생각은 항상 장소와 연결되어 있었고 또한 시간이 전세계적으로 표준화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이 몇 시인지는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결정되었다. 따라서 시간과 공간은 어느 장소에 위치하고 있느냐라는 것과 결합되어 있었다. 그러나 근대사회에서는 현재시간이 어디에 있느냐라는 것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기계적 시계의 발명과 시간의 표준화로 시간의 측정과 사회적 조직화가 전세계적으로 통일됨으로써 시간으로부터 공간이 분리되었기 때문이다. 이로써 특정한 장소를 고려하지 않고도 사회적 활동을 조절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시공간준수는 사회적 행위를 조정하기 위한 장소귀속성에서 탈피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한다.
둘째는 사회제도의 ‘장소귀속성 탈피’(disembedding)다. 장소귀속성 탈피란 지방의 맥락을 벗어난 사회관계가 시공간을 가로질러서 다시 결합되는 것을 지칭하는 것으로써 근대사회가 도입한 시공간분리를 더욱 가속화시킨다. 장소귀속성 탈피는 같은 지방에 살고 있지 않는 사람과 관계를 형성하고 상호작용할 수 있게 한다. 이것은 같은 지방 사람들과의 접촉의 중요성을 감소시키고 지리적 제약을 극복하게 한다. 두 가지 유형의 장소귀속성 탈피 기제, 즉 상징적 토큰(symbolic tokens)과 전문가 체계(expert systems)는 시간과 공간을 괄호친다. 상징적 토큰은 서로 만난 적이 없는 무수한 개인들간의 거래를 가능하게 하고, 전문가 체계는 타당성을 확인할 길이 없는 일반인들이 기술적 지식을 사용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셋째는 ‘성찰성’(reflexivity)이다. 이것 때문에 우리는 신뢰할 수 있게 되고, 기존의 관행에 얽매이지 않고 사회생활을 할 수 있게 된다. 성찰성은 새로운 지식과 정보에 비추어서 사회활동과 물질관계를 끊임없이 수정하게 한다. 성찰성은 계몽적 사고의 산물이지만, 계몽적 사고에서 비롯된 질서와 통제에 대한 기대를 무너뜨리고 지식의 확실성을 손상시킨다. 모든 지식은 지속적인 검열을 받고 또 수정된다. 이것은 지속적인 변동과 불확실성을 생산한다.
근대성이 낳은 시공간 분리와 장소귀속성 탈피는 물리적 환경을 경험해야만 물리적 환경에 대한 지각을 할 수 있는 제한을 최초로 극복했다. 이제 시간은 분할될 수 있게 되었고, 활동들은 상이한 분절들로 할당될 수 있게 되었다. 이에 따라 공적활동이나 노동은 여가로 정의될 수도 있는 가사활동시간으로부터 분리되었다. 또한 노동과 여가의 공간분리로 일터와 놀이터가 가정으로부터 분리되어 독자적인 공간을 갖게 되었다(Rosenzweig, 1985: 35-49). 이리하여 전통사회에서 통합되어 있었던 일과 여가는 분리되었다. 중세 말 또는 근세 초부터 현재에 이르는 장기간에 걸친 관찰 결과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문명화 과정이었음을 보고하고 있고, 문명화 과정 속에서 여가실행(leisure practice)은 상업화․온순화․사유화․개인화 되었다고 말한다(Elias, 1994; Rojek, 2000: 257-260; 2002: 107-118). 이러한 변동과정은 서구에서 여타 세계로 공간적 확장을 거쳤기 때문에 근대성 하에서 사회변동은 서구화 양상을 띠었다.
근대성의 제도적 차원
근대성의 본질을 분석하는 고전이론가들의 저작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제도적 차원에서 근대성은 다차원적이라는 점이다. 봉건제가 쇠퇴하면서 농업생산은 시장에 내다 팔기 위한 생산으로 대체되었다. 이 과정에서 상품은 다양화되었고, 인간의 노동력은 상품화되었으며, 근대성의 사회적 질서는 자본제적으로 변형되었다고 마르크스(Marx)는 주장한다. 이에 대해서 뒤르껨(Durkheim)은 주로 산업주의가 근대 제도의 본질에 끼친 충격을 추적하면서 급격하게 변동하는 근대 사회생활의 성격은 자본주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복잡한 분업과 자연에 대한 산업적 착취에서 비롯된 산업주의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베버(Weber)는 산업적 질서가 아니라 합리적 자본주의라고 다시 비판한다. 그러나 마르크스와는 달리 자본주의가 아니라 기술․인간활동의 조직․관료제의 형성 등에서 표출된 합리화가 핵심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자본제적 질서 속에서 살고 있는가? 근대제도를 형성한 지배적인 힘은 산업주의인가? 정보에 대한 합리화된 통제가 근본적인 특징인가? 고전이론가들의 연구에서 비롯된 이러한 질문에 대해서 단순하게 대답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이러한 주장들이 상호배타적인 것도 아니다. 근대성은 제도적 차원에 보았을 때 다차원적이기 때문이라고 기든스는 주장하고, 그 차원을 고전이론가들의 연구에서 도출된 자본주의․산업주의․감시 외에 군사력 등과 같은 네 가지로 분류한다. 이와 같은 근대성의 제도적 차원들을 언급할 때 기든스가 의미하는 바는 조직원리가 사회의 제도에 구조를 부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러한 차원들은 민족국가의 차원들과 조응한다. 이하에서 살펴본다(Giddens, 1990: 55-63; Giddens & Pierson, 1998: 81-83; Kasperson, 2000: 89-92).
먼저, 근대성의 등장은 근대적 경제질서, 즉 ‘자본주의’ 경제질서의 창출을 의미한다. 상품생산체계인 자본주의에서 중심이 되는 것은 자본의 사적소유와 임노동간의 관계다. 자본가는 시장에 내다 팔기 위해서 상품을 생산한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자본가는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서 끊임없는 기술혁신을 시도한다.
둘째로, 기든스가 ‘산업주의’를 여타 근대성의 제도적 차원들과 분리하는 이유는 산업이 근대사회의 기술적 토대를 구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주의와 과학기술의 발달이 서로 맞물려 돌아가면서 기계중심문명이 전개되고 있다. 생산의 에너지원이 풍력․축력․인력 등 자연적인 것에서 비자연적인 것으로 바뀜에 따라 생산은 기계화된 공장생산으로 전환되었다. 즉, 산업주의는 노동 그 자체와 작업장을 변경시켰다. 그 외에도 산업주의는 교통과 통신에 변동을 초래사고 그 중요성을 더욱 강화시켰으며, 이로 인해서 가정생활에도 영향을 미쳤다.
다음으로 근대사회는 전근대사회와 명확하게 구분되는 조직 형태상의 점이 있는데 그것은 민족국가(nation-state)다. 민족국가는 행정권력을 통하여 정보체계를 구조화함으로써 새로운 체계를 구성하기 때문에 정보의 구조화에 의존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기든스는 푸꼬에게서 빌려온 ‘감시’ 개념을 이용한다. 민족국가는 자본제적 또는 산업주의적 국가사회로 환원될 수 없기 때문에 그 자체의 특성에 따라 분리된 실체로 분석해야만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민족국가의 결정적인 요소이면서 자체적인 발전의 전제조건이 되는 것은 인구에 대한 감시와 통제 능력이다. 바로 이것 때문에 민족국가는 특정한 영역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독자적이고 강력한 행정적 단위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군사력을 여타 근대성의 차원들과 분리해서 보고자 하는 이유는 18세기 이후로 대규모전쟁이 발발하면서 전쟁과 군의 성격에 엄청난 변동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또한 20세기에 들어서서 군대가 산업화됨으로써 전쟁은 총체적인 성격을 띠기 시작했다. 핵폭탄이 지닌 엄청난 파괴력은 정치적인 수단도 무력화시켜버린다. 그러나 국가가 폭력수단을 독점하고 동시에 형법 등을 통하여 일탈자에 대한 감시능력을 향상시킴으로써 개별 국가 내부의 법과 질서를 유지하는데 있어서 군대는 부차적인 역할만을 수행하게 되었다.
자본주의․산업주의․민족국가에 의한 행정적 감시와 폭력의 독점 간에 상호작용은 근대성의 제도에서 핵심을 구성한다. 이 네 가지 차원들과 그것들 간의 상호작용은 서구유럽에서 처음 등장했지만 근대성의 역동성으로 말미암아 세계화됨으로써 점점 더 지구적인 현상이 되고 있으며, 이 점에 있어서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환경운동과 새만금개발
이상에서 살펴 본 근대성의 제도적 차원 속에서 다양한 유형의 사회운동들이 일어난다. 자본주의 제도에서 노동운동이 일어나고, 감시의 제도적 차원에서 언론의 자유와 민주화운동이 전개된다. 전쟁의 산업화로 말미암아 더욱 증대된 파괴력의 위험에 맞서 반전 평화운동이 일어난다. 중대한 결과를 낳을 수 있는 위험의 증대와 전쟁의 발발이 결합되기 때문에 평화운동은 더욱 중요성을 갖게 된다. 또한 산업주의의 제도적 차원은 환경운동으로 이어지는데, 지구온난화․오존층 파괴 등과 같은 지구적 생태재앙의 가능성과 결합된 환경위험의 증가 때문에 더욱 중요해졌다(Giddens, 1990: 55-71, 159-169; Holborn, 2001: 130-132, 135-139).
각각의 근대성의 제도적 차원들에서 과학과 기술을 이용하여 사회세계와 자연세계에 침투해 들어감으로써 인간의 손길이 닺지 않는 사회와 자연은 거의 남지 않게 되었다. 이로 말미암아 한편으로 근대사회는 자연과 전통을 소멸시킴으로써 더 큰 통제의 기회를 누리게 되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더 큰 위험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제 세계는 과학과 기술의 진보 그 자체에서 비롯된 제조된 위험(manufactured risk) 앞에서 불확실성을 없애는 만큼 새로 만들어 내기도 한다. 즉, 전통적으로 해 왔던 방식을 따를 수 없는 세상에서 보다 능동적으로 위험을 감수하는 방향설정을 해야만 한다(Giddens & Pierson, 1998: 307-310). 따라서 과학과 기술의 발전과 적용으로 가능했던 새만금개발로 말미암아 제조된 환경위험 역시 그것을 철회하고 원상을 회복하는 것이 대안이 아니라 그 위험을 성찰하면서 새로운 대안을 찾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새만금개발로 말미암은, 즉 새만금개발에 따라 제조된 위험은 다차원적이어서 대안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데 문제가 있다. 첫째, 환경적으로 제조된 위험이었다. 생태재앙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위험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이를 애써 외면했기 때문이다. 둘째, 새만금개발은 정치적으로 제조된 위험이었다. 애초에 정통성을 의심받고 있었던 특정 지역을 기반으로 한 정당의 대통령후보였던 노태우 씨가 개발 그 자체의 당위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득표를 의식한 개발계획을 세웠기 때문이다. 셋째, 경제적으로 제조된 위험이었다. 산업적 개발이 가져올 환경위험은 여러 경로를 통해 보고되었지만 경제논리에 매몰되었기 때문이다. 넷째, 지역적으로 제조된 위험이었다. 종교계와 시민사회단체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지역발전을 원하는 목소리에 밀려서 어쩔 수 없이 강행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새만금 여가개발을 통해서 새만금개발에 따라 제조된 위험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다차원적인 위험의 요소들을 성찰성으로 극복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즉, 다차원적으로 제조된 위험에 대한 성찰을 통해 통제할 수 있는 위험으로 전환하는 것이 우선되어야지 여가개발을 통해 제조된 위험을 극복하려 하면 더 큰 국민적 저항에 직면할 뿐이다. 이를 위해서 여가개발 이전에 산업적 개발에 따라 제조된 위험이 생태재앙으로 이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환경운동을 전개한 시민사회단체의 성찰성을 수용하여야 한다. 다음으로, 경제논리와 환경논리는 동시에 고려되어야지 어느 일방으로 가서는 안 된다. 따라서 경제논리를 내세웠던 사람들의 자성적 성찰이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지역발전을 요청하는 목소리는 국민적 합의를 기반으로 했을 때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여타 지역 국민들의 합의와 중앙정부의 재정적 지원이 절실한 상황에서 일방적 지역주의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참 고 문 헌
Giddens, Anthony. 1981. A Contemporary Critique of Historical Materialism. Macmillan.
Giddens, Anthony. 1990. The Consequence of Modernity. Polity.
Giddens, Anthony. 1991. Modernity and Self-Identity. Polity.
Giddens, Anthony. 1992. The Transformation of Intimacy. Polity.
Giddens, Anthony. 1994. Beyond Left and Right. Polity.
Giddens, Anthony. 1998. The Third Way. Polity Press.
Giddens, Anthony. 1999. Runaway World - How Globalisation is Reshaping Our Lives.
Giddens, Anthony & Christopher Pierson. 1998(1998). 『기든스와의 대화』(Conversations with Anthony Giddens: Making Sense of Modernity). 김형식 역. 21세기북스.
Holborn, Martin. 2001. “Anthony Giddens and Theory of Modernity”. Haralambos (ed.) Development in Sociology. Vol. 17. Causeway Press.
Kasperson, Lars Bo. 2000. Anthony Giddens: An Introduction to a Social Theorist. Blackwell.
Rojek, Chris. 1993. Ways of Escape. Rowman and Littlefield Publishers.
Rojek, Chris. 2000a(1985).『자본주의와 여가이론』(Capitalism and Leisure Theory). 김문겸 역. 일신사.
Rojek, Chris. 2000b. Leisure and Culture. Macmillan.
Rojek, Chris. 2002(1995).『포스트모더니즘과 여가』(Decentring Leisure - Rethinking Leisure Theory). 최석호․이진형 역. 일신사.
Rosenzweig, Roy. 1983. Eight Hours for What We Will - Workers and Leisure in an Industrial City, 1870-1920. Cambridge University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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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0월 19일 화요일
전통사회와 근대사회
근대성의 본질을 분석하는 고전이론가들의 저작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제도적 차원에서 근대성은 다차원적이라는 점이다. 마르크스(Marx)는 근대성의 사회적 질서가 자본제적으로 변형되었다고 주장하고, 뒤르껨(Durkheim)은 복잡한 분업과 자연에 대한 산업적 착취에서 비롯된 산업주의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베버(Weber)는 기술․인간활동의 조직․관료제의 형성 등에서 표출된 합리화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도대체 어떤 질서 속에서 살고 있는가? 자본제적 질서인가 아니면 산업적 질서인가 그도 아니면 합리화된 통제인가? 근대성은 제도적 차원에 보았을 때 다차원적이기 때문에 이러한 질문에는 하나의 대답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각각의 주장이 상호배타적인 것도 아니라고 기든스는 말한다.
사회학자들은 사회를 논할 때 발생적인 방식으로 사회적 결사를 지칭하기도 하고 독특한 사회적 관계의 체계를 뜻하기도 하기 때문에 사회의 개념은 모호한 채로 남아있다. 사태가 이러한데도 사회의 개념을 연구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사회학자가 사회를 언급할 때 염두에 두고 있는 바는 근대성이기 때문이고 또한 질서의 문제, 즉 현존과 부재를 연결하는 조건으로써 시간과 공간을 묶어주는 사회체계의 문제가 질서에 대한 의문이기 때문이다. 이 양자의 의미에서 민족국가는 대단히 중요하다. 따라서 근대사회의 본질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전근대 국가와 대비되는 사회적 공동체의 한 형태로써 민족국가의 특징을 규명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회학은 예측과 통제 양자에 사용할 수 있는 근대생활에 관한 지식을 생산하고 있다. 사회학적 지식은 사회생활 안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나오기도 함으로써 그 자체를 재구성한다. 한편으로 사회학적 지식을 축적하고 다른 한편으로 사회발전에 대한 보다 포괄적인 통제를 시도하는 평형적인 과정으로써 성찰적인 모형이다. 근대성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기존의 사회학적 조망으로부터 어느 정도 단절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근대사회와 전통사회간의 단절을 설명할 수 있는 근대제도의 극단적인 역동성과 세계화를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근대제도의 극단적인 역동성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가?
근대성의 역동성
근대사회와 전통사회를 갈라놓는 가장 명백한 특징은 근대성(modernity)의 극단적인 역동성(dynamism)이다. 전통사회보다 훨씬 빠른 변동의 속도와 범위 그리고 깊이 등이 근대사회의 특징이다. 따라서 근대사회는 질주하는 세계(runaway world)다. 근대적 사회변동의 역동적 성격은 이하의 세 가지 요소로 설명할 수 있다(Giddens, 1990: 1-54; 1995: 14-21; 1999: xi-xii).
첫째는 시공간분리(the separation of time and space)다. 전통사회에서 시간에 관한 생각은 항상 장소와 연결되어 있었고 또한 시간이 전세계적으로 표준화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이 몇 시인지는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결정되었다. 따라서 시간과 공간은 어느 장소에 위치하고 있느냐라는 것과 결합되어 있었다. 그러나 근대사회에서는 현재시간이 어디에 있느냐라는 것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기계적 시계의 발명과 시간의 표준화로 시간의 측정과 사회적 조직화가 전세계적으로 통일됨으로써 시간으로부터 공간이 분리되었기 때문이다. 이로써 특정한 장소를 고려하지 않고도 사회적 활동을 조절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시공간준수는 사회적 행위를 조정하기 위한 장소귀속성에서 탈피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한다.
둘째는 사회제도의 ‘장소귀속성 탈피’(disembedding)다. 장소귀속성 탈피란 지방의 맥락을 벗어난 사회관계가 시공간을 가로질러서 다시 결합되는 것을 지칭하는 것으로써 근대사회가 도입한 시공간분리를 더욱 가속화시킨다. 장소귀속성 탈피는 같은 지방에 살고 있지 않는 사람과 관계를 형성하고 상호작용할 수 있게 한다. 이것은 같은 지방 사람들과의 접촉의 중요성을 감소시키고 지리적 제약을 극복하게 한다. 두 가지 유형의 장소귀속성 탈피 기제, 즉 상징적 토큰(symbolic tokens)과 전문가 체계(expert systems)는 시간과 공간을 괄호친다. 상징적 토큰은 서로 만난 적이 없는 무수한 개인들간의 거래를 가능하게 하고, 전문가 체계는 타당성을 확인할 길이 없는 일반인들이 기술적 지식을 사용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셋째는 ‘성찰성’(reflexivity)이다. 이것 때문에 우리는 신뢰할 수 있게 되고, 기존의 관행에 얽매이지 않고 사회생활을 할 수 있게 된다. 성찰성은 새로운 지식과 정보에 비추어서 사회활동과 물질관계를 끊임없이 수정하게 한다. 성찰성은 계몽적 사고의 산물이지만, 계몽적 사고에서 비롯된 질서와 통제에 대한 기대를 무너뜨리고 지식의 확실성을 손상시킨다. 모든 지식은 지속적인 검열을 받고 또 수정된다. 이것은 지속적인 변동과 불확실성을 생산한다.
근대성이 낳은 시공간 분리와 장소귀속성 탈피는 물리적 환경을 경험해야만 물리적 환경에 대한 지각을 할 수 있는 제한을 최초로 극복했다. 이제 시간은 분할될 수 있게 되었고, 활동들은 상이한 분절들로 할당될 수 있게 되었다. 이에 따라 공적활동이나 노동은 여가로 정의될 수도 있는 가사활동시간으로부터 분리되었다. 또한 노동과 여가의 공간분리로 일터와 놀이터가 가정으로부터 분리되어 독자적인 공간을 갖게 되었다(Rosenzweig, 1985: 35-49). 이리하여 전통사회에서 통합되어 있었던 일과 여가는 분리되었다. 중세 말 또는 근세 초부터 현재에 이르는 장기간에 걸친 관찰 결과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문명화 과정이었음을 보고하고 있고, 문명화 과정 속에서 여가실행(leisure practice)은 상업화․온순화․사유화․개인화 되었다고 말한다(Elias, 1994; Rojek, 2000: 257-260; 2002: 107-118). 이러한 변동과정은 서구에서 여타 세계로 공간적 확장을 거쳤기 때문에 근대성 하에서 사회변동은 서구화 양상을 띠었다.
근대성의 제도적 차원
근대성의 본질을 분석하는 고전이론가들의 저작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제도적 차원에서 근대성은 다차원적이라는 점이다. 봉건제가 쇠퇴하면서 농업생산은 시장에 내다 팔기 위한 생산으로 대체되었다. 이 과정에서 상품은 다양화되었고, 인간의 노동력은 상품화되었으며, 근대성의 사회적 질서는 자본제적으로 변형되었다고 마르크스(Marx)는 주장한다. 이에 대해서 뒤르껨(Durkheim)은 주로 산업주의가 근대 제도의 본질에 끼친 충격을 추적하면서 급격하게 변동하는 근대 사회생활의 성격은 자본주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복잡한 분업과 자연에 대한 산업적 착취에서 비롯된 산업주의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베버(Weber)는 산업적 질서가 아니라 합리적 자본주의라고 다시 비판한다. 그러나 마르크스와는 달리 자본주의가 아니라 기술․인간활동의 조직․관료제의 형성 등에서 표출된 합리화가 핵심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자본제적 질서 속에서 살고 있는가? 근대제도를 형성한 지배적인 힘은 산업주의인가? 정보에 대한 합리화된 통제가 근본적인 특징인가? 고전이론가들의 연구에서 비롯된 이러한 질문에 대해서 단순하게 대답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이러한 주장들이 상호배타적인 것도 아니다. 근대성은 제도적 차원에 보았을 때 다차원적이기 때문이라고 기든스는 주장하고, 그 차원을 고전이론가들의 연구에서 도출된 자본주의․산업주의․감시 외에 군사력 등과 같은 네 가지로 분류한다. 이와 같은 근대성의 제도적 차원들을 언급할 때 기든스가 의미하는 바는 조직원리가 사회의 제도에 구조를 부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러한 차원들은 민족국가의 차원들과 조응한다. 이하에서 살펴본다(Giddens, 1990: 55-63; Giddens & Pierson, 1998: 81-83; Kasperson, 2000: 89-92).
먼저, 근대성의 등장은 근대적 경제질서, 즉 ‘자본주의’ 경제질서의 창출을 의미한다. 상품생산체계인 자본주의에서 중심이 되는 것은 자본의 사적소유와 임노동간의 관계다. 자본가는 시장에 내다 팔기 위해서 상품을 생산한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자본가는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서 끊임없는 기술혁신을 시도한다.
둘째로, 기든스가 ‘산업주의’를 여타 근대성의 제도적 차원들과 분리하는 이유는 산업이 근대사회의 기술적 토대를 구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주의와 과학기술의 발달이 서로 맞물려 돌아가면서 기계중심문명이 전개되고 있다. 생산의 에너지원이 풍력․축력․인력 등 자연적인 것에서 비자연적인 것으로 바뀜에 따라 생산은 기계화된 공장생산으로 전환되었다. 즉, 산업주의는 노동 그 자체와 작업장을 변경시켰다. 그 외에도 산업주의는 교통과 통신에 변동을 초래사고 그 중요성을 더욱 강화시켰으며, 이로 인해서 가정생활에도 영향을 미쳤다.
다음으로 근대사회는 전근대사회와 명확하게 구분되는 조직 형태상의 점이 있는데 그것은 민족국가(nation-state)다. 민족국가는 행정권력을 통하여 정보체계를 구조화함으로써 새로운 체계를 구성하기 때문에 정보의 구조화에 의존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기든스는 푸꼬에게서 빌려온 ‘감시’ 개념을 이용한다. 민족국가는 자본제적 또는 산업주의적 국가사회로 환원될 수 없기 때문에 그 자체의 특성에 따라 분리된 실체로 분석해야만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민족국가의 결정적인 요소이면서 자체적인 발전의 전제조건이 되는 것은 인구에 대한 감시와 통제 능력이다. 바로 이것 때문에 민족국가는 특정한 영역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독자적이고 강력한 행정적 단위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군사력을 여타 근대성의 차원들과 분리해서 보고자 하는 이유는 18세기 이후로 대규모전쟁이 발발하면서 전쟁과 군의 성격에 엄청난 변동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또한 20세기에 들어서서 군대가 산업화됨으로써 전쟁은 총체적인 성격을 띠기 시작했다. 핵폭탄이 지닌 엄청난 파괴력은 정치적인 수단도 무력화시켜버린다. 그러나 국가가 폭력수단을 독점하고 동시에 형법 등을 통하여 일탈자에 대한 감시능력을 향상시킴으로써 개별 국가 내부의 법과 질서를 유지하는데 있어서 군대는 부차적인 역할만을 수행하게 되었다.
자본주의․산업주의․민족국가에 의한 행정적 감시와 폭력의 독점 간에 상호작용은 근대성의 제도에서 핵심을 구성한다. 이 네 가지 차원들과 그것들 간의 상호작용은 서구유럽에서 처음 등장했지만 근대성의 역동성으로 말미암아 세계화됨으로써 점점 더 지구적인 현상이 되고 있으며, 이 점에 있어서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환경운동과 새만금개발
이상에서 살펴 본 근대성의 제도적 차원 속에서 다양한 유형의 사회운동들이 일어난다. 자본주의 제도에서 노동운동이 일어나고, 감시의 제도적 차원에서 언론의 자유와 민주화운동이 전개된다. 전쟁의 산업화로 말미암아 더욱 증대된 파괴력의 위험에 맞서 반전 평화운동이 일어난다. 중대한 결과를 낳을 수 있는 위험의 증대와 전쟁의 발발이 결합되기 때문에 평화운동은 더욱 중요성을 갖게 된다. 또한 산업주의의 제도적 차원은 환경운동으로 이어지는데, 지구온난화․오존층 파괴 등과 같은 지구적 생태재앙의 가능성과 결합된 환경위험의 증가 때문에 더욱 중요해졌다(Giddens, 1990: 55-71, 159-169; Holborn, 2001: 130-132, 135-139).
각각의 근대성의 제도적 차원들에서 과학과 기술을 이용하여 사회세계와 자연세계에 침투해 들어감으로써 인간의 손길이 닺지 않는 사회와 자연은 거의 남지 않게 되었다. 이로 말미암아 한편으로 근대사회는 자연과 전통을 소멸시킴으로써 더 큰 통제의 기회를 누리게 되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더 큰 위험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제 세계는 과학과 기술의 진보 그 자체에서 비롯된 제조된 위험(manufactured risk) 앞에서 불확실성을 없애는 만큼 새로 만들어 내기도 한다. 즉, 전통적으로 해 왔던 방식을 따를 수 없는 세상에서 보다 능동적으로 위험을 감수하는 방향설정을 해야만 한다(Giddens & Pierson, 1998: 307-310). 따라서 과학과 기술의 발전과 적용으로 가능했던 새만금개발로 말미암아 제조된 환경위험 역시 그것을 철회하고 원상을 회복하는 것이 대안이 아니라 그 위험을 성찰하면서 새로운 대안을 찾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새만금개발로 말미암은, 즉 새만금개발에 따라 제조된 위험은 다차원적이어서 대안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데 문제가 있다. 첫째, 환경적으로 제조된 위험이었다. 생태재앙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위험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이를 애써 외면했기 때문이다. 둘째, 새만금개발은 정치적으로 제조된 위험이었다. 애초에 정통성을 의심받고 있었던 특정 지역을 기반으로 한 정당의 대통령후보였던 노태우 씨가 개발 그 자체의 당위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득표를 의식한 개발계획을 세웠기 때문이다. 셋째, 경제적으로 제조된 위험이었다. 산업적 개발이 가져올 환경위험은 여러 경로를 통해 보고되었지만 경제논리에 매몰되었기 때문이다. 넷째, 지역적으로 제조된 위험이었다. 종교계와 시민사회단체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지역발전을 원하는 목소리에 밀려서 어쩔 수 없이 강행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새만금 여가개발을 통해서 새만금개발에 따라 제조된 위험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다차원적인 위험의 요소들을 성찰성으로 극복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즉, 다차원적으로 제조된 위험에 대한 성찰을 통해 통제할 수 있는 위험으로 전환하는 것이 우선되어야지 여가개발을 통해 제조된 위험을 극복하려 하면 더 큰 국민적 저항에 직면할 뿐이다. 이를 위해서 여가개발 이전에 산업적 개발에 따라 제조된 위험이 생태재앙으로 이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환경운동을 전개한 시민사회단체의 성찰성을 수용하여야 한다. 다음으로, 경제논리와 환경논리는 동시에 고려되어야지 어느 일방으로 가서는 안 된다. 따라서 경제논리를 내세웠던 사람들의 자성적 성찰이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지역발전을 요청하는 목소리는 국민적 합의를 기반으로 했을 때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여타 지역 국민들의 합의와 중앙정부의 재정적 지원이 절실한 상황에서 일방적 지역주의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참 고 문 헌
Giddens, Anthony. 1981. A Contemporary Critique of Historical Materialism. Macmillan.
Giddens, Anthony. 1990. The Consequence of Modernity. Polity.
Giddens, Anthony. 1991. Modernity and Self-Identity. Polity.
Giddens, Anthony. 1992. The Transformation of Intimacy. Polity.
Giddens, Anthony. 1994. Beyond Left and Right. Polity.
Giddens, Anthony. 1998. The Third Way. Polity Press.
Giddens, Anthony. 1999. Runaway World - How Globalisation is Reshaping Our Lives.
Giddens, Anthony & Christopher Pierson. 1998(1998). 『기든스와의 대화』(Conversations with Anthony Giddens: Making Sense of Modernity). 김형식 역. 21세기북스.
Holborn, Martin. 2001. “Anthony Giddens and Theory of Modernity”. Haralambos (ed.) Development in Sociology. Vol. 17. Causeway Press.
Kasperson, Lars Bo. 2000. Anthony Giddens: An Introduction to a Social Theorist. Blackwell.
Rojek, Chris. 1993. Ways of Escape. Rowman and Littlefield Publishers.
Rojek, Chris. 2000a(1985).『자본주의와 여가이론』(Capitalism and Leisure Theory). 김문겸 역. 일신사.
Rojek, Chris. 2000b. Leisure and Culture. Macmillan.
Rojek, Chris. 2002(1995).『포스트모더니즘과 여가』(Decentring Leisure - Rethinking Leisure Theory). 최석호․이진형 역. 일신사.
Rosenzweig, Roy. 1983. Eight Hours for What We Will - Workers and Leisure in an Industrial City, 1870-1920. Cambridge University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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