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2542 추천 수 327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Extra Form
유교전통에서의 정좌법

"The Confucian way of contemplation" by Rodney L. Taylor;1988

이 글은 Taylor교수의 "The Confucian way of contemplation"를 요약한 것입니다. 물론 앞 부분은 제 자신의 유교에 대한 기본적인 편견(?)을 기술해 보았습니다. 유교를(특히 이 책에서는 신유학 전통 내의) 정좌라는 수행방법의 눈을 통해 조명함으로써 하나의 종교로서 이해하려는 서구학자의 시각을 엿볼 수 있는 책이었습니다. 저자는 이 책의 대부분을 현 일본의 대표적 신유학자 중의 하나인 오카다에게 의존하고 있습니다. 책의 구성도 전반부는 그 자신이 신유학 전통내에서의 정좌의 흐름을 약술해 놓은 것이고, 후반부는 오카다의 대표적인 책 『坐禪 と 靜坐』를 요약 번역해 놓았더군요... 아무튼 관심있는 분에게 좋은 참고가 되었음 합니다.


Ⅰ. 나의 전제

정좌(靜坐)를 이해하기에 앞서 우리는 정좌가 유교 전통 아래있다는 전제를 다시 한번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이 전제는 결코 가볍지 않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유교적 맥락이라는 문맥을 간과해서는 유교의 정좌 의미가 쉽게 이해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먼저 우리는 유교의 궁극적 관심이 어디에 있는가를 우선적으로 살펴보아야만 한다.

유교는 그 궁극의 관심을 사회를 매개로 하는 자기실현(內聖外王)이라는 차원에 두는 데서 사상적 의미의 핵을 확립하고 있다. 즉 유교는 인간관계라는 그물 속에서 자신의 존재 의미를 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이 사회와 현실의 문제에 대하여 영향력 있는 발언권을 획득하고자 하는 것이 유학자들의 고민이며 추구였다. 이는 곧바로 도덕과 윤리의 문제로 연결되는데 그렇다면 유학자들은 사회윤리의 문제를 어떻게 해소하려고 하였는가? 여기에서 새로운 문제가 제기된다. 그들이 속해 있던 사회는 왕이라고 하는 절대 군주가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던 봉건시대였다. 그러므로 한 개인의 신분으로 치국(治國)한다는 것은 용이한 일이 아니었다. 그들은 왕이라고 하는 매개를 통해서만이 구체적인 치국과 평천하(平天下)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이때 제기되는 문제는 왕이 언제나 자기 편이 아니라는 차가운 현실이다. 이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기실 이 문제는 왕을 초극하는 절대자에 근원하는 논리를 획득하면 해결될 수 있다. 그래서 그들은 훌륭한 사유 체계와 설득 구조를 확립한다. 그리고 그것은 송(宋)의 거유(巨儒)인 주시(朱熹;1130-1200)에 의하여 종합되어진다. 그 구조물의 특징은 물리학과 윤리학의 결합이다. 즉 인간을 포함한 모든 사물의 생성 과정을 지배하는 보편 타당한 법칙(天理)이 인간의 윤리 법칙(人倫)에도 적용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윤리라고 하는 것은 취사선택의 문제가 아닌 절대적 정언 명제로서 인류 앞에 다가오는 것이다. 아무리 그가 높은 위치와 권력을 지녔다고 해도 천리의 움직임을 거스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유학자들은 이 보편(天理)과 특수(人倫)의 결합을 증명하고자 부단한 노력(*서구철학에서는 칸트가 이같은 고민을 위해 숙고하였다.)을 감행한다. 주시는 이 노력의 과정을 격물치지(格物致知)로 요약한다. 정좌는 이런 유교적 맥락 속에서 이해되어져야 한다.


Ⅱ. 저자의 의도와 책의 구조

이 책의 저자는 정좌라는 유교의 명상법을 통하여 유교의 종교성을 확인해 보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는 듯하다. 정좌법의 대가의 현존하는 일본의 유학자의 발언을 통하여 저자는 유교 역시 종교적 열정을 지니고 있으며 이는 요아힘 바흐의 종교체험(*요아힘 바흐는 종교체험을 궁극적 실재에 대한 인간의 응답(Ultimacy), 인간 전존재로서의 응답(Totality),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강렬한 체험(Intensity), 삶과 행동으로의 나아감(Action) 등 네 가지 양태로 요약해 주고 있다.)의 4번째 양태에서 확인할 수 있고 아울러 이를 통해 유교의 종교성을 확인하고자 한다. 그러므로 이 논저는 기실 정좌 그 자체에 있다고 하기보다는 정좌를 통하여 읽어 낼 수 있는 '유교의 종교성'에 있다할 수 있을 것이다.(*같은 책 57-58 쪽 참조. 저자는 유교의 대사회적 책임 의식이 내적 종교체험에 기초한다고 보았고 또 이러한 내적 종교체험은 정좌라고 하는 고유한 유교적 명상법으로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책의 전반적인 구조는 1부에서는 유교적 삶 속에서 정좌가 어떤 의미를 지녔는가에 대한 역사적인 고찰에 할애하고 있다. 중국 신유학자들이 이해하고 수행해 왔던 정좌의 의미를 고찰하며 그때 그때 오카다의 의견을 개진함으로서 논리를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2부에서는 오카다 저술(『坐禪 と 靜坐』) 중에서 발췌 번역을 하고 있고, 3부는 저자와 오카다와의 인터뷰 내용을 싣고 있다.

Ⅲ. 요 약

"유교적 길로서의 명상"

1. 유교의 추구하는 바

원시유가나 신유학 모두 성인(聖人)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때 성인이란 충만한 도덕적 능력을 배양한 사람을 일컫고 그 배면에는 절대적 진리로서 천(天)이 자리잡고 있다. 원시 유가에서는 천사상이 후대 신유학에 이르러서는 철학적으로 보다 세련되어진 용어인 천리(天理), 혹은 리(理)로 자리잡았다. 신유학자들은 이 천리를 체득함으로 천인합일(天人合一)의 사상을 형성하였다.

1) 학문과 자기 수양을 위한 여러 전략들

주로 '대학(大學)'과 '예경(禮經)'에서 수양의 단계를 언급하고 있다. 특히 대학에서는 격물(格物), 치지(致知), 성의(誠意), 정심(正心), 수신(修身)으로서 학문의 단계를 설명해 주고 있다.

2) 주리학파(主理學派)의 학문

츠엉 이(程이 ;1033-1107)로부터 계발되어 주시에 의해 종합된 정주학은 궁리(窮理)와 거경(居敬)으로서 학문의 방법을 삼고있다. 이때 궁리라 하는 것은 초점이 주로 외물에 있다. 즉 궁리는 독서와 인간 행위와 관계 등을 통하여 천리를 발견하는 것이고, 거경이라 함은 절대자의 체험, 혹은 절대자에 대한 응답이라 요약할 수 있다. 신유학의 선구자 저우 리엔시(周廉溪;1017-1073)는 정을 강조한 반면 주시에 이르면 거경과 궁리의 균형적인 수행을 장려하게 된다.

3) 심학파(心學派)의 학문 방법

루 시앙산(陸象山;1139-1193)과 왕 양밍으로 대표되는 심학파는 주시의 외물에 치중된 격물치지를 비판한다. 심학파에서는 천리는 이미 심속에 내재되어 있다고 주장하며 이로서 외물에 대한 궁리는 인간의 창조적인 영성을 말살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는 정주학의 시조인 츠엉 하오(정호;1032-1085)에서부터 찾아낼 수 있는 논리이다. 츠엉 하오 역시 내재된 심의 배양에 더 큰비중을 두었던 것이다.
양밍의 양지(良知)라는 것은 타고난 능력, 내재된 지식이라는 의미로 그 논리에 근거하여 그는 이미 주어져 있는 것을 바로잡아가는 내적 과정이 수양의 전부라고 주장한다(致良知). 그러나 아이러니 하게도 내적 수양을 강조한 심학파는 오히려 명상법에 대하여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는 양밍의 '지행합일(知行合一)'이라는 구호로부터 설명할 수 있다. 즉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은 구체적인 행위 그 자체에서 발견되어지는 것이다. 행위 하지 않은 깨달음이라는 것은 거짓 깨달음일 뿐 온전한 깨달음은 아니라는 것이다.

4) 명말의 주리학파

이 책의 주요 동기인 오카다를 이해하기 위해서 명말의 주리학파를 고찰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명말에 이르러 중국의 지식인들은 더 이상 궁리에만 매달릴 수 없는 문화적 위기를 당하게 된다. 왜냐하면 이제 송대의 주시가 활동하던 당시보다 더 많은 궁리의 대상들이 파생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이 문화적 부담 속에 허우적거리기보다는 논리의 확장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그래서 명말에 갈수록 점차 많은 유학자들이 존심(存心)의 차원을 강조하게 되었다. 이 때 대표적인 인물로 동림학파(東林學派)의 카오 판룽(高반龍 1562-1626)을 들 수 있다. 그는 리의 내재성을 수용하며 궁리를 존심의 의미로 이해하였다. 또한 그는 실제로 정좌를 수행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5) 막부(幕府) 신유학, 정주학(程朱學), 그리고 야마자키 안사이 학파

일본에서의 막부 시대란 중세로부터 근대로 옮겨가는 전환점 이다. 이때 신유학은 근대 일본 국가 형성을 위한 이데올로기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 안사아는 초기 일본의 신유학자들인 후지와라 세이카(1561-1619), 하야시 라잔(1583-1657), 그리고 정주학과 조선의 이황의 사상을 흡수하여 내적 명상법을 강조하는 수행법을 형성하게 된다.

6) 쿠즈모또 탄잔의 전통

명상에 의한 자기 수양을 강조한 쿠주모또 탄잔의 사상은 그의 손자인 쿠즈모또 마사츄쿠를 통해 현대 신유학에 있어서 정좌법의 대가인 오카다에로 이어진다.


2. 정좌에서 중심이 되는 자아

카오 판룽과 쿠즈모또에 영향을 깊게 받은 오카다는 그의 책 『坐禪 と 靜坐』에서 신유학의 학문 방법이 주시 이후 점차 외적 궁리에서 내적 존심이 중요시되었다고 지적한다. 신유학에서의 정좌 역시 성인이 되기 위한 한 방법일 뿐이다. 그러므로 유학자들은 지나친 명상이 도덕적 행위에 응답하지 못하거나 사회의 구체적인 문제로부터 멀어질까 항시 경계했다. 그리고 바로 이 점에서 유교의 정좌법은 여타 명상법과는 구별되어질 수 있다.

1) 정좌의 기원

저우 리엔시의 경우에는 정의 중요성을 강조했으나 수행으로서의 정좌에 대한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수행으로서 정좌가 언급되는 것은 츠엉씨 형제들(*저자는 특히 츠엉 이 보다는 츠엉 하오가 정좌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다고 한다. 같은 책 34쪽 참조.)로부터 이다. 주시는 리언핑(李延平;1093-1163)에게서 정좌에대한 가르침을 받았다. 신유학 전통은 정좌에 대한 자기 변호의 논리를 반성, 성찰 등의 모습으로 이미 지니고 있었다. 유학자들에게 있어서 정좌의 기능은 마음을 혼란케 하는 요인들을 제거하는데 있다. 이런 의미에서 정좌는 중요한 것이기는 하나 너무 그것에 치우치는 것도 경계하였다.

2) 주시와 정좌

주시에게 있어서 정좌는 총체적 자기 수양의 여러 방법들 중의 하나이다. 주시는 독서와 정좌의 균형을 강조하였다.

3) 정좌의 르네상스

명 말로 갈수록 점차 외적 궁리에서부터 자기 성찰, 반성, 정좌 등 내적 수양을 강조하는 풍조가 강조되었다. 그리고 이는 저우 리엔시의 가르침(主靜)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주시의 경우 그는 침묵에 함몰되는 것이 두려워 츠엉 이의 가르침을 수용하여 정좌를 수양론의 하나로만 제한하였다. 현대의 오카다는 주시보다는 저우 리엔시를 보다 긍정적으로 수용하여 정좌의 의미를 중시한다. 오카다는 정좌를 동아시아 사유 체계의 근간으로 이해하고 있다.

4) 카오 판룽과 정좌


명말의 신유학자인 카오 판룽은 내적 자아의 구현을 위한 수행에 관심을 두면서 자신의 글 속에 이에 대한 체험적인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그는 7일간의 명상에 대하여 언급한다. 첫째날은 단순히 쉬고 그 후부터 정좌에 주력하는데 3째일 에는 수행의 미묘한 경지에 도달하기 시작하고 7일째 되는 날에는 원래로 회복되어진다고 기술하고 있다. 주시가 반정좌 반독서(半靜坐 半讀書)로 균형 있는 정좌법을 제시 한데 반해 카오 판룽은 필요한 때에 할 것임을 얘기한다. 그리고 점차 정형화된 정좌법이 제시되고, 주시의 경우와는 달리 더이상 일상적인 도덕 행위를 수반하는 행위가 아닌 고립의 요소가 등장하게 되었다.

5) 정좌에 있어서 방법이 지니고 있는 이상

정좌는 하나의 방법이며 기술이다. 정좌는 인간 본성인 정(靜)으로의 회귀를 의미한다. 의지나 지식을 축적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6) 쿠즈모또 탄잔, 정좌 실현, 그리고 지식을 쌓음

쿠즈모또는 카오 판룽의 정좌론을 수용한다. 탄잔의 정좌 추구는 '지식을 쌓음'으로 발전한다.

7) 탄잔의 정좌법

탄잔은 좌선이 정형화되었고 기술적인 수행임에 반해 정좌는 수시로 행할 수 잇고 정형화된 자세가 없는 것으로 구별한다. 즉 강요되지 않는 수행으로서 그 느슨함을 정좌의 특징으로 본 것이다. 탄잔은 구체적인 정좌 체험에 관심을 집중했고 제자들에게 일상생활 속에서 정좌하며 대사회적 행위와의 균형을 강조하였다.

8) 정좌로부터 'Kotsuza(just sitting)'에로

오카다는 정좌의 한계를 인식하고 인간의 내적 본성을 드러내게 하는 방법으로 'Kotsuza'를 제시하게 된다. 이 때 Kotsuza란 정좌의 정형회된 방법적인 요소들을 제거하는데 있다. 이 때 Kotsuza란 실제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세계에서 정(靜)의 세계를 수립하는 것으로 보았다.


3. 명상으로부터 도덕 행위로

오카다에 있어서 정은 단지 고요일 뿐이다. 카오 판룽의 영향 아래 그는 행위와 정의 완전한 통합을 주장한다. 정좌가 수양과 기술로서 남아 있는 한 이것 역시 사유의 대상이 되어 버리고 만다. 그래서 그는 대안으로서 Kotsuza를 제시한다. 그에게 있어 행위와 정이라고 하는 것은 추상적인 개념의 주제가 아니라 일상사 속에서 만나지는 살아 있는 실재인 것이다. 유교는 사회 봉사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유교의 사회 봉사는 내적 자기 수양의 부산물인 것이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내적 자기 수양으로 얻어지는 절대자와의 합일 체험이 중시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1) 행위에 대한 현대의 정언적 명령

명상은 정을 체득해야만 하며 그 정은 사회의 도덕적 행위의 근간이 되어야 한다.

2) 세계에 대한 오카다의 응답

그는 이 문제를 성선설(性善說)에서부터 출발한다. 사후 세계는 그의 관심의 영역 안에 있지 않다. 세계의 문제에 대해 오카다는 철학적인 설명보다는 체험적인 역할을 강조한다. 선(善)의 내적 체험을 통해 인간 본성이 선하다는 믿음이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 믿고 있다.

3) 과학과 인간의 가치

그는 과학의 발전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과학이 우주 안에서 윤리적인 구조를 읽을 것을 강조하고 있다. 즉 인간 구원을 위한 과학으로의 전이가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이는 세계 안에서 의미와 목적을 찾으려는 종교적 관심을 과학이 수용할 때 가능해진다. 이를 가능케 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으로 오카다는 교육 체계 안에 명상을 편입시킴으로서 가능하다고 말한다.

4) 윤리와 동물

오카다는 모든 생명체에게도 인간들은 책임 의식을 지녀야 한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논리의 근거를 멍쯔(孟子)의 '측은지심(惻隱之心)'에서 찾고 있다. 이를 그는 실험 대상으로 죽어 가는 동물들에 대해서 그들의 희생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지녀야 한다는 말로서 표현하고 있다.

5) 생의학 윤리와 낙태

낙태와 안락사의 문제도 결국은 내적 선의 실현이라는 도덕적 책임 의식과 결부되어 있다.

6) 기술 사회

기술 사회 속에서 어떻게 인간성을 회복할 것인가? 오카다는 명상을 기존 교육제도에 편입시킴으로서 학생들에게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7) 핵전쟁의 위협

이 역시 결국에는 수신(修身)의 문제이다.

8) 세계 종교들

종교는 인간의 욕구를 억제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그러나 광신과 편견으로 나아간다는 점에서는 부정적인 역할을 하였다고 본다. 오카다의 주관심은 인간 삶에 대한 관심과 인간의 존엄성 문제이다. 이런 면에서 유교의 의미를 중시한다.

9) 죽음에 관하여

오카다는 사후 세계는 알 수 없다는 유교적 전통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



등록된 글이 없습니다.

Board Pagination Prev 1 Next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