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읽기
2006.06.08 23:29

이번 월드컵에서 보고 싶은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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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난 독일에 있었다. 먼 이국 땅에서 학위 중에 한일 월드컵을 만났다. 독일 유학생들 대부분이 그럴듯이 유일한 취미생활인 TV보기, 그리고 TV를 켜면 어김없이 화면을 가득 메우는 축구 경기들.. 덕분에 독일물 4-5년 먹게 되면 나름대로 해설가양인양 축구에 대해서는 꼭 참견을 하는 수준이 되고만다. 내가 꼭 축구에 대한 전문가는 아니지만.. 여하튼 2002년 당시 독일생활 7년차에 접어든 나로서도 한일월드컵에 대한 기대는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당시 난 절친한 독일친구 마르쿠스(Markus)와 함께 한일 월드컵을 맞이했다. 처음 박사반 세미나에서 만나 단번에 맘이 통하는 친구임을 눈치채고 오래된 친구처럼 사귀게된 친구이다. 대뜸 내가 한국에서 왔다니까 차붐을 아냐고 말문을 열며 박식한 축구지식을 자랑했던 친구.. 난 그 친구와 함께 한일월드컵 경기들을 지키며 진득한 축구대화를 이어갈 수 있었다.

폴란드와의 첫경기.. 황선홍선수의 첫골을 보고도 불안해 하는 나에게.. 마르쿠스는 "야~ 한국이 확실히 이긴다. 폴란드 선수들이 몸이 이전같지 않다. 너무 긴장했는지 굳어있다. 이 경기는 한국이 이긴다. 내가 장담해!"라고 추임새를 넣었다. 그후 유상철 선수의 추가골과 더불어.. 한국팀은 월드컵 사상 최초의 승리를 따냈다. 그 후로도 우리는 포르투갈전을 같이 보며 월드컵에 대한 정겨운 대화를 이어갈 수 있었다.

그렇게 월드컵 분위기가 무르익고.. 브라질의 5번째 우승으로 대회가 마무리 된 어느 날.. 난 다시 마르쿠스와 함께 내 조그만 기숙사 방에서 커피를 나누고 있었다. 그때 그 친구는 내게 이런 말을 건넸다.

"길용. 한국팀을 통해 우리가 얻은 게 뭔지 아니?"
"뭔데?"
"그건 축구의 본래 모습이야?"
"???"
"한국 국대선수들의 기량은 사실 유럽리그의 탑클래스라고 볼 수는 없어. 잘해야 후보정도 수준이지 곧바로 유럽 빅리그의 주전을 꽤찰 선수들은 많지 않다고 봐야지. 그런데 축구는 화려한 몇명의 슈퍼스타로만 독점되는 경기는 아니지. 유럽의 많은 축구팬들은 이번 월드컵에서 한국팀이 보여줬던 원시적 축구의 모습, 즉 축구 본래의 모습에 더 큰 감동을 받고 있다. 나도 그렇고.."

마르쿠스가 그 정도 말을 건네자.. 난 이 친구가 무엇을 말하고 싶어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건 이미 오래전부터 유럽의 축구팬들이 자신들이 사랑하는 선수와 클럽들에게 던지고 있던 말이었다. 축구 시장이 계속 커지고, 선수들의 연봉이 올라가고, 각종 다양한 마케팅 기술들이 발달하고.. 축구는 말그대로 황금알을 낳는 시장이 되었다. 하지만 그와는 반비례로 본래 축구가 보여주었던 11명의 끈끈한 협동심으로 이루어지는 건강한 패기와 넘치는 투지는 갈수록 색이 바래고 있었다. 승부에 대한 집착은 선수들로 하여금 성실한 경기자세보다는 화려한 헐리웃 액션에 더 신경을 쓰게 만들었고, 구단으로서도 멋진 승부와 경기보다는 장사가 되는 쪽으로의 기획과 관심이 집중될 뿐이었다.

그처럼 자본으로 물든 축구시장은 점점 화려함과 거대함은 성장해갔지만.. 승리를 위해 끝없이 투쟁하는 협동 경기로서의 마력은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서로 팬들에게 잘 보이기위해, 자신의 연본을 더 높이기 위해 발재간과 쇼맨쉽에 집중하는 슈퍼스타들은 늘어났지만.. 축구 그 자체를 즐기며 동료를 위해 팀을 위해 부지런히 땀을 흘리는 묵묵한 축구장의 일꾼들은 만나기 힘들어진 거다.

그런데 이유야 어쨌든.. 2002월드컵에서 한국팀이 보여준 것은 그들이 잃어버렸던, 혹은 잊혀져가고 있었던 원시 축구의 강렬함 바로 그것이었다. 특출난 선수들은 없어도 그들은 열심히 뛰었다. 축구에 집중하며 자신보다 더 좋은 위치에 있는 동료들을 찾아내며 묵묵히 승리를 위해 굵은 땀을 흘리고 있었던 한국 선수들에게.. 그들은 이들의 능력의 좋고 나쁨을 떠나.. 축구 본래의 모습을 읽고 있었던 거다.

기나긴 이야기를 전하며 나즈막히 마르쿠스는 내게 마무리 멘트를 날렸다.

"그런 점에서 이번 2002월드컵의 주인공은 우승팀 브라질이 아니라.. 바로 주최국 한국팀이다!"

그래... 난 이번 월드컵때도 그랬으면 좋겠다. 이미 거대한 상업주의가 월드컵 분위기에 편승하여 다양한 이벤트로 자본의 집중을 획책하고 있어도, 미디어도 나름대로 시청률 제고를 위해 각종 정신없는 사탕발림으로 시청자들을 유혹한다고 하더라도.. 난 역시 이번 월드컵에서 11명이 함께 뛰는, 승리를 위해 이해와 타산을 포기해가는 그런 선수들의 열정을 만나고 싶다. 경기의 결과보다는 승리를 위해 자신을 투신하며 헌신하는 선수들의 굵은 땀방울 그 자체에 감동먹고 싶다. 그것이 꼭 대~한민국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명예와 스스로의 약속을 지키기위해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의 몸짓을 보고 싶다. 그리고 그것으로 나의 월드컵 관전은 충분한 이유와 의미를 찾을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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