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읽기
2004.01.06 01:06

도올 선생의 첫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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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무엇인가? 라는 다분히 고전적인 주제를 타이틀로 건 도올 선생의 첫강의는 내용상으로는 크게 건질 것은 별로없었다.

진보적 역사관의 비판이야 이미 다양한 시도들을 통해서 이미 기존의 역사학자들 역시 충분히 이해하고 소화시키고 있는 부분이고, 식민지사관 역시 이미 수백번 반복되던 이야기고, 그리고 실학에 대한 주장 역시 그렇다..

허나 이전보다 좀더 심도있어진 그분의 민족주의적 자긍심만큼은 보다 더 진솔하게 노출되는 강의였다. (난 이 점에서 도올선생이 부디 경계선 놀이를 잘 해주기를 정말 학수고대해본다. 자칫 실수하다가는 국학이라고 하는 나락에 빠져 국수주의로 함몰할 가능성이 아주 없다고 보기도 곤란하기 때문이다. 이럴때 좀 답답스러운 것이.. 그분의 사유속에 큰 자리를 여전히 차지하고 있지 못하는 계급에 대한 이해이다. 그런 점에서 그분은 여전히 주자학자이다. 꼭 그것이 고리타분한 것이라고 확정해서 이야기할수는 없는거지만.. 적어도 그분의 사상적 스탠스가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나 참으로 이상스러운 것이.. 오늘 열강을 토한 그분의 강의가 내 귀에는 단편적인 문단들로 들리고 있었다는 거다. 도저히 문단과 문단들이 연결되는 논리적 정합성을 그분의 언어에서 찾기가 무척 곤란했다.

실학사관의 허구성을 질타하며 그 모든 이유가 역사를 역사밖에서 기술했기 때문이라 하면서, 또다시 그분은 이미 이념화되고 고정화된 자신의 외부적 사관을 가지고 한국사를 규격화 하고 있다. 그런 맥락에서 여전히 그분의 언어도 '거대담론'의 또다른 분파에 지나지 않는가란 의심이 든다.

좀더 역사를 미시적으로 쪼개어 보자면.. 사실 그분의 주장처럼 지금의 민족사관이라고 하는 것은 20세기의 부산물이고, 우리가 흔히 민족사관 속으로 이끌어오던 기존의 한민족 국가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이 꼭 그런 구도 속에서 이해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냐를 물어본다면, 사실 곤란한 부분들이 한두개가 아니다.

즉 이런 고민을 연장해 보자면.. 상식적인 수준에서는 우리와 동일한 정체성 혹은 최소한의 민족적 정통성을 공유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우리의 선조들이 꼭 그렇게 우리와 연속선 속에 있다고 볼 수 있겠는가 란 질문에 봉착하게 된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보다 정직하고 솔직한 대답은.. 그렇게 보기가 참 곤란하다는 거겠지.. 그 부분에서 도올선생은 슬쩍 비껴가고 있다.

그냥 편안하게 지역적 제한성이 민족적 정통성을 담보해준다는 상식적인 시각을 그분 역시 인정하고 있는 것인가? 이땅에서 생멸한 모든 것들은 신토불이 이데올로기에 의해 모든 한국적인 것이고, 한민족의 것인가? 그래서 정도전, 이제마, 최한기, 최제우는 곧 지속적이고 영속적인 정체성을 함주하고 있는 한국적이라고 하는 그 무엇, 그 특수한 그 어떤 것을 이땅위에서 우리에게까지 전해주고 있는 그야말로 우리의 할아버지인가? 그리고 지금 내 사상의 한 자락에 그분들이 고민한 정체성의 흔적이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는가?

과연 그런가?

혹시 정도전, 이제마, 최한기, 최제우는 딴나라 사람은 아니었던가? 그 사람들 그냥 조선이라고 하는 나라의 또 특정한 시대의 특정한 시공을 점유했다 사라진 별개 존재는 아니었을까?

허나 그 개별적 존재들을 연속선으로 묶어내는 '기술'은 또 무엇일까? 이미 그러한 묶음의 기술이 전제된 결론을 깔고있는 것은 아닐까?

하여 갈기는 조심스레 물어본다..

"정도전, 이제마, 최한기, 최제우가 우리 할아버지들이 맞나요?
그 분들도 정말 '우리'에 포함되는 건가요?"

이런 곤란스럽고 복잡스러운 질문들이 머리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있는 동안.. 계속 파편적이고, 단언적이고, 그리고 금언적인 그분의 발언이 침처럼 토해진다. 그러나 여전히 토해버려진 단락들 사이에 연결점은 찾아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게 그렇다는 것은.. 이미 그분은 학인의 언어를 방기시켜버렸다는 이야기이기도 할 것이다. 그 말은.. 이미 그분은 설교자가 되어 발언하고 있다는 것이고.. 그 말은.. 그분이 소실적 그처럼 되고 싶어했던 '부흥사'가 이미 되어있다는 말과도 상통하는 것일게다~


추신) 그럼에도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그분의 강연은 쾌히 효과적이고 또 월등한 것임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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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2002.07.09 Category문화읽기 Views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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