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읽기
2002.07.09 05:13

그가 그 자리에서 웃고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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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습니다. 꼭 당신들께 전해주고 싶은 사연이 있었습니다.

오늘 전 정말이지 오랜만에 활짝 웃는 홍명보 선수를 보았습니다. 언제나 얼굴에 깊은 주름을 잡고 부릅뜬 눈으로 '내일'을 각오하던 그의 얼굴에서 활짝 핀 꽃같이 정말 아름다운 웃음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10여년이 넘어가는 성상동안 사실 전 한번도 그렇게 밝은 그의 얼굴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그가 웃고있습니다. 마지막 승부차기를 결정지으며 두팔을 활짝 열고, 정말이지 너무도 밝게 웃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자리에서...

많은 사람들이 히딩크 감독의 능력에 경탄해 마지 않습니다. 물론 저역시 그러합니다. 그러나 그의 놀라운 능력뿐만아니라 그의 지도를 마다치 않고 묵묵히 그리고 꾸준히 받아들인 우리 선수들의 땀과 눈물역시 제게는 너무 소중한 모습입니다. 그들이 뜨거운 운동장에 그동안 쏟아낸 많은 땀과 열기를 전 이제 소중하게 간직하려고 합니다.

사실 스페인과의 대전을 지키며 전 너무도 마음이 아팠습니다. 계속되는 강행군으로, 그것도 막강한 세계의 강호들과 펼치는 피말리는 경기의 연속으로 이미 지칠대로 지쳐있을 우리의 대표선수들에게 또 하나의 승리를 강요하는 것이 너무도 못된 짓처럼 보였기때문입니다. 초록빛 그라운드를 뛰어다니는 그들의 모습에서 그동안의 거친 피로가 읽혀졌을때 정말 전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도 했습니다.

"그래 되었다.. 참 잘 뛰어주었다.. 8강도 기적이다... 이제 편히 쉬어도 괜찮다~"

너무도 무거워 보이는 발걸음들... 이제 넘져나던 의욕마저 시들어진 체력에 묻혀버렸는지.. 압박의 강도도 이전만큼 묵직해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숨가쁜 고통 속에서도 승리에의 열정을 포기하지 않는 그들의 모습을 또한 읽어버렸습니다. 힘든 몸을 이끌고 최후까지 공을 따내기 위해 몸을 날리는 그들의 투지를 또한 살피고 말았습니다. 자신들의 몸에 남은 땀 한방울 마저도 승리를 위해 쏟아부어야 겠다는 열정을 또한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들은 경기를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오늘의 승리..
기적같은 4강..
어쩌면 다시금 우리 세대에서는 볼 수 없는 이 쾌거!
온 국민이 함께 나눌 이 승리!


그러나 가장 먼저 이 승리는 당신들의 것입니다.

어느 누가 판정의 시비로 이 승리를 훼손하려고 하여도... 당신들이 쏟아 낸 진한 소금땀은 이 승리를 위한 조건으로 조금도 부족하지 않을 것입니다. 묵묵히 수련의 단계를 이겨내며, 곤란했던 훈련의 강도를 감내했던 당신들의 준비가 돈과 명예로 무장했던 그들보다 행운의 신을 훨씬 더 잘 움직였나 봅니다. 그리고 그러한 당신들의 감내는 충분히 그 신의 보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11명의 선수가 한 마음이 되어 유기적인 흐름을 보이며.. 서로 상대방의 자리를 지켜주며.. 달리고 또 달렸던 지금까지의 경기를 통해 당신들은 축구를 좋아하는 많은 이들에게... 축구는 개인경기가 아니라 단체경기이며... 어느 누구만을 위한 것이 아닌 11명 모두의 것임을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전 그것이 너무 행복합니다. 이름없던 당신들의 몸짓이 하나의 팀을 만들어가는 과정... 그리고 종료휘슬이 울릴때까지 멈추지 않고 뛰는 경기에 대한 '열정'과 '존경'... 전 그것을 일깨워준 당신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한순간의 재치와 기술로 사람들을 감탄하게 하진 못해도... 충분히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방법을 보여준 여러분들을 전 참으로 '존경'합니다. 누군가는 당신들의 조금은 어설퍼 보이는 몸짓으로 당신들의 열정에 대한 존경을 자꾸 뒤로 물리려 합니다. 그러나 믿기는 그러한 고집도 그리 오래가진 못할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부인하기 힘든 가장 명백한 것은 당신들은 정말 축구를 사랑하고 있고, 매 경기 최선을 다하고 있고, 또 뜨거운 열정으로 당신들의 게임을 존경스럽게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승패에 대한 애착과 집착에서 벗어난다면 우리는 금방 당신들이 그라운드에서 보여주는 존경스런 행위를 읽을 수 있게 됩니다. 그라운드에서 뛰고 있는 11명만이 아니라, 전 23명의 선수단... 그리고 그들의 뒤를 지키고 있는 20여명의 스탭진의 한마음을 전 당신들의 매 게임마다 느끼게 됩니다.

이제 전 너무도 행복합니다. 그리고 더이상 당신들에게 승리를 사주(?)할 용기도 없습니다. 그저 모든 선수들이 아무런 부상없이 이번 대회가 허락하고 있는 마지막 경기까지 잘 마무리해주는 것만을 바랄 뿐입니다.

아무리 당신들의 승리에 대해 이런 저런 잡음이 들린다해도... 그 어떤 잡음도 당신들의 소중한 '땀의 결과'를 앗아가진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들이야 말로 그라운드의 가장 '정당한 승리자'입니다.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지금 그 자리에서 흘린 땀에 대한 보상으로 활짝 웃고 있는 당신들께... 축하와 격려, 그리고 감사의 박수를 보내는 것 뿐입니다.


김병지, 이운재, 최은성
홍명보, 김태영, 최진철, 이민성, 현영민
송종국, 이을용, 이영포, 김남일, 박지성, 윤정환, 최성용, 유상철
황선홍, 안정환, 최용수, 설기현, 차두리, 이천수, 최태욱


이제 당신들을 너무도 큰 고마움의 마음과 함께 제 기억 속에 담아두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자랑스럽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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