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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산책을 하고 돌아와보니... Markus에게서 전화가 와있다. 평소엔 웬만해서는 응답기에 흔적을 남기지 않던 녀석인데... 오늘은 조금은 흥분한 목소리로 그것도 꽤 긴 시간동안 녹음을 남겼다. 일하고 돌아오다 기차역 근처에 있는 카페에서 한국과 미국과의 경기에 대한 보도를 보았다고 운을 뗀 후... 녀석은 자동응답기에 대고 정신없이 소리쳤다...

"길용! 드디어 한국이 해 냈다.. 이제 16강이 코앞이다.. 경기내용도 일방적이었더군... 정말 멋있다... 와우~ 놀랄 지경이다. 한국이 이런 축구경기를 보여주다니!..."

녀석의 흥분은 끊이지를 않았고 마지막으로는 다음과 같은 인삿말을 덧붙여놓았다..

"길용! 들어오면 반드시 내게 전화해! 와우 올레 코리아!"

평소에 축구를 무척 좋아하고... 또 축구에 대해서는 일가견이 있다고 하는 녀석의 호들갑이라 그리 싫지만은 않았지만... 포르투갈과의 일전이 있는지라 난 조금은 걱정스런 마음으로 전화기를 들었다.. 몇번의 신호음이 보내진 후.. 마르쿠스의 목소리가 들린다.

"밀러..(그 녀석의 성이다)"

"길용.."

그후 그 녀석은 다시 호들갑으로 돌변하여 지금 마악 다시 TV를 통해 보고 있다고... 한국팀이 정말 멋진 경기를 보여주고 있다고... 정말 자신은 이런 한국팀의 변화에 경의를 표한다고... 정신없는 찬사를 늘어놓았다... 그 순간 잃지않고 난.. "그래도 다음 상대는 포르투갈인데... 그래서 오늘 미국전을 반드시 잡았어야 하는데..."라고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그 후에도 마르쿠스의 호들갑은 변함이 없다. 미국 역시 잘하는 팀이라고 그런데 그 미국과의 경기를 일방적으로 몰고간 한국팀이 어떻게 포르투갈을 두려워 할 수 있냐고.. 그래서 난 한가지 사례를 제시했다. 바로 오늘 저녁 경기에서 포르투갈은 폴랜드를 4:0으로 셧아웃 시키지 않았느냐고... 그러자 예의 해박한 그 녀석의 축구지식이 쏟아져 나왔다.

"오늘 경기는 포르투갈이 이겼지만... 전반부터 후반초까지의 경기 흐름은 오히려 폴란드가 쥐고 있었지... 단지 폴란드 선수들의 공격과 움직임이 효과적이지 않아서 골을 얻는데 실패했을뿐이야... 그리고 포르투갈 친구들은 그때 그때 필요한 점수를 착실하게 딴 것이구... 그렇게 두골까지 먹고 폴란드 친구들이 경기를 너무 일찍 포기하긴 했지만... 여전히 빠르지 않은 폴란드 공격수들이 포르투갈의 문전을 위협하고 있었잖아? 그런데 길용~ 한국의 공격수들은 폴란드보다 훨씬 빠르고 힘이 넘친다구! 너 알아.. 그런 강력한 압박축구에 살아남을 축구팀은 지구상에 거의 없단말이야~ 넌 너의 국가대표팀에 대해 이제 자부심을 가져도 돼! 정말 한국팀은 대단한 발전을 이룬 거야!"

그래 난 마르쿠스의 호들갑이 과장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전형적인 독일사람답게 이 녀석도 자신이 판단한 근거 안에서만 평가를 내리기 때문이다. 4년전 98년 월드컵때도 멕시코와의 경기를 그 녀석과 함께 보았다. 그때 역시 싸늘한 분석을 내린 후... 그래도 나를 친구라고 생각했던지 전후반 경기 모두가 끝난 후에는 침묵하며 서로 헤어진 기억이 너무도 선명하다... 그런 녀석이기에 이번의 호들갑은 정말 한국팀을 위한 찬사처럼 들렸다. 계속해서 포르투갈 같은 개인기 위주의 팀은 한국팀같이 프레싱이 좋은 상대를 만나면 고전한다고... 자기가 보기에 한국팀의 16강행은 확실하다고... 무척 단정적으로 말한다. 계속해서 내가 그래도 포르투갈은 유럽선수권에서도 4강을 지냈고.. 우승후보로 거론될만큼 강팀이라고... 응수하니.. 그 녀석은 다음 말을 따발총처럼 쏘아댔다..

"길용 지난 한국팀의 10경기를 생각해봐! 그 많은 강팀들과의 경기들 중에서 한국팀이 패배한 경기는 현 세계 챔피언이고 세계 최고 선수인 지단이 뛰고있던 프랑스뿐이었어.. 지금 지단은 부상중이지만.. 당시 지단은 전반까지 분명 한국팀과 온 힘을 다해 경기를 했었고 당시 스코어는 심지어 2:1로 한국팀이 리드하고 있었다고... 그리고 그 외의 팀들도 영국, 스코틀랜드, 핀란드, 터키, 코스타리카 등 거의 모두가 세계의 강팀들이었잖아! 너네는 우승후보 영국에게도 지지않은 팀이야! 그리고 프랑스를 지치게 만들었던 팀이었고! 지금 한국은 무척 매력적인 축구를 보여주고 있어! 특히 선수들이 보여주는 경기의 집중력은 작금 세계 최강의 수준이야! 제발 이제 너도 네 팀에 대한 신뢰감을 가져봐~ 봐, 포르투갈이 비록 강팀이라고 하지만... 한국도 충분히 겨룰만한 실력을 지닌 1급팀이란걸 금요일 경기가 증명해줄거야!"

녀석은 오히려 나를 훈계하듯이 한국팀에 대한 자부심을 잔뜩 고양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승패를 떠나 그처럼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펼치는 국가대표팀을 둔 내가 정말 부럽다고 몇번이고 말이 이어갔다. 결국 우리는 금요일 경기를 함께 시청하기로 결정했다. 내가 사는 동네 기차역 주변에 있는 카페에서 유료TV를 시청하기로 한 것이다. 물론 한국과 포르투갈의 경기는 이곳 공중파에서도 중계하긴 하지만... 녀석은 미국과 폴란드의 경기도 중요하다며 동시 멀티중계를 하는 유료방송을 보자고 해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 경기는 이곳 시간으로 1시 30분에 시작하는데... 1시에는 만나서 분위기를 띄어야 한다고... 거진 일방적으로 약속을 잡고... 녀석은 다시 "올레 코리아~"라며 전화를 끊었다...

그후 난 시간이 나는대로 이곳 신문들과 영자 신문들을 기웃거렸다. 독일내의 언론은 한국팀의 선전과 실력에 계속 감탄하는 분위기였고... 미국과의 경기에 비긴 것도 승점 1점을 획득한, 따라서 16강 진출을 위해 결코 불리하지 않은 결과임을 강조하고 있었다. 그리곤 이어지는 포르투갈 감독의 인터뷰에서... 그가 한국팀을 두려워하고 있으며 그만큼 한국팀이 지금 보여주는 경기력은 세계 최강의 수준이라고 우려하고 있었다. 미국과의 첫경기에서 실패한 것이 계속 포르투갈 팀의 족쇄가 되고 있다고 안타까와했다. 더군다나 그 한국이 개최국이라는 점으로 인해 포르투갈의 감독은 더욱 괴로워 하고 있었다.

그 기사들을 읽으며 난 내가 갑자기 딴 세상에 와있지는 않은지 궁금하기조차했다... 도대체 무슨 마법이 지나간 것이길래... 전술이해도가 거진 빵점에 가깝다고 조롱을 받던 한국팀이 불과 1년여의 기간만에 이런 식의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인가? 각종 중계방송에 등장하는 축구전문가들도 한국팀의 현 실력을 높이 평가하며... 지금 우승을 노리고 출전하고 있는 팀의 감독에게 두려움까지 선사하고 있는 팀이 바로 한국팀이라니! 그러고보니 오늘 포르투갈이 폴란드에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직후 방송을 흐르고 있었던 해설자의 멘트가 생각이 난다.

"드디어 두경기 만에 포르투갈이 이번 월드컵에서의 첫 승점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경기는 주최국인 한국의 대표팀입니다. 포르투갈의 16강 진출을 위해서는 매우 중요한 경기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포르투갈로서는 무척 어려운(schwer genug) 경기가 될 것입니다."

지금 사실 한국팀은 충분히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우승후보가 어렵게 상대를 해야할 팀이 된 것이다...

오늘 오후 월드컵 특집 프로그램에서는 미국과의 경기가 끝난 후 곧장 숙소로 향하는 한국 선수들의 모습을 보고 히딩크에게 질문을 던지는 장면이 방영되었다. 히딩크는 유창하지는 않지만... 막힘없는 독일어로 기자의 질문에 답변을 주고 있었다. 기자는 왜 선수들이 기자회견없이 숙소로 향하느냐고... 혹 당신이 그들의 인터뷰를 금지했냐고... 그러자 히딩크 감독은 다음과 같이 답변하고 있었다.

"제가 왜 인터뷰를 금지했겠습니까? 그건 선수들의 자체적인 판단입니다. 그들은 미국과의 경기가 무승부로 끝난 것에 대해 불만인 것 같습니다."

그리곤 흘러나오는 독일 진행자의 멘트... 현 피파랭킹 12위의 미국과 무승부를 기록한 42위의 한국팀이 불만이라! 이런 격세지감을! 어쩌면 이런 경기를 하면 좋아서 날뛰기라도 할텐데... 12위인 미국은 싱글벙글인데... 42위인 한국은 불만이라... 언제부터 한국팀이 이렇게 자신감이 넘쳐났지? 도대체 언제부터... 도대체 언제부터 우리의 대표선수들이 저처럼 당당하고 또 자신감에 넘쳐나는 표정을 지었었는가?

외국에서 맞이한 한국의 월드컵...

많은 생각을 만들어주고 있다... 그러나 월드컵의 열기가 휩쓴지 10여일... 이제 난 한국팀의 경기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승패와 경기의 결과가 아니라... 그들이 필드에서 보여주는 축구에의 열정과 그동안 땀의 결실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들이 압박축구의 개념을 이해하며 상호 커버플레이로 상대방을 중원에서부터 무력화시키는 과정도 살필 수 있게 되었고... 감독이 어떤 구도하에 전술을 구사하고.. 또 선수들을 교체하고 있는지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난 참 많은 것을 얻은 셈이다. 정말 지금은 한국팀이 경기하는 것이 좋고... 그들의 경기를 지켜보는 것이 행복하다. 지단이나 피구처럼 이름이 알려져 있지 않고, 또 그들처럼 비싼 선수들은 없지만... 그들보다 더 분명한 전술이해와 체력, 그리고 열정을 가지고 필드를 누비는 난 우리의 대표팀이 정말 자랑 스러운 것이다.

이제 마르쿠스가 그렇게 설명하지 않아도 난 나의 팀을 사랑하고 자랑할 수 있을 것 같다..

금요일이다... 중요한 시합이 있는 날이다. 바라기는(마르쿠스도 그렇게 희망한다고 분명히 나에게 말했다) 한국팀이 포르투갈과 좋은 승부를 펼치고 16강행을 결정 짓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나는 그 경기에서의 승부보다는 그냥 한국팀의 경기가 정말 보고 싶어진다. 냄비근성의 언론과 팬들에게 집중타를 얻어맞으면서도 자신들이 좋아하는 축구를 익혀 겨루고 있는 그들의 모습을 그냥 이렇게 지켜보는 것 만으로도 난 충분히 즐겁고 행복한 것이다.

내가 바라는 것은 그들이 좋은 결과로 16강에 오르는 것 보다는, 그들이 후회없는 경기를 펼쳐주는 것 뿐이다.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것 만으로 난 충분히 행복할 것이다.

금요일... 노천카페에서 마르쿠스를 만나면 난 이렇게 말할 것이다.

Wie gesagt, ich bin sehr stolz auf unsere koreanische Mannschaft.
(그래 난 정말 우리 한국팀이 자랑스럽다!)




한국 축구국가대표팀 여러분 정말 감사합니다.

Danke Euch für al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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