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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시민권


하덕규라는 가수가 있습니다. 대학시절부터 이 사람의 노래를 참으로 많이 듣고 또 즐겨 불렀습니다. 처음 ‘시인과 촌장’이라는 이름으로 앨범을 발표하고 제 기억에는 “짝사랑”이라는 타이틀곡도 불렀던 것으로 기억이 납니다. 그때는 그저 노래 깔끔하게 하는 신인이 등장했나보다 라고 생각했었고... 몇 번 방송을 타며 흐르던 그의 노래에 잠시 귀만 맡겨두는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잊혀지기를 몇 년....

아마 제 기억엔 86년 정도였던 것 같은데... 우연히 길을 가다 레코드점을 장식하고 있는 그의 새로운 앨범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당시 파스텔톤으로 장식된 앨범의 커버가 강한 자극으로 제 눈을 때렸습니다. 까만색의 고양이가 한가한 듯 꼬리를 곧추세우고 먼 시선을 주고 있었고... 바로 고양이의 시선이 멈출 즈음에는 너무도 새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하고 그 맞닿은 경계선에 하얀색의 비둘기가 게으르게 앉아있는 그림이었습니다. 무엇에 끌린 듯 들어가 그의 앨범 안에 숨어있는 곡목들을 살펴보았습니다.

“푸른 돛, 비둘기에게, 고양이, 진달래, 얼음 무지개, 사랑일기, 떠나가지마 비둘기, 매, 풍경, 비둘기 안녕, 고향의 봄...”

당시의 여느 앨범들과는 달리 무언가 질서정연한 테마로 자리를 하며 일정한 가수의 이야기가 흘러나오는 듯 보였습니다. 고민 없이 그의 앨범을 사들고 턴테이블 위에 올려놓았을 때 잔잔히 흐르던 그의 노래는.... 참으로 격정의 80년대를 살던 제 가슴에 좋은 쉼터로 남았습니다.

그 후 “숲”이라는 타이틀이 박혀있는 그의 새 앨범도 참 마음을 시원하게 해 주었습니다. 그 앨범 속에는 최근에 조성모 때문에 더 많이 알려지게 된 “가시나무”와 언제 들어도 그의 진지한 고민과 삶에 대한 생각이 묻어나오는 “푸른 애벌레의 꿈”, 그리고 “좋은 나라”와 같은 곡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 점차 기독교에 침잠해 들어가며 앨범의 성격도 조금씩 바뀌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비둘기에게”와 “숲” 이후 나왔던 두장의 앨범은 “하덕규 다움”이 많이 상실된 조금은 실망적인 것이었습니다. 물론 여전히 그의 노래는 깔끔했지만, 그 만이 보여줄 수 있었던 가사의 진지함과 표현의 수려함이 신앙이라는 두께에 눌려버린 것 같아 보였기 때문입니다. “숲”이후 나온 두장의 정규앨범, 각각 “쉼”과 “광야”는 그래서 많은 안타까움과 기다림으로 들어야만 했습니다.

그 이후 저도 독일로 떠나오고.... 그는 여전히 기독교방송의 DJ와 저명한 복음송 가수로 살아가겠거니 생각했습니다. 그리곤 아주 많이 그를 잊고 지냈습니다.

그러다 아주 우연히 가까인 지내는 이로부터 하덕규씨가 최근에 새 앨범을 내었고... 또 두장의 복음송에 가까운 앨범 외에도 자신의 이름으로 낸 솔로 앨범이 하나 더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 그에게 그 솔로 앨범이 있다고 해서 당장에 빌려 이번에는 턴테이블이 아닌 시디 플레이에 넣어보았습니다.

하덕규 “집1”이라고 붙여있는 그의 솔로앨범에는 “누구도 외딴 섬이 아니다”라는 부제가 달려있었습니다. 97년도에 나온 앨범을 5년이나 되어서 받아들었으니... 참 독일에서의 생활이 저를 많이도 가난하게 만들었나 봅니다. 그처럼 좋아하던 가수의 소식으로부터 이렇게 격리되어 살고 있었으니.... 그 후 곧바로 시인과 촌장이란 이름으로 나온 그의 네 번째 앨범을 주문해서 함께 듣고 있습니다. 저로서는 잊혔었던 그가 다시 돌아온 것 같아 무척 반갑고 즐거웠습니다. 홀로 지내는 가운데 그가 던져주는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참으로 녹차처럼 부드럽고 아늑했습니다.

차차 그의 노래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고요... 오늘은 그의 솔로 앨범 “집1"에 실려 있는 ”어머니의 시민권“이라는 노래를 소개하고 싶네요...



“어머니의 시민권”

어머니는 지금 잠이 드셨을까 ‘가네무라 스미꼬’ 적에 꾸던
그리운 나라로 가던 그때 그 꿈속에서 아직도 단발머리 새하얀 교복을 입고

어머니는 지금 잠이 드셨을까 큰 누나를 업고 ‘지에무시’ 트럭을 타고
최전방으로 숨어들어가던 그 밤 그때 아기 울음소리 포탄 소리 아직도 들으실까

어머니는 지금 잠이 드셨을까 아버지가 떠나던 날에
세월만큼 아프게 걸어온 두 무릎에 아버지의 힘없는 흰머리를 누이고
영원의 노래가 들려오는 시간의 그 문 앞에 서서

영원히 쉴 곳 있는 거기로 손 흔드는 아버지 먼저 보내고

어머니는 지금 잠이 깨셨을까 그래도 내일은 해 떠오른다며
마음속에 이미 하늘나라 있다 웃으시며 모든 일에 감사, 감사, 감사하시는 어머니는

이제 하늘의 시민권이 있는 어머니는.....


조용한 기타의 선율에 맞추어 부르는 그의 음성은 보다 세월의 무게를 감내한 듯이 흘러나옵니다. 아마도 그의 개인 적인 가족사의 한 부분을 노래로 만든 듯이... 한 어머니의 인생이 절로 스며 나오는 참 곱고, 깊이 있는 노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의 노래를 통해 우리는 우리의 전세대가 겪어야 했던 근대사의 슬픈 그림자를 읽게 됩니다. 일제 시에 태어나 꽃다운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정체성 없이 살아야만 했던 슬픈 세대들.... 태어나면서 어머니로부터 물려받게 되는 언어와는 다른 언어를 사용하며 자신들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친구들을 바로 가까이에서 보고 있었을 우리의 부모들.... 지금도 습관처럼 일본어 단어를 간간히 섞어 쓰시며 때로는 지극히 이기적이고, 때로는 극히 편벽적이며 혹은 옹고집과도 같은 모습을 보여주시는 우리의 부모들.... 삶과 그들을 얽어매고 있는 역사의 사슬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음을 이 짧은 노래는 웅변해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참 슬픈 세대들인 것 같습니다. 유년기의 때를 벗자마자 또 전쟁의 슬픔을 온 몸으로 겪어내야만 했던 세대들.... 언젠가 저도 제 어머니와 마주앉아 전쟁 때의 일을 물은 기억이 납니다. 꽃다운 15세 때 맞이한 남북전쟁... 어머니는 지금도 그때 그날 밤 하늘로부터 쏟아지던 폭포수보다 더 크고 무섭던 폭격기의 고함이 들려온다고 합니다. 서울에서 지내시다 가족들과 함께 충청도까지 피난을 갔었노라고 말씀하시며 가슴을 쓸어내리시는 내 어머니를 보고 저는 아무 언어도 던지지 못했습니다. 살짝 내 어머니의 가슴만 열어보아도 이처럼 우리 민족의 슬픈 역사가 마구 쏟아지는 것을... 그때 저는 역사라고 하는 것은 바로 그처럼 소박한 이의 가슴에도 묻어있는 것임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그 세대도 길게 늘어선 석양의 그림자처럼 점차 지워져 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아픈 세월을 ‘생에 대한 의지’ 하나로 감내하며 인고해 내던 ‘어른’들이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혹은 그들은 자신들의 삶 속에서 배운 여러 모양의 ‘지혜(?)’들로 인해 젊은 세대들에게 손가락질 받아가며... 쓸쓸히 인생의 마지막 대사를 준비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제대로 된 가치관 없이 정권욕과 사욕에 찌든 이들이 갖가지 이데올로기로 포장된 미끼로 이들을 ‘일터’로 ‘전장’으로 몰아버렸을 때에도 말없이 살아가기 위해 그 모든 것을 감내했던 우리의 ‘전 세대’들이 이제 서서히 우리 곁을 떠나고 있습니다.

때로는 그들 뒤에 걸린 그림자가 참으로 많은 사연을 던져줍니다..........




추신) “시인과 촌장”이라고 하는 이름은 서영은씨의 같은 이름의 단편소설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도시인과 시골사람이라는 의미이지요... 하덕규씨와 시인과 촌장에 대한 더 자세한 정보는 그의 홈페이지에서 구할 수 있을 겁니다. http://www.4rest-hom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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