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
2002.07.09 05:11

저패니매이션에 대한 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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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의 신화찾기

저패니매이션에 대한 한 단상


나의 일본애니에 대한 본격적인 순례는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한 사람을 알면서부터이다. 그리고 나와 미야자키의 만남은 ‘원령공주(모노노께 히메)’라고 하는 그의 최근작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후에 원령공주라고 하는 이름은 일본문화자체를 거부하고 있는 우리네 사정 때문에 홍콩을 통해 들어온 중국어 버전이라 일본어 '모노노께', 즉 도깨비가 원령이 된 것이라는 사실을 접했을 때의 씁쓸함도 나의 한 기억으로 분명히 자리하고 있다.

나는 아주 우연한 기회에 미야자키의 이 최근작을 한 후배로부터 전해듣게 되었다. 사실 그때까지 나의 일본애니에 대한 지식수준는 유치함 바로 그 짝이었다. 기껏 드래곤 볼, 은하철도 999, 천년여왕, 우주 소년 아톰 등으로 세례를 받았을 뿐... 또한 그러한 TV애니 이상의 일본애니가 있을 것이라고는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사정이 그러하니 극장판 일본애니에 대한 나의 지식과 정보의 수준이란 참으로 참담한 수준이었을 것이다. 그 지경의 내 수준에 들여온 원령공주란 애니의 제목은 내게 다음과 같은 정도의 감흥만을 제공해줄 뿐이었다.

“흐음, 이 쪽바리 놈들이 또 무슨 엽기적인 망가를 만들었을까? 원령공주라 이거 뭐빠지게 하늘을 쏵쏵 날라댕기며 초능력으로 신나게 때려부스는 SF무협 만화가 아닐까? 으음, 제목부터 야리꾸리한게.... 대충 야한 그림도 들어가 있겠구.... 우흐흐, 잼은 있겠구만....”

약간의 과장된 면은 있겠지만... 솔직히 그랬다. 그 제목에서 풍기는 뉴앙스에 일본만화하면 공상과학만화와 거의 동일시하고 있었던 순진했던 나의 이성은 원령공주의 첫인상을 거기에서 한발짝도 더 진행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몇날 몇일이 지난 후... 어렵게 구한 CD라며 후배가 건네준 ‘도깨비 공주’의 비디오 CD를 보고 난 내 몸을 훑고 내려가는 한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물론 이러한 느낌은 그가 만든 본격적인 극장애니였던 ‘바람의 계곡 나우시카’를 본 후의 감동과 비할바도 아니었지만... 사실 내 견해로 작품의 완성도와 치밀함, 그리고 이야기의 탁월한 구성력은 모노노께 보다는 나우시카에 더 많은 점수를 주고싶다).  실사영화를 저만치 떼어놓아 버리는 꽉짜인 구성에 스토리 그리고 작품의 완성도 등등.... 게다가 빼놓을 수 없는 그림의 정교함에 수려함까지!(물론 그의 수려함은 디즈니류의 정밀함과는 차이가 있다.) 미야자키는 그동안 그의 이름 한번 들어보지 못했던 나를 비웃기라도 한 듯이 작품이 상영되는 내내 가볍게 미소하며 나의 가벼움을 질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러한 그의 모습을 영화 전편을 통해 느껴야만 했었다. 그 후 난 미친 듯이 그의 작품을 구하기 시작하였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붉은 돼지’, ‘천공의 섬 랴퓨타’, ‘루팡3세’, ‘이웃집 토로로’ 등 등.... 특히 나우시카를 본 후 내가 느껴내야만 했던 감흥은 충격 그 자체였다. 그 정도의 작품성을 지니고 있는 실사 영화도 사실 손꼽아야 할 정도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상징적 이미지를 그림으로 처리하는 그의 능력에 나는 열린 입을 다물 생각도 하지 못했다. 차차 시간이 나는 대로 그의 작품을 분석해 보겠지만... 이번에는 우선 일본 애니에 대한 나의 미천한 이해의 한 자락만을 피력하고자 한다.

사실 난 미야자키의 애니에 이끌리어 본격적인 일본애니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었다. 물론 미야자키의 작품 이외에도 ‘공각기공대’, ‘아키라’, ‘신세기 에반겔리온’ 등등 문제성 짙은 작품들을 직접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하나같이 무시할 수 없는 세계관을 담고있는 이들 작품들을 대하고서 난 깊은 고민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곤 마음 한 귀퉁이에서 이런 영화들을 보고 자라는 일본의 신세대 젊은이들을 부러워 한 적도 있었다. 이런 작품들의 세례 속에 있게 되는 그곳의 신세대가 가지게 되는 이미지와 또 상상력, 그리고 그것들을 가지고 즐길 수 있는 구성력이 한편으로는 두려워지기 까지 한 것이다.

난 지금 한국에 없다. 유럽의 한 나라에 와있다. 그래서 한국보다는 훨씬 자유롭게 일본의 애니를 접할 수 있는 편이다. 비근한 예로 요즘은 한 방송사에서 열심히 신세기 에반겔리온TV판을 방영 중에 있다. 물론 나 역시 열심히 녹화해가며 이 작품을 보고 또 보고 있다. 작품들이 대부분 자국언어로 자막처리 한 상태라 열심히 비디오를 앞으로 뒤로 돌렸다 대사를 확인하느라 진한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더군다나 에바같이 대사로 승부를 걸고있는 작품들은 아주 죽을 맛이다. 그림에 집중하다 보면 대사가 화악 지나가 버리고, 대사에 집중해 버리면 화면의 긴장도가 너무 떨어져 버리고... 그래서 우선은 그림에 치중하여 한 번 훑고 그 다음 다시 대사에 신경쓰고 하는 것을 수차례 반복 중에 있다. 후에 이에 대한 분석이 종료되면 내 큰 맘 먹고 에반겔리온에 대한 크리틱을 해 볼 심산이다.

이제 잡소리는 정리하고 오늘의 주제에 코를 박아보자!


리미티디 애니 vs. 풀 애니

우선 한 후배의 독백을 끌어들이며 일본애니의 특징을 만나보도록 하자. 얼마전인가? 에바시리즈 좀 보자고 나에게서 비디오를 빌려간 후배가 몇일이 지난 후 테이프를 돌려주면서 혼잣말처럼 버린 언어가 있었다. “근데, 이 놈의 만화는 왜 이리 대사가 많아요?” 순간... 나는 단번에 일본애니의 특징을 간파한 이 친구의 날카로운 분석력에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 일본애니는 미국, 즉 디즈니의 그것보다 훨 많은 대사로 무장하고 있다. 그리고 내가 그 친구에게 빌려주었던 에바시리즈의 경우는 좀더 극단적인 경우이기도 하다. 여하튼 일본애니는 지겹도록 많은 대사의 양을 가지고 승부하는 것을 우리는 쉽게 만나볼 수 있다. 왜 그들은 그렇게 대사에 집착하는가? 이 문제를 쉽게 이해하는 길은 경제적인 문제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보통 극장용 영사기로 1초라는 시간동안에 사용되는 필름은 24장의 사진이다. 애니의 경우도 초당 이 24개의 프레임을 사용하여 영사기를 돌리는 것이 보통이다. 디즈니류의 만화는 거의 이 초당 24라는 공식을 지켜가는 편이다. 그것을 일컬어 풀 애니메이션이라고 하는데, 일본애니의 경우는 사정이 좀 다르다. 일본의 애니는 미국의 24프레임 방식과는 달리 8프레임을 사용하는 리미티드 애니메이션인 것이다. 일본의 애니과 1초의 시간을 위해 8장의 그림을 사용하게 된 것은 일본애니의 아버지라고 여겨지는 테즈카 오사무의 공로(?) 때문이기도 하다. 흔히들 TV애니의 창시지로도 부르고 있는 이 테즈카 오사무라고 하는 인물은 일본 애니계에서는 거의 신화적인 존재이다. 우선 그가 만든 작품들을 열거해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하~”하고 탄성을 지를 바로 그런 인물인 셈이다. ‘우주소년 아톰’, ‘철인 28호’, ‘정글대제 레오’ 등등 60년대부터 일본의 애니계를 이끌어간 실질적인 애니황제가 바로 이 사람이다. 바로 애니황제 태즈카가 처음 방송국과 TV애니를 시작할 때 ‘애니보급’이라는 지상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턱없이 싼 제작비로 계약을 체결하는 바람에 생겨난 것이 일본식의 리미티드 애니메이션이다. 저렴한 가격으로 애니를 제작하는 가장 최선의 방법은 당시로서는 가격도 만만치 않고 구하기도 쉽지 않았던 애니 영사용 셀을 아끼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과감히 24프레임 정책을 포기하고 8프레임 방식으로 일본의 애니는 나아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과거 한국의 경우도 애니제작자들의 열악한 환경으로 인하여 사용한 셀지를 다시 지우고 재사용하는 일도 적지않았다고 하니 그들의 고충을 가히 짐작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여하튼 테즈카의 이러한 태도와 행동은 후에 미야자키와도 같은 후배 감독들에 의해 비판도 받게 되는데... 꼭 일본식의 8프레임 방식이 애니의 발전에 저해적인 요소로 작용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상상력에 건 승부수

그것은 일본애니와 디즈니로 대표되는 미국애니를 감상한 후 곧바로 느낄 수 있는 차이이다. 우선 디즈니의 애니는 참으로 섬세하다. 오래된 애니건 최근 애니건 한 장면 한 장면마다 실사와 비견해도 전혀 꿀리지 않을 정도로의 세련됨과 자세한 묘사에 성공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요즘은 컴퓨터 그래픽이 발전했다고 쳐도.... 50-60년대 그들의 작품을 보노라면 그 당시에도 상당히 세련된 묘사에 신경을 쓰고 있었음을 확인하게 된다. 비근한 예로 ‘백설공주와 일곱 난장이’라고 하는 작품에서 백설공주가 춤추는 장면을 보게 되면 마치 사람이 살아서 춤을 추는 듯한 동작을 하는 것에 감탄의 언어를 쏟아놓게 된다. 더군다나 그 장면을 그리기 위해 실제로 댄서가 춤추는 장면을 실사로 촬영하여 하나 하나 그 필름에 셀을 대고 백설공주로 그려냈다는 사실을 접하고 보면..... 미국인들의 장인정신도 무시할 수 없는 정도의 것임을 고백하게 된다. 그리고 최근 CG를 활용한 그들의 작품에도 이러한 세밀한 장인의 손길은 남아있다. ‘라이온 킹’의 오프닝 장면에서 연출되는 아프리카 밀림의 하루는 어느 실사 못지않은 미려한 묘사와 또 화면구성을 하고 있음에 절로 감탄을 쏟아놓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는 다르다. 그들은 그처럼 세밀한 시간과 또 자본을 가지고 초당 24장이라는 물량적 공세를 취하고 있지 않다. 물론 요즘이야 그들도 이 정도의 투자여유는 충분히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애니는 쉽게 풀 애니로 방향을 틀지 않는다. 왜 그런가? 아마도 그들은 애니의 영역을 실사와는 구분되는 영역에 두고 있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미국의 그것이 실사를 지향하는 애니라면 일본의 애니는 확고한 자신들만의 세계를 지니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마치 실사처럼 느끼게 만드는 세밀한 묘사에는 거리를 두고 있을 지는 모르지만.... 애니의 기본적인 성격인 상상력에는 무한히 성공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즉 그들은 다 만들어진 떡을 관객들의 입 속에 집어넣어주려하기 보다는 관객들 스스로가 그 떡을 만들어보라는 메시지를 주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는 그런 모습으로 보이지 않을런지는 모르지만 전혀 다른 이미지의 표출을 통해 마치 그것이 실제로도 그러한 것처럼 느끼게 하는 상상력을 동원한 ‘공감적 실감’에 그들은 승부를 걸고 있는 셈이다. 이런 예로서 에바시리즈에 자주 등장하는 폭파장면을 들어 볼 수 있겠다. 에바에 등장하는 폭파장면은 어김없이 십자형의 포화 내지는 천사의 날개와도 같은 형상의 폭연이 등장한다. 사실 실제로 폭파의 섬광이 그처럼 선연한 십자형 모습을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에바의 십자형 섬광은 에바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와 흡착하듯 연결되어 관객들로 하여금 상당한 실감도를 느끼게 해준다. 애니제작자가 보여주는 그림이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여 마치 그것이 사실인 것처럼 느끼게 하는 순간인 것이다. 이것은 세밀한 묘사를 통해 마치 그것이 사실인 것처럼 느끼는 것과는 분명 차이가 있다. 이런 점에서 일본의 애니는 상상력의 긴장도를 극도로 높이는 점에서 디즈니류의 애니와는 수준을 달리하고 있다.


세련된 대사가 주는 묘미

일본의 애니를 특징지워지는 또 한가지는 세련된 대사이다. 일본 애니를 보고있노라면.... 물론 일본 애니 대부분이 TV판으로 제작되어 후에 극장판으로 나오는 과정 속에 있는 탓이기도 하지만.... 시간과 투자비를 줄여보려는 제작자들의 사투를 상영시간 구석구석에서 만나볼 수 있다. 하긴 매일 매일 방송되는 연재물에 밥줄을 걸고 있는 이들의 가련한 모습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되겠다. 대개 TV애니의 러닝타임이 25분 정도인데.... 실사같이 않고 이 정도의 분량을 매일같이, 아니 매주 같이 채운다는 것은 사실 엽기적인 노력과 정성이 없이는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제작자들은 무언가 반복적인 화면을 찾기에 혈안이 되기 마련이다. 이런 그들의 고충 속에 태어난 것이 바로 변신물 시리즈이다. 흔히 알려진 세일러문의 애니도 이런 종류의 것이고... 로봇 만화 대부분이 언제나 반복하는 그림들을 지니고 있다. 즉 로봇과 조종사의 도킹 장면, 혹은 로봇의 변신장면, 아님 그 로봇의 출동장면 등등 적어도 1-2분 정도의 분량은 매번 같은 그림으로 채워도 되는 장면을 대부분의 일본애니는 지니고 있다. 적어도 TV판에서는 말이다. 여하튼 이러한 그들의 가열한 투쟁은 정지화면, 내지는 극도로 제한된 셀을 사용하면서도 관객들의 시선을 끌만한 묘수를 찾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들이 승부를 걸게 된 것은 바로 대사이다. 사실 몇몇 특수한 부류의 장르를 논외로 한다면 일본 애니의 대사는 상당한 수준이다. 미야자키의 작품들을 말할 것도 없고, 아키라나 에바 시리즈에 등장하는 대사들도 그 만화가 청소년 대상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의 내용과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대사들은 즉물적이고 즉각적이라기 보다는 상징을 통한 비유성 표현이 많아 곧바로 관객들의 상상력을 비집고 들어오게 된다. 물론 화면은 거의 정지되어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은 그 그림이 서있음을 느낄 수 없다. 왜? 그때가 그들은 그 정지된 화면 속에서 나온 대사가 자극한 상상력을 통해 더 많은 그림을 머리 속에 그려대고 있기 때문이다.


비주얼한 정보와 그 피드백

솔직히 난 일본애니를 보며 그들이 반세기 동안 이루어놓은 업적과 노하우가 놀라울 지경이다. 더군다나 그들이 창조해놓는 스토리의 발랄함은 열린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지구상에 등장한 모든 신화를 교묘히 짜깁기라도 한듯한 그들 애니의 구성을 보면 어쩌면 일본애니는 일본인들의 현대적 옷을 입은 신화같게도 느껴진다. 더군다나 이러한 신화적 상상력으로 세례를 받고 있는 일본의 신세대들이 어떠한 모습으로 성장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몸서리칠 만큼의 궁금증이 유발된다. 사실 비주얼한 것에 중심을 두고 있는 이들의 모습은 여러 모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실 무언가를 암기할 때도 우리는 그 내용보다는 비주얼한 것들을 기억해내는 것을 훨씬 수월해 한다. 즉 A4지 한 장에 빼꼭이 적혀있는 글들을 모두 암기하는 것은 골백번 태어나도 힘들게 생각하지만.... 그만한 크기의 그림 하나 우리 머리 속에 담아내는 것은 하루에도 수십, 수백번이 가능한 것이 인간이다. 그러니 가능한 모든 정보를 비주얼 한 상태로 변조시켜 우리의 뇌 속에 저장해 둔다면 문자화된 정도를 기억하는 것 보다 훨씬 많은 양의, 그리고 다채롭고 풍부한 정보를 담아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 이후 저장된 정보들을 세밀히 문자화 시킬 수 있는 능력마저 가지고 있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이다. 우리가 하나의 사진을 보고 그 사진의 이미지를 타인에게 설명할 수 있듯이, 우리 머리 속에 있는 이미지를 차근차근 다른 이에게 언어로서 풀어댈수만 있다면.... 그야말로 캡인 셈이다. 난 일본의 애니를 보면서 그들 제작자들은 어쩌면 이 정도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이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수없이도 한다. 사물을 일단 그림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 그리고 그것이 철저히 내 안에 동화되어 다시 하나의 이야기로 나올 수 있게 하는 능력.... 사실 지금껏 신화가 우리에게 부여해주던 능력들 중의 하나이다. 허나 지금은 그 아련한 신화보다도 더 선명한 모습으로 일본의 애니는 사람들에게 그러한 능력획득을 위한 보교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초장부터 너무 잔소리가 길어져서 나도 내가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모를 지경이다. 대강 생각나는대로 자판을 두드려댔는데.... 이거 영 주저리 주저리 중언부언 한 기분이다. 그래도 분주한 시간이 흘러간 이상 오늘은 이 정도로 끝내야 겠다. 지금 내가 일본애니에 대한 통사를 쓸 형편도 못되고 일본애니의 특징에 대해서는 그때 그때 일본 애니에 대한 감상문과 비평을 통해 피력하는 것이 나로서도 훨 수월할 것 같다.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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