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글
2002.07.09 05:05

장미 아줌마

조회 수 2787 추천 수 18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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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가 꽃을 피우는 이유는...


장미란 꽃은 뽐내기 위해서 피는 줄만 알았습니다. 가끔씩 아는 사람이 무슨 발표회다 혹은 생일이다 해서 꼭 그 꽃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그 때마다 근처 꽃집에 들려 눈에 들어오는 놈으로 몇 송이를 집어 듭니다. 돈을 지불하고 투명한 비닐 포장지에 싸여있는 녀석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왠지 얼굴이 붉어집니다. 짙붉은 색깔로 치장한 장미란 놈은 채 터지지 않은 웃음처럼 정말 알맞은 정도의 속살만을 내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어엿분 아가씨의 계산 없는 미소처럼 녀석이 펼쳐대는 내숭은 극치를 달립니다. 게다가 무슨 향수를 뿌려댔는지 대번에 코를 찌르는 체취는 뜨거운 피를 지닌 뭍 사내의 가슴을 앗아가기에 충분합니다. 또한 군살이란 걸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깔끔한 각선미 역시 일품입니다. 흠을 잡아보자면 그 중간 중간 잘록한 허리 위에 꼬챙이 같은 질투가 돋아 성급한 사내의 마음에 상처를 낼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여하튼 장미를 바라보던 저의 서정은 한마디로 아리따운 아가씨를 만난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이 같은 저의 생각을 한판에 무너뜨리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그 사건 역시 장미로부터 비롯됩니다.

이전까지 제가 가지고 있던 장미에 대한 생각은 ‘관상’ 그 자체였습니다. 즉 내가 보고, 즐기고, 감상하고, 가슴 설레기 위해 장미는 거기 서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 않더군요. 제가 머물고 있는 곳을 나와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는 골목길 맨 끝집엔 적지 않은 장미가 피어 있습니다. 처음 그 장미들이 활짝 웃기 전에는 전 늘 보아오던 늘씬하고 향기로운 장미의 자태를 기대했습니다. 허나 그 장미들의 봉오리가 완연히 폭발했을 때에는 전 그러한 저의 기대가 잘못된 통념에 기대었던 것이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많이 흐른 뒤 골목집 담장 위로 고개를 내민 장미들은 꽃집의 장미와는 달리 참으로 커다란 웃음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장미들은 10대의 청순함도, 20대의 신선함도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40대 아줌마들의 펑퍼짐한 몸매처럼 선 굵은 웃음을 짓고 있었던 것입니다. 차라리 그건 미소가 아니라 함박웃음이라고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색깔조차도 꽃집에서 봐왔던 놈들이 지닌 터질 듯한 붉은 빛과는 전혀 다른 그 무엇이었습니다. 왠지 바랜 듯이 보이는 그 빛깔 역시 한마디로 너무 촌스러웠습니다.

그 때 비로소 저는 장미가 꽃을 피우는 이유를 알았습니다. 장미는 뽐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서 꽃을 피웁니다. 그 펑퍼짐한 웃음은 되도록 많은 벌들을 끌어 모아 자신의 생명을 이어나갈 새로운 씨앗을 배태키 위한 세심한 배려였습니다. 왠지 선이 굵고, 투박해 보이고, 촌스러운 듯한 야생장미의 그 모든 형태는 자신에게 부여된 생의 영역을 지켜나가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던 것입니다.

제가 꽃집에서나 볼 수 있었던 그 앙증스러운 장미의 모습은 본래 장미의 모습이 아니었던 겝니다. 그건 참된 장미의 모습이 아니라 인간의 장난이 들어간 일종의 로봇 장미라고나 할까요……. 그러기에 알맞은 몸매와 짙은 향기로 사람을 취하게 할지는 모르지만 이내 시들어버려 그 썩어가는 냄새를 보는 이의 기억에 마지막 선물로 선사하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담장 위의 장미꽃 형제들은 내년이 되면 다시 한번 소박하지만 커다란 웃음으로 저를 반겨줄 것입니다.

自然과 人爲의 참모습을 일깨워준 귀중한 사건이었습니다. 저는 ‘살아있음’과 ‘자연스러움’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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