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글
2002.07.09 05:04

똥을 밥으로~

조회 수 2739 추천 수 33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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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차이?



제가 살았던 서울의 하숙집 주변에는 큰 집들이 무척 많았습니다. 사람들은 그 커다란 집들을 여관이라 부릅니다. 뻔할 뻔자이지만 여관이 있는 골목엔 술집도 꽤 많습니다. 대학촌이라고 불리우는 신촌일대에 왜 이리 여관과 술집이 많은지 잘 모르겠습니다.

언젠가 신문지상을 통해 우리나라 20대가 다른 나라에 비해 술을 엄청나게 퍼 마신다는 소식을 보았습니다. 그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전 그런 현실이 실감나게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대학에 들어서자마자 저는 그 소식이 '참말'인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대학에 들어온 후 몇달이 지나자 축제분위기가 캠퍼스 주변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습니다. 대학 축제에 대한 저의 첫인상은 온 교정을 뒤덮은 막걸리 냄새로 도배되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내내 시끄러운 꽹과리 소리와 더불어 천지를 진동하는 막걸리 냄새는 간간이 섞이는 소주 냄새와 함께 신촌 일대를 물들여 버렸습니다.

축제기간 중엔 많은 학생들이 여관 속으로 미끌어져 들어 갑니다. 그리고 거리에는 살아있는 시체(?)들이 하나가득 즐비합니다. 합리적인 언어구사도 잃어버리고 팽그르르 돌아버린 눈동자위에 '하이크라스', '힐사이드', '벤츠280', '올림피아'의 시끄러운 난무가 연일 지속됩니다.

밤이었습니다.

제가 도서관을 나서는 10시 정도의 시간은 충혈된 축제꾼들에겐 기똥찬 황금시간대에 불과했습니다. 그들이 잠자리에 들 시간은 아직 한참 뒤의 일이 됩니다. 그렇게 정신없이 24시간이라는 정해진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갑니다. 그래도 버릇없이(?) 아침은 찾아오지요. 혈액속에 끼어든 알콜농도가 아직 정상수치로 떨어지지않은 친구들에게 시뻘건 아침이란 정말 버르장머리없는 불청객일 뿐입니다. 아침식사 후 저는 버릇대로 도서관을 향합니다. 8시가 조금넘은 시간때문인지 밤새 신촌일대에 널려있던 수많은 시체(?)들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거의 눈에 띄지않습니다. 다만 그 시체들이 남겨놓은 부끄러운 '잔해(?)'만이 여기저기 시야에 걸려듭니다.

바로 그 때, 축제기간이 마악 끝난 일요일 아침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날 전 7시 30분 정도되어 집 앞을 나섰습니다. 그리고 버스가 잠시 쉬어가는 마당을 향해 걸어갔습니다.

바로 그 짧은 여행 중에 저는 아직 덜 깬 지난 밤의 수면이 후다닥 도망가버리는 신선한 장면을 목도했습니다. 축제 마지막 날이라 그랬던지 제가 걸어가는 길위엔 여느 때보다 더 많은 오물들이 널려있었습니다. 한국인의 식사풍습에 어울리게 그 오물들 역시 삭다만 섬유질의 김치와 라면세대답게 꼬불꼬불한 인조 기생충(?)들이 뒤섞인 희불그스레한 모습이었습니다. 그 생긴 모습만 봐도 이맛살이 정신없이 수축과 이완을 반복할 지경이었습니다. 저 역시 서서히 이마에 은근한 자극을 주기 시작했는데...

그 때였습니다.

하늘에서 푸르르 성령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나타내준다는 비둘기가 떨어져 내렸습니다. 그리곤 제가 그토록 역겹게 보았던 오물덩어리를 향해 쏟아질듯 달려들었습니다. 그런 후 그 비둘기는 오물들이 펼쳐내는 심각한 악취(?)를 비웃기라도하듯 정신없이 그것들을 먹어치우기 시작했습니다. 자고로 '식사 중의 개님은 때리지 말라!'는 명언이 있습니다. 그만큼 이 '식사'라고 하는 행위는 거룩한 의식인 것입니다. 하나의 생명체가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하여 새로운 에너지를 자발적으로 공급해주는 식사행위에 우열적인 가치평가를 매겨서는 안된다는 얘기입니다.

'식사', 곧 이 '먹음의 행위'는 인간 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들에게도 가장 소중하고 필요한 시간이며, 그 생명체의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엄숙한 행위인 것입니다. 그래서 엘리아데라고 하는 꽤나 유명한 종교학자는 식사라고 하는 일상행위가 아주 먼 옛날에는 가장 거룩한 종교적 행위중의 하나였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제법 골격을 갖춘 종교치고 이 '먹는 의식'이 없는 종교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리스도교의 '성만찬례'를 위시하여....

아무튼 이 비둘기의 식사행위는 제겐 적잖은 충격이었습니다. 제 눈에는 그리도 추하게만 보이던, 그래서 그 사물에 대한 이름조차도 썩 좋을 수 없는 '오물'이란 명칭을 부여했건만 이 비둘기란 놈의 눈에는 그것이 그토록 중요한 '음식'으로만 보였다니...

이럴수가! 꼭같은 사물인데도 그 '사물과 그 사물을 대하는 이와의 관계'에 의하여 그 사물의 가치가 전혀 달리 평가될 수도 있었던겝니다. 제게있어서 그 오물은 말그대로 별 쓸모없는 쓰레기 더미에 불과했지만, 비둘기의 눈에는 자기가 살기위해 꼭 필요한 '밥'이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우리가 하찮게 여기는 것으로 인해 크나큰 아픔을 당하고 있고, 또 우리는 그들 눈에는 도대체 중요하다고 할만한 가치조차 없는 것으로 인해 마냥 끙끙거리고 있을까?'

우리들의 '우리만'으로 귀착된 협소한 시각이 얼마나 우리를 병들게 할까요? 저는 왜 오물을 오물로서 밖에 보지 못했을까요? 혹시 제가 술취한 사람이 토해낸 것 말고 또 오물로 생각하는 다른 그 무엇이 어떤 이에게는 '음식'과 같이 중요한 것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전혀 불가능한 것일까요? 그날 저는 하루종일 고민했고 '오물'을 '음식'으로 볼 수 있는 훈련을 거듭했습니다.

그래요 우리는 너무 좁은 생각 속에서만 살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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