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학이란 무엇인가
2006.10.01 22:29

성스러운 경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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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스러운 경전들

고타마 붓다는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그에게 물음을 구했던 모든 이들에게 가르침을 베풀었다. 그의 제자들은 붓다가 여기에서는 이 사람들에게, 저기에서는 저 사람들에게 이야기 했던 것을 기억 속에 간직하고 있었다. 제자들 스스로 이해하지 못한 것은 계속해서 설명되었다. 붓다가 사망하였을 때, 제자들은 그의 가르침을 정리하였고 그 후로 계속하여 수도승들은 자신들의 세대로부터 다음 세대로 그것을 계승시켜 나갔다. 붓다의 열반 이후 2백년에서 3백 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그들은 스승의 가르침을 문자로 기록하였다. 그들은 팔리어로 (이 기록들을) 암송하였고, 그리고 종료나무 잎 위에다가 기록하였다. 그것이 팔리어 경전이다. 이와 같은 작업은 인도의 데반아가리어Devanagarischrift, 스리랑카 어, 미얀마아, 라오스어, 캄보디아어 그리고 태국어로도 반복되었다.

스리랑카가 영국의 식민지가 되고 난 어느 날 그렇게 만들어진 팔리어 불경중의 하나가 소송 건을 심리하기 위한 관리로 파송된 한 젊은 영국인 손에 들어왔다. 당시 마을에는 불교 승려들을 위한 사원 때문에 소송이 걸려있었다. 그때 필사본 불경이 증거물로서 제출되었는데, 그 자리에 있던 어느 누구도 그것을 번역할 수가 없었다. 당시 영국인 관리는 토마스 윌리엄 류스 데이비드Thomas William Rhys Davids, 1843-1922였다. 그는 브리스로우Breslau에서 산스크리트어를 연구했고 또 그것으로 학위까진 마친 사람이었다. 당연히 그 필사본 불경은 곧바로 그의 관심을 흔들어 깨웠다. 곧바로 그는 신속하게 팔리어 전문가를 수소문하였고 존경받는 탁발 승려인 야트라물레 운난세Yatramulle Unnanse를 찾아냈다. 데이비드는 이 승려로부터 이 낯선 언어와 종교에 대한 가르침을 받게 되었다. 1864년 데이비드는 세일론에 도착하였고 1878년에는 불교에 대한 연구서를 출판하였다. 그의 책은 <그리스도적 지식 증진 협회> Society of Promoting Christian Knowledge에서 비그리스도적 종교들에 대한 시리즈 중의 하나로 출판된 것이다. 계속해서 많은 강연들과 특강들, 그리고 팔리어 본문의 번역본들, 또한 사전 등 여러 책들이 뒤를 이었다. 1904년 데이비드는 맨채스터 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그는 영국 비교종교사학 분야에서는 최초의 교수가 된 것이다.

그리고 그는 문헌학자였다. 당시 그는 거대한 문헌학적 목표로 인해 크게 고무되어 있었다. 그는 팔리어 경전 전체를 라틴문자로 펴내고자 했으며, 또한 팔리 본문들을 영어로 번역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 모든 작업을 혼자의 힘으로 해낼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데이비드는 1881년에 유명한 <팔리어 문헌 협회>Paly Text Society를 창설하였다. 이 협회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는 세일론, 미얀마, 영국,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그리고 미국 등지에 있는 팔리어 전문가들로부터 많은 지지와 도움을 얻게 되었다. 여러 번에 걸쳐 재판된 저명한 붓다와 불교교리에 관한 책을 저술한 헤르만 올덴베르크Hermann Oldenberg가 <팔리어 문헌 협회> 최초의 운영위원이 되었다. 그 사이 팔리어 경전이 라틴어 문자로 출판되었고, 영어로도 번역되었다. 이 팔리어 경전은 한권 한권씩 주목할 만한 부피로 출판되어 나왔다. 마치 성서처럼 팔리어 본문 역시 11번씩 중판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은 성스러운 팔리어 경전들의 단지 첫 번째 부분이었을 뿐이다. 두 번째 부분, 즉 주석들도 있었다. <팔리어 문헌 협회>는 이 주석의 편찬과 번역을 자신들의 두 번째 과제로 설정하였다.

다른 식민지에서도 역시 서구인들은 전리품, 귀중한 예술품 그리고 여러 필사본들을 유럽으로 가지고 왔다. 여러 도서관장과 박물관장들 그리고 부유한 개인자산가들이 필사본 문서수집에 투자하였다. 그들은 수집한 문서들의 문헌학적 가치에 대한 평가를 부탁하였다. 문헌학자들은 이러한 필사본 서적들을 연구소에 속한 도서관을 위한 것으로 만들었다. 또한 대다수 본문들의 테마가 종교적이었기 때문에, 당시 문헌학자들 중에서는 종교에 대해서도 전문적인 지식을 소유한 새로운 전문가들이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이처럼 종교학은 본문 비평학으로부터 출발하였다. 그리고 이것은 지금에도 종교학의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종교학자들은 기꺼이 스스로를 문헌학자라 자임할 것이다. 물론 황금의 발굴 시기가 다시 오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의 문헌학자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본문들을 대학의 도서관으로부터 구할 수가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적어도 새로운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문헌학의 창고는 가득히 채워졌다. 이제는 수집되어진 것들을 타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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