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학이란 무엇인가
2006.09.24 18:07

III. 종교역사학-특수함에 대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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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종교역사학-특수함에 대한 연구

이미 오래 전부터 종교학은 ‘종교역사학’Religionsgeschichte과 ‘비교 종교역사학’Vergleichende Religionsgeschichte이라는 두개의 다리로 서 있었다. 그중 비교 종교역사학은 경우에 따라 ‘종교현상학’Religionsphänomenologie으로, 혹은 ‘체계적인 종교학’Systematische Religionswissenschaft라 불리기도 한다. 종교역사가는 개별적인 종교들을 연구한다. 역사학적 연구를 통해 얻어지는 결과물은 비교적인 종교학자들에 의해 체계화된다. 그들은 좀 더 높은 위치에서 여러 종교들로부터 얻어진 다양한 독특성들을 보편적인 분류들 안에 꼭 맞아떨어지게 할 수 있는 하나의 체계를 얻기 위해 애쓴다. 대부분의 종교학자들은 각자 전공에 따라 이와 같은 두 개의 전문적인 분야에서 연구하고 있다.

라이프치히 대학의 종교학자였고, 1935년부터는 미국에서 교수생활을 했었던 요아킴 바흐(1898-1955)는 1924년에 제출한 그의 교수자격논문에서 종교학의 두 분야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바흐의 설명에 의하면 종교역사학은 종적이고, 체계적인 종교학은 횡적이다. 종적인 것은 한 종교의 시작부터 후대 시점에 이르기까지 종교적인 사실의 발전 속에서 그 종교의 내부를 관통한다. 횡적인 것은 다양한 종교들을 관통해 지나간다. 왜냐하면 연구자들은 각각의 종교들 속에서 하나의 종교적인 사실을 연구하길 원하기 때문이다. 전자는 다음과 같이 묻는다. “X라고 하는 종교는 어떻게 지금과 같이 되었는가?” 그리고 후자의 질문은 다음과 같다. “모든 종교들 안에 내재하는 X는 무엇인가?”

종교역사가들이 추적하는 것이 언제나 (한 종교가) 어떻게 태동했고 성장했는가를 묻는 발생사에 관한 것만은 아니다. 종교역사가들 역시 ‘무엇이 종교적인 사실의 본질적인 것인지’ 그리고 ‘무엇이 그들의 실제적인 모습인지’, 바로 이 들 사이의 긴장에 대한 것도 규명하고자한다. 그들은 또한 하나의 종교적인 사실이 톱니바퀴 장치를 구성하는 한 축과도 같이 종교적인 체계 안에서 그리고 한 인간과 그의 가족과의 관계처럼 하나의 종교가 속해있는 문화 속에서, 개별적인 그리고 많은 신앙인들에게서 어떻게 영향을 끼치는 가에 대해서도 발견하고 싶어 한다. 심지어 많은 사람들은 그러한 발전이 어느 방향으로 갈 수 있을는지, 그리고 어떤 복잡다단한 문제가 그 사이에 끼어들 것인가를 미리 보고자 한다. 따라서 어느 누구도 ‘종교역사학’이란 단어를 오해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고고학에 관한 것은 아니다. 물론 종교역사학이 고고학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사실 오랫동안 그래 왔었다. 하지만 ‘종교역사학’은 종종 과거보다는 현재에 대해서, 따라서 종종 소멸된 종교보다는 살아있는 종교를 다룬다.


1. 종교 문서들

문자를 발명한 사람은 칭송받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문자가 없었다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의 학문이 있었을 것이다. 문자 없는 학문 그것은 도저히 상상 할 수도 없다. 메피스토Mephisto 역시 공짜로 열심히 강연 내용을 필기하는 파우스트 박사의 조교직을 수락했던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흰 종이에 무언가를 적었다면, 편안한 마음으로 그것을 집으로 가져갈 수 있기 때문이다”  흰 종이 위의 검은 글씨, 그것들은 대학 도서관과 미래 지식인 세대들을 양성하는 부화장과도 같은 초등교육기간들마다 차고 넘친다. 거기에 종교학도 예외는 아니다.

세계에서 서구에서만큼 종교 문서들을 높이 평가하는 곳도 없을 것이다. 구텐베르크가 인쇄술을 발명한 이래 (그 자체의 문자적 의미가 ‘책’이기도 한) 성서는, 만약 그렇게 말할 수만 있다면, 최고의 선교사로 평가할 수 있다. 각 나라의 성서공회들은 무료로 혹은 아주 저렴한 책값으로 지구상에 통 털어 지금까지 수십억 개의 성서 본문들을 유포했다. 어떻게 성서의 본문들이 비그리스도인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었는지가 하나의 좋은 반증이 된다. 공산주의 관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책도 바로 성서이다. 엄격한 형벌로서 그들은 성서를 유포하는 이들을 억압하고 있다.

다른 종교들에서도 성스러운 문서들은 높이 평가된다. ‘토라 배우기’는 경건한 유대인들의 삶 속에서는 가장 중요한 것이다. 무슬림들은 꾸란의 모든 절구들을 초자연적인 것으로서 받아 적는다. 신실한 시크교도는 그들의 성스런 책인 그랜트Granth를 인격을 지닌 존재로서 존경한다. 만약 그랜트가 예배의 중심에서 떠나있다면, 즉 예배 이외의 시간의 그랜트는 비단으로 만든 침대 덮개와 모기장이 드리워져 있는 보드라운 침대의 비단 베게 안의 이 경전만을 담아두기 위한 작은 상자 속에 보관된다.

종교사 속에는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관찰된다. 선승들은 책을 보관하는 방과 화장실의 문을 서로 마주보게 집을 짓는다. 여기에는 상징적인 의미를 있다. 독서는 경전연구에 천착하는 승려들을 지치게 할 것이다. 그래서 사찰 안에서는 독서를 위한 등불 같은 그 어떠한 보조등도 밝히는 일이 없다. 그들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명상이지, 문자에 대한 박학다식은 아닌 것이다.

처음에는 문헌학이었다

종교학의 아버지는, 경우에 따라서는 몇 명 더 꼽을 수도 있겠지만, 막스 뮐러Friedrich Max Müller, 1823-1900이다. 18세 되던 해 뮐러는 그가 태어난 도시인 뎃사우Dessau를 떠나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연구하기 위해 라이프치히 대학에 입학한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호머Homer 기원전 8세기경와 호라츠기원전 Horaz 65-8의 ‘진부한 이야기’에 질려버린 뮐러는 산스크리트어로 자신의 전공을 바꾸었다. 그 당시 가장 저명한 산스크리트어 전문가 중의 한사람은 유진 불노프Eugène Burnouf였다. 1845년 막스 뮐러는 불노프가 있는 파리로 갔다. 당시 그의 나이 22세였고 필생의 과업을 찾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블노프는 베다Veda연구를 뮐러에게 권하였다. 그리고 ‘동인도 회사’East India Company가 이 연구를 위한 후원자로 나섰다. 그 후 25년 동안 뮐러는 자신의 전 시간과 힘을 이 일을 위해 쏟아 부었다. 10권의 책과 총 1028의 찬양시들로 이루어진, 그리고 총 6권의 연속된 책을 채우고 있는 리그베다Rig-Veda의 본문을, 그리고 거기에 덧붙여 거의 같은 규모의 분량으로 이루어진 주석을 뮐러는 직접 손으로 필사하였다. 그 필사본들은 인도로부터 영국으로, 프랑스로 그리고 독일로 퍼져나갔다. 그는 학문적인 명예를 위해 이와 같은 일을 하였다. 뮐러도 말했듯이 이 일은 식민지 사업에 투신한 젊은 관료가 20년 동안 공들여 할 만한 성질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종교학은? 우리는 종교학의 시작을 막스 뮐러가 가지고 있는 인생의 한 기억으로부터 경험하게 된다. “맨 처음 나를 인도로 이끌었던 것은 태고시대의 음유 시인들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소리를 추적하는 일을 결코 후회하지 않았다. 그만큼 그때까지 내 인생에서 그 일 외에 다른 소명을 생각해본 적은 없다. 그것들은 어떠한 흔적이라도 찾아볼 수 없었던 내 모든 정신세계를 밝혀주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나로 하여금 종교, 철학 그리고 신화의 역사에서 어두운 시대를 밝힐 수 있는 최초의 희미한 불빛이나마 얻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와 동시대를 살았던 다른 사람들과도 같이 뮐러 역시 언어, 종교, 천문학, 문법, 철학, 사회학의 역사적 형성 같은 기원들을 밝히는 일에 매진하였다. 언어와 관련된 일을 하는 이들은 이들은 기원을 찾기 위해 애를 썼다. 언제나 그리스, 로마 그리고 독일 문헌에서 무언가를 찾으려했던 유럽인들과는 달리 뮐러의 관심은 인도를 향해 집중되어 있었다. 그는 4개의 베다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리그베다 안에서 다른 그 어떤 곳에서보다 더 자세히 인도 종교의 기원을 알 수 있을 것이라 잘못 생각하였다.

베다적인 것은 종교적인 문헌이다. 여전히 인도에서는 브라만의 후예들이 베다의 본문을 한 줄 한 줄 음조에 따라 배우고 있다. 종교적인 전승은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왜냐하면 성스러운 문구들의 억양은 매우 중요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브라만 계급은 살아있는 교과서이다. 물론 그들 역시 필사본과 인쇄본을 가지고 있다. 뮐러가 자신들의 베다를 출판하였기 때문에 힌두인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뮐러에게 존경의 마음을 표했다. 그들은 뮐러에게 브라만의 성스러운 장식용 끈을 보냈다. 또한 그들은 뮐러에게 희생제의를 위해 필요한 16명의 제사장들 중 한명으로서 멀리에서나마 역할해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그들은 뮐러에게 사망한 그들의 선조들을 위해 베다의 기도를 암송해 줄 것을 요청하기도 하였다. 심지어 그들은 뮐러를 하나의 브라만으로 인정하는 선물들을 보내기도 하였다. 왜냐하면 그들이 뮐러에게 편지로 말한 것과도 같이 뮐러는 그들 중 몇몇 제사장들 보다 베다에 대하여 더 잘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 종교적인 본문들은 종교학적인 연구 결과물들을 위한 원재료로서 인정되어 왔다. 성스러운 문서들과 종교사적인 자료들이 있다. 성스러운 (믿는 이들이 속한 전통 안에서의 ‘성스러운’) 문서들은 성스러운 문헌들이든지 혹은 구전으로 전해 내려오는 성스러운 전승들이다. 종교역사학적인 자료들은 개인적인 종교들도 포함한다.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도교와 다른 종교들에서 발견할 수 있는 ‘고백’들을 말한다. 계속 많은 종교역사적인 자료들은 종교사적인 발전들을 증명해주고, 그것의 원인 혹은 결과들을 인식토록 해준다. 종교역사가들은 이와 같은 4종류의 문서들을 가지고 연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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