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학이란 무엇인가
2006.08.17 18:20

3단계: 사료 모으기

조회 수 1982 추천 수 269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Extra Form
3단계: 사료 모으기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사료’이다. 영양이 잘 공급된 연구과제는 확실히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만큼 성장해 간다. 하지만 충분한 영양이 공급되지 않게 되면 그 연구과제는 수척해지고 약해진다. 또한 먹이가 과도히 많아지면 식도를 막아버리기도 한다. 종교학자들의 사료도 이와 같이 제대로 된 하나의 생명과도 같다. 신선한 음식도 있고, 이미 조리된 것 그리고 다양한 재료들이 첨가되어진 요리들도 있다. 종교학자들은 각 문제마다 적절한 사료들을 찾아내야만 하고, 또 그것을 정확히 계량해야만 하다. 사실 대부분의 사료들이 버려지겠지만, 우선 그것은 모든 것을 소화하고 나서이다.

그렇다면 그 사료는 어디에 있는가? 이 말은 어디에서부터 연구가 시작되는가를 의미하기도 한다. 바로 연구가 시작되는 곳에서 사료는 맨 앞에, 첫 번째에, 혹은 그 다음 자리로 정렬할 수 있을 것이다. 맨 앞에 있는 것은 주요한 부분이 될 것이다. 아마도 그것은 문헌, 예술품 혹은 신상(神像)일 것이다. 신상은 핵심부분으로, 그래서 종교학적으로 중요한 질문으로 선택되어졌다. 문제가 해결되면, 곧바로 문헌의 내용은 설명된다. 그리고 의례속의 대상이 가지는 기능은 명백해지며, 신앙체계 속에서 신상이 차지하는 위치가 제대로 인식된다.

부차적으로 사용되는 사료 역시 문제를 푸는데 도움이 된다. 부차적인 사료 역시 중요하며, 심지어 경우에 따라서는 필수불가결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핵심적인 것은 아니다.
사료는 어디에서 나오는가? 이것은 사료의 기원에 대한 말이기도 하다. 우리는 직접적인 길을 통해 혹은 매개자를 통해 그것의 기원에 대해서 알게 된다. 어디에서 우리는 우리의 원천이 되는 사료를 얻는가? 즉 우리는 어떤 원천에서, 즉 어떤 샘물에서 물을 뜨고 있는 가를 알아야만 한다. 그것은 분명한가? 그것은 충분히 길어 마실 수 있기 위하여 다양한 여과기를 통해 물방울을 떨어뜨린 바로 그 원천이라 말인가?

종교학적인 원천의 기원은 바로 사람들이다. 우리가 ‘종교’라고 부르는 것은 인간이 믿고 행하는 그 무엇이다. 여기서 우리의 질문은 인간화된다. 누구로부터 사료가 나오는가? 거기에는 적어도 세 개의 기원유형들이 있다. ‘행위 당사자’, ‘증인’ 그리고 ‘판단하는 이’가 바로 그것이다.

‘행위 당사자’는 신앙인들이다. 어느 정도 차이가 있긴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종교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열 살 먹은 아이보다는 서른 살의 성인이 더 많이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성직자들이 일반인보다 더 많이 알고 있고, 주교 급들은 그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종교’에 대한 그들의 관심은 대개 자신들의 종교로만 제한된다. 그들은 그들의 종교를 따르길 원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신앙에 대해서나 그것으로부터 생겨난 이론에 대해서 듣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들은 자기 자신 앞에서나 혹은 타인들 앞에서 스스로를 정당화시킬 필요가 없다. 낯선 종교들에게 대해서도 그들은 좀처럼 호기심을 가지지 않는다.         

그들에 의해서 자신들의 신앙이 도전받을 때만 그들은 타종교의 신앙을 판단한다. 선교지향적인 종교들은 자신들의 신앙을 소개하고, 홍보하고, 변호하는데 전혀 두려움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 이외의 종교들은 세상에 자신들이 가르치는 것이 무엇인지, 믿고 행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전하는 것에 대한 부담을 갖고 있지 않다. 심지어 많은 사람들은 종교적인 주제들은 종교적인 환경에서만 그리고 종교적인 자극 하에서만 주제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것을 위해 책들이나 강연들까지 언급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증인들’은 호기심이 많은 이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전하는데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그들은 자신들이 관찰하고 있는 신앙에 동참하지 않는다. 그들은 외부로부터 그 신앙을 관찰한다. 게다가 호기심 많은 이들 중 용의주도한 사람들은 신앙인 당사자들이 전혀 눈치 채지 못하는 많은 것들도 찾아낸다. 그들이 우리에게 알려준 특별한 것은 일반적인 것과 더불어 종종 증인을 더 맛깔스럽게 한다. 그 것들 중 아주 적은 수들은 독자들에게 그 종교의 외양과 이론을 전달해주지 않는다. 그것은 그들의 판단이다. 또한 그들이 직접적적으로 종교학자는 아니라 하더라도, 그들의 이론적인 해석들은 비중 없이 그리고 선입견으로서의 판단 없이 종종 종교학적인 것으로서 입증되어진다.

‘판단하는 이’는 그들이 공유하고 있지 않은 신앙에 대해서 판단한다. 또한 그들은 그 신앙에 대해서 호기심도 가지고 있지 않다. 왜냐하면 그들은 재빨리 판단을 내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편견 속에서 판단한다. 우리는 확고한 그들의 판단을 발견하거나 혹은 행간의 의미를 읽는다. 이를테면, ‘불신앙인’, ‘가벼운 신앙인’, ‘이교도’, ‘미혹하는 이’, ‘유혹자’ 등등이 그것들이다. 중요한 사실들을 알려주거나 마지막 장 혹은 맨 첫 장에 재판관으로서 등장하는 증인들이 있다. 그들은 혹은 그들의 출판인들은 어떠한 낯선 종교에 대한 책이 쉽게 사람들에게 이해될 것을 기대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첫째 면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평가한다. 그것들이 ‘증거들’에 딱 들어맞는 한, 그들은 단지 사실들만을 중시한다.

‘사료’는 다양한 전공분야에서 다양한 가치를 가진다. 몇몇의 경우 ‘사료’란 아주 최소한의 관심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들에게는 그렇게 보일 것이다. 예를 들어 그들이 자신들의 ‘사료’를 가지고 무엇을 꾀하려 한다면, 문예학자나 혹은 의학자들은 우선 연구를 시작한다. 다른 분야의 학자들은 그들이 무엇 때문에 연구할 수 있는가를 우선 스스로 찾아내야만 한다. 종교사가들을 포함한 모든 역사가들이 그렇다. 가끔씩 우리는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역사적 자료들의 발견에 대한 공표를 듣곤 한다. 그러한 발견은 마치 새로운 임파액을 발견한 것과도 유사한 화젯거리로 평가받는다. 새로운 사실들은 지금까지 유효한 역사서술을 뒤엎을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1. 등록된 글이 없습니다.
Board Pagination Prev 1 Next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