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학이란 무엇인가
2006.06.05 18:57

II. 어떻게 알게 되는가? 1단계: 문제 인식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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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어떻게 알게 되는가?

모든 분야의 학자들은 그들이 해결하려고 하는 문제들을 가지고 연구한다. 그들의 과제는 바로 그 목적에 다다를 수 있는 길 하나를 찾아내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 길을 한걸음 한걸음씩 또박또박 걸어간다. 그리고 그 걸음에서 두 번째 걸음은 가능한 한 첫 번째 단계를 앞설 수 없다. 종종 과제는 새로워진다. 그래서 학자들은 시간이 많이 지난 후에야 그 단계들의 정확한 순서를 발견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각각의 학문분야는 입증된 방법들을 가지고 있다. 만약 큰 난관을 통하여 특별히 다루기 힘든 문제와 마주치게 되면, 경우에 따라 입증된 방법들 역시 바뀔 수도 있다. 종교학자들 역시 종종 어떠한 목적을 이미 실현한 길들을 알고 있다. 이러한 길들 중 하나는 일곱 개의 단계를 가진다.


1단계: 문제 인식하기

문제들은 해결되며, 질문들은 답해지고 과제들은 성취된다. 무엇이 해결되고, 답해지고, 성취되기 전에, 우선은 그러한 것이 거기에 있어야만 한다. 새롭거나 혹은 흥미를 유발하는 모든 것이 언제나 학문적으로 문제화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제대로 된 문제가 될 수 있는지 없는지는 따져 봐야만 한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점검이 필요하다. 즉 그것은 하나의 문제인가? 그리고 그 문제는 종교학적으로 중요한가? 또한 그것은 종교학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인가?
그것은 하나의 문제인가? 많은 경우 전혀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예를 들어 X라고 하는 신의 존재를 예로 들어보자. X라고 하는 신의 존재는 학문적으로, 즉 누군가에 의해 검증 가능한 방법으로 증명될 수 없다. 만약 누군가가 그러한 증명을 실제로 감행하려 한다면, 그런 방식의 증명은 단지 우리의 문제, 즉 우리 유럽 학자들만의 문제일 것이다. X라고 하는 신을 믿고 있는 모두에게 그의 존재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여기에서 종교학자는 그가 무엇을 자신의 과제라 생각하는지를 결정해야만 한다. 믿는 자의 신앙을 사실로서 그리고 문제에 대한 그 신앙의 내용으로서 받아들일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물리학이나 화학에서 사용하는 것과도 같은 ‘객관적인’ 척도를 X라고 하는 신이 ‘객관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그 신앙에 들이댈 것인가?
그 질문이 종교학적으로 중요한 것인가? 다른 분야에서는 중요한 것으로서 인정되는 것이 언제나 종교학에서도 중요한 것이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여기서 문학을 비유로서 들 수 있다. 비유럽권 작품들처럼 유럽인들에 의한 많은 작품들 속에도 종교적인 소재들이 포함되어 있다. 가끔씩 우리가 다른 곳에서는 쉽게 발견하지 못하거나 아니면 많은 노력을 통해서만 얻게 되는 저자의 관점들이 구체적인 종교 속에서 드러난다. 많은 비유럽권의 문학가들은 우선 자국민들을 위해 글을 쓴다. 그들은 그들의 삶에 대하여 무언가를 쓴다. 그리고 그 안에 언제나 종교적인 것도 포함된다. 또 다른 이들은 역시 우리 백인을 위해 무언가를 쓴다. 그들은 우리에게 그들의 신앙과 관련이 있는 그들 국민의 특징을 소개하고 싶어 한다. 유럽의 문학가들 역시 종교에 대해서, 바로 우리들의 종교, 사상에 대해서 그렇게 해왔다.         
문학작품에 대한 질문들은, 만약 그것들이 종교학적으로 중요한 것이라면, 구체적인 종교, 종교적 행위들, 사상들, 감정들을 지향하고 있고 따라서 시(詩)는 어느 정도 진리에 상응한다고 볼 수 있다. 반면 문학의 입장에서 포기할 수 없는 다른 문제들은 종교학적으로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남게 된다. 한 작가가 종교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게끔 자극을 받았던 것과도 같이, 그가 쓴 작품들 속에서 자신의 종교적 사상들, 문체의 양식 그리고 그 밖의 것들의 발전이 증명된다.
어떤 방향이 종교학적으로 의미심장한 것인지를 발견토록 해주는 표지판이 나타난다. 그 표지판을 따라가는 사람은 잘못된 길로 들어서지 않을 것이다.

- 무조건적으로 구체적인 종교는 중요하다. 그에 대한 모든 것들, 신앙인들의 마음과 머릿속에서, 그리고 우리의 머리가 발견하는 것과도 같이 그들 외부에서 발견되는 그 모든 것들이 중요하다.  
- 구체적인 종교를 대상으로 하는 종교학은 제한적으로 중요하다. 종교학자가 그들의 머릿속에 있는 구체적인 종교에 대해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하나의 책으로 펴내게 되었던 그 모든 것들이 중요하다. 그들 머릿속에는 떠올랐으나 구체적인 종교와의 만남은 이루어지지 않은 채 발표되어진 것은 덜 중요한 것으로 남아있게 된다.
- 그 외 종교학적으로 큰 의미가 없는 것들은 중요하지 않다.

그 질문은 종교학적으로 답해질 수 있는가? 많은 질문들이 그렇지 못하다. 그것도 셀 수없이 많은 질문들이 그렇다. 그 중에는 심리학자나 건축가 또는 언어학자들과 같은 다른 전공분야에 속한 학자들의 전문적인 답변을 기대해야만 하는 것들도 있다. 또 그 어떠한 학문에 의해서도 답해질 수 없는 성격의 질문들도 있다. 이를테면, 전혀 도달할 수 있는 길이 없거나 그 방법을 찾을 수 없는 ‘종교의 기원’에 대한 질문 같은 것이 그것이다. 종교의 기원이 어땠는가는 어느 누구도 알 수가 없다. 그것이 과연 언젠가 존재라고 했었단 말인가? 그리고 만약 그랬었다면, 그것은 하나였을까 아님 두 개 혹은 열두 개, 아니면 그 이상이었을까? 여하튼 그렇게 알 수없는 것이라 해도 생각할 수는 있다. 그러한 환상에는 방법이란 없다. 한 걸음 한 걸음씩 나아갈 필요도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환상은 날개를 가졌기 때문이다. 환상이 우리를 꿈꾸게 하는 것은 종종 흥미진진하게 읽혀진다. 하지만 학문에서는 그렇지가 못하다.
바로 이 점에서 종교학은 다른 학문들과 구분된다. 사람들이 연구할 수 있는 다른 모든 것들과도 같이 구체적인 종교 역시 눈에 보이는 차원들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다른 학문분야들의 대상들과는 달리 종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차원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은 그것을 ‘피안의 것’, ‘정신적인 것’, ‘신적인 것’ 등으로 이름 붙인다. 다른 분과학문의 학자들은 자신들의 성과를 변조하지 않고도 이러한 눈에 보이지 않는 차원을 무시한다. 만약 종교학자들이 피안의 것을 부정한다면, 그들은 신앙인들을 진정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이며 아는 체하며 그것을 멸시하는 것이 된다.
또 다음과 같은 점에서 종교학은 신학과도 구별된다. 대부분 종교들의 신앙인들은 자신들의 신앙이 그들에게는 진리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들의 이웃은 다른 것을 믿는다. 하지만 그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신앙 역시 그들의 진리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를 위한 진리’와 ‘타인을 위한 진리’의 차이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만약 X라고 하는 종교에 대해서 배운다면, 그것만이 참된 신앙을 가지고 있다고 여긴다. 그래서 그 이외의 다른 종교들의 신앙인들은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낙인찍게 된다. 어떠한 종교가 진리를 가르치는지 아니면 거짓을 가르치는지에 대한 것은 오직 신앙인만이 대답할 수 있는 신앙의 문제이다. 종교학자들은 다양한 종교의 신앙이 제대로 혹은 잘못 이해되고 있는지를 전문적인 식견으로 인지할 뿐이다. 그 신앙이 참된지 혹은 거짓인지는 그들이 인정해야할 영역의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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