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학의 세계
2007.04.28 22:03

근본주의와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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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주의와 종교

0. 여는 글

오늘 제가 맡은 강연은 위에 적힌 그대로 ‘근본주의와 종교’입니다. 이미 제목에서 풍기는 바와 같이 이 주제는 상당히 넓고 또한 방대한 것이기도 합니다. 이 난감한 주제를 접하고 어떻게 실타래를 풀어야 할지 이유 넘치는 고민이 지속적으로 저를 찾아왔습니다. 물론 쉽게 갈 수 있는 길도 있습니다. 백과사전식으로 각 종교전통에서 등장하는 여러 근본주의의 모습들을 나열하는 방법이 그것입니다. 하지만 좋은 개론서 하나 성의 있게 들추기만 해도 해결될 수 있는 것을 강연이란 이름 아래 반복하는 것이 영 개운치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찾아낸 해결책이 근본주의라는 종교성향을 언어와의 상관성 속에서 고찰해보면 어떨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관심의 한 가운데에는 특별히 한국이라는 시․공적 상황에서 좀 더 심각하고 빈번하게 제기되는 근본주의 혹은 보수주의적 행동이 자아내는 폐해에 대한 이유를 밝혀보고자 하는 학문적 유혹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도 역시 쉬운 문제는 아닙니다. 우선 이 논의를 깊게 끌고 갈 수 있는 학문작업의 선례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 첫 번째 절망감이요, 두 번째 낙담의 원인은 설상 어느 정도 논의를 전개할 여력을 얻어다 손치더라도 이 담론의 중앙에 서있어야 할 제 자신이 언어 쪽에 대해서는 거의 이방인이라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주저앉아 있을 수만도 없는 법. 어떻게 해서든지 이러한 절망이라는 숲 속에서 작은 오솔길이라도 찾아내어 새로운 길이나마 터보려는 심정만큼은 기특한 것이라 어떻게든 분위기를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대충 시론적 성격을 지닌 글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으로 학문적 면피를 하고, 일단 하고자 하는 이야기라도 꺼내는 것이 예의를 지키는 일이라 생각하고 맡겨진 이야기보따리를 일단 펼치고자 합니다.

논의는 다음과 같은 순서로 흘러갈 것입니다. 우선 우리가 가진 제목의 뜻풀이와 그것에 대한 논자의 가설적 정의부여를 언급해야겠습니다. 즉 종교가 무엇인지, 그리고 근본주의는 어찌 읽고 봐야 하는지 가 이 논의의 고갱이가 될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논의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한국 상황에서 이 두 개의 가치, 즉 근본주의와 종교는 어떤 매개를 통하여 어떻게 작동되고 있는지를 거칠게나마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종교를 어찌 볼 것인가? ‘세계설명체계’, 그리고 ‘삶의 문제 극복체계’로서의 종교

우선 종교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를 나눠봅시다. 이 문제는 참으로 지겨운 문제입니다. 이미 종교학이라는 근대 학문이 등장했을 때부터 여러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던 문제이기도 합니다. 예서 그 모든 지지부진한 논의의 고리를 반복할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따라서 저는 제가 가진 종교에 대한 생각을 단선적으로 밝힘으로 이 부분에 대한 논의를 단번에 건너뛰고자 합니다.

우선 저는 종교를 ‘세계설명체계’Welterklärungssystem 그리고 ‘삶의 문제 극복체계’Lebensbewältigungssystem라는 두 개의 축으로 이해하고자 합니다. 즉 사람들은 종교를 통하여 자신의 외부를 구성하고 있는 환경으로서의 세계를 이해하고 그것을 자신의 인식 속에 받아들이게 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형성된 세계관은 실존적 삶의 정황 속에 만나게 되는 다양한 인생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열쇠로도 사용되기도 합니다. 바로 이와 같은 맥락에서 저는 종교를 ‘세계관’의 하나로 읽고자 합니다. 이와 같은 종교보기는 종교라고 하는 문화현상의 영역을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넓고 깊게 해줍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전통적 종교들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 삶의 의미를 전해주는 특정한 ‘가치체계’도 역시 종교라는 울타리 안에 들어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와 같은 종교에 대한 이해는 지극히 ‘딜타이Wilhelm Dilthey(1833-1911) 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철학의 영역에 해석학이라는 분야를 의미 있게 도입하면서, 인식과정에 ‘역사’와 ‘경험’의 역할을 진지하게 지적한 딜타이의 의견이 바로 위와 같은 견해를 통해 십분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딜타이 스스로도 ‘세계관’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딜타이는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에 맞서는 <역사이성비판>을 쓰고자 했습니다. 그는 인간의 인식과정을 순수 이성의 작동기재로만 파악한 칸트의 의견에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인간은 ‘세계 내 존재’로서 역사와 경험이라는 함수 속에서 인식과정을 진행하는 존재입니다. 따라서 그렇게 형성된 세계이해는 세계관을 구성하게 됩니다. 종교 역시 이와 같은 세계관으로 기능한다고 볼 수 있으며, 따라서 종교를 이해한다는 것은 결국 그 종교를 가진 이의 세계관을 이해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딜타이의 시각은 니니안 스마트에게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스마트는 ‘종교학이라는 학문의 목적은 타인의 세계관을 분석’하는 데 있다는 발언을 하기에 이릅니다. 저 역시 그러한 입장에 서있기에 종교를 ‘세계설명체계’와 ‘인생문제 극복체계’로 바라 봅니다.


2. 근본주의: 주변화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저항!

이제 두 번째 여행이 시작됩니다. 바로 ‘근본주의’입니다. 우선 근본주의라는 사조를 접할 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근본주의는 ‘근대의 부산물’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근본주의적 속성이나 행동양식은 근대 보다 더 오래된 시대에서도 찾아보거나 혹은 찾아낼 수 있겠지만,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근본주의Fundamentalism라는 용어의 출발은 최근의 것이며 바로 지난 세기의 문제의식 속에 불거져 나온 개념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따라서 이 용어 속에는 근대 사회의 속성과 환경이 배태한 문제의식이 상당부분 녹아있습니다.

종교의 시각에서 바라본다면 근대사회의 특징은 바로 ‘세속화’에 있을 것입니다. 종교들의 핵심이랄 수 있는 성스러움, 혹은 그에 대한 체험이 세속화 사회에서는 종교적이지 않은 요소로 치환되어 설명되어버리며, 아울러 그런 과학적 상식, 혹은 탈성화脫聖化된 세계관은 기존의 신앙을 유지하고자 하는 이들로서는 극복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장애로 인식될 것입니다. 종교가 사회의 중심에서 점차 주변부로 밀려가며, 인간사人間事의 많은 부분에서 예전만큼의 영향력을 잃어버리고 있을 때, 이러한 위기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대응으로 생겨난 것이 바로 근본주의라는 운동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근대화가 부른 세속화, 이로 인해 파생된 ‘종교의 주변화’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되어 그들의 절대적 신심을 흔들고 있을 때 이에 대한 자기 방어시스템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근본주의인 것입니다. 따라서 근본주의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투철하고 명백한 자기 정체성 확립과 유지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구별을 시작합니다. 그 결과 근본주의자들은 부패하고 낙후되었다고 여기는 전통주의자들로부터 자신들을 구별해 냅니다. 아울러 근본주의자들은 자신들은 세속화되어 종교의 본질을 상실한 근대주의자들과도 확연히 다른 위치에 서 있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고하게 됩니다. 이렇게 근본주의자들은 전통주의와 근대주의 사이에서 부패하거나 낙후되지 않았고, 또한 본질을 잃어버리지도 않은 참 진짜 정통주의로서 자신들을 규정하기에 이르게 됩니다. 이들은 또한 구체적인 이상향도 갖게 됩니다. 정통주의자들과 세속주의자들에 의해 훼손되고 망가져버린 그들의 이상향을 복원하고자 이들은 매우 전투적인 자세를 취하기도 하고, 때로 그것은 자세에만 멈추지 않고 구체적인 정치 행위로도 발전하게 됩니다.

이러한 성격의 근본주의는 애초에는 미국 개신교단을 중심으로 세상에 고개를 내밀게 됩니다. 세속화의 한 가운데에서 자신들의 정통신앙을 혁신적으로 지키고자 하는 일단의 무리들을 사람들은 근본주의자들이라 부르기 시작했으며, 그 별칭에는 ‘세상의 흐름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자들’이라는 부정적 의미까지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한때 근본주의라 하면 특정 종교전통의 일부분이 보여주는 극단적이고도 폐쇄적인 종교자세라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그러한 경향은 특정 종교에만 국한되지 않는 세계적 규모로 팽창해 버렸습니다. 특히 서구에 대항하는 이슬람 국가들이 근본주의적 태도를 취하며 강한 정치적 응집력과 영향력을 보여주자, 이들을 근본주의라는 안경을 통해 해독하려는 다양한 시도들이 계속 확대되고 있는 중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지금의 근본주의는 이전과는 달리 많은 종교전통들을 아우르는 포괄적 개념이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확대된 세계적 근본주의의 윤곽은 다음의 도표와도 같이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스도교 계열: 미국 개신교/과테말라 오순절/가톨릭/이탈리아 해방코뮌/남인도/
유대교 계열: Haredi/Habad/Gush Emunim/Kach
이슬람 계열: 이집트 jama at/알제리 FIS/하마스/이란 시아파/이라크 시아파/레바논 헤즈불라/파키스탄 Jamaat-i-Islami/인도 Tablighi Jamaat
힌두교 계열: 힌두 RSS
불교계열: 실론 불교
시크교: 급진 시크교


3. 그렇다면 한국에서의 종교적 근본주의는?

앞서도 말했듯이 근본주의 운동의 발발의 주요한 원인은 종교의 ‘탈성화’와 ‘주변화’에 있습니다. 즉 근대화하고 세속화되는 사회 속에서 전통 종교가 기존의 중심부에서 밀려나는 것에 대한 자의식적이고 조직적인 저항운동이 종교들이 근본주의적 속성을 갖게 했을 것이라 추정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근본주의는 분명하고도 의미 있는 시대적 환경에서 태동한 특정하고도 제한적인 종교운동의 하나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상황은 조금 다른 측면이 있습니다. 한국 종교계의 근본주의적 성향은 자발적으로 태동했다 라기 보다는, 즉 스스로의 목적과 환경에 대한 저항 속에서 태동된 자의식적이고 능동적인 것이라기보다는 근본주의적 이념 자체가 그대로 온전한 모습으로 외부로부터 전해진 모습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즉 이미 이념적으로 자리를 잡은 서구식 근본주의, 보다 좁게 보자면 미국식 근본주의 운동이 개신교에 국한되어 한국 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개신교가 어떤 통로를 통해 한국 사회에 들어오게 되었는가를 살펴볼 필요도 있을 것입니다. 동북아시아 선교 역사에 있어서 중국과 일본과는 달리 열성적인 복음주의자들, 혹은 보수적 전통이 강했던 선교사들에 의해 개신교를 소개받은 한국의 경우는 자발적 근본주의 노선을 따랐다 라기 보다는, 오히려 근본주의를 정통으로 수용하고 있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이 점에서 전통주의마저 자신들의 적으로 생각했던 미국식 근본주의와는 달리, 한국 내 개신교의 근본주의적 성향은 그것이 정통주의화 되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 근본주의 성향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분명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근본주의적 성향을 유지하고 있다 라기 보다는 오히려 근본주의적 이념, 혹은 교리를 정통성 있는 전통으로 인정하고 수호하려한다는 점에서, 근본주의라기보다는 근본주의적 보수주의, 혹은 정통주의로 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4. 닫는 글: 그렇다면 혹시 언어생활에서 오는 집단주의가 한 원인?

저는 앞서 미력하긴 하지만 한국 내 종교, 특히 개신교단에서 보이고 있는 근본주의적 성향과 행동은 근본주의라기보다는 오히려 정통주의에 대한 집착을 보이는 보수운동에 가깝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행동을 지속하는 한 요인은 한국 사회에서 통용되는 언어의 ‘집단주의적 속성’에 있지 않나 추론해 봅니다. 즉 한국어의 집단주의적 속성이 구성원들 사이의 원활한 소통을 저해하게 되고 그로 인해 익숙한 집단의 고립화가 근본주의적 행동으로 이어진 것은 아닌가 하나의 물음표를 달고 싶어집니다.

이미 적잖은 이들이 지적하고 있듯이 언어생활은 그 사회의 사유와 문화체계를 규정, 혹은 지배하기도 합니다. 언어는 그 속성상 중단 없는 반복을 하게 되고 한 사회, 혹은 공동체에 줄곧 쓰이는 언어는 그 속에 속해있는 이들의 사유체계를 특정한 방향으로 몰 고 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국어의 특징은 무엇일까? 여기서 적지 않은 사례와 특징들을 열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많은 외국인들이 손사래를 치는 한국어의 매우 세밀하고 까다로운 높임말 문제와 또한 한국어 습득의 어려움을 배가시키는 존칭어 등을 지적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제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한국어가 가지는, 아니 한국어를 사용하는 이들이 유지하는 언어의 집단주의적 사용에 있습니다. 이를 위해 구체적인 사례 제시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는 호칭사용에 있어서 매우 분명하게 드러나는데, 한국 사회의 언어습관에서 보통 대화의 상대자들을 자신들의 집단 내로 끌어들이는 대화법이 많이 사용됩니다. 예를 들어 친구의 어머니나 아버지를 대할 때도 한국인들은 어김없이 ‘어머니’ ‘아버지’라는 호칭을 사용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호칭은 그 친근함의 정도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나긴 하지만, 보통 친근하면 할수록 당연히 친구 부모의 호칭은 자신의 부모의 그것과 일치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분명 나이든 성인 남녀를 위한 호칭들이 있는데도 구태여 가족들 사이에 통용되는 용어를 고집하는 데에는 한국인이 가지는 대화의 습관, 혹은 의지에 한 원인이 있지 않나 생각하게 해줍니다. 이러한 경우는 부모 외에도 많이 있습니다. 혈연관계가 아닌데도 혈연관계에서나 사용할 수 있는 형, 아우, 이모, 고모 등의 호칭을 무차별로 사용하는 현장은 이 사회가 보여주는 폐쇄적 집단성이 얼마나 철저한 것인가를 단번에 일깨워 주는 사례가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은 언어사용은 결국 자집단自集團 중심주의에 빠져버리게 되어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대화와 소통의 가능성을 더 축소시키게 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만큼 단절되고 제한되는 소통의 기회들이 특정 집단의 고립화를 가속화시키고, 결국 이런 언어 사용이 하나의 원인이 되어 한국사회 종교들의 정통주의화, 혹은 보수주의화에 일조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따라서 공개적이고 합리적 소통 가능한 언어사용의 물꼬를 트지 않는 한, 한국 사회 내 종교들이 보여주는 근본주의적 성향의 정통주의는 쉽게 해결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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