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학의 세계
2006.06.07 18:27

한국 최대 종교는?

조회 수 2449 추천 수 29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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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통계총에서 인구 센서스 조사 결과 발표가 있은 직후.. 각 종단에서는 다양한 표정이 왔다갔다 한다. 그 중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곳은 개신교.. 지금까지 1300여만명 운운하며 한국내 가장 활발하고 역동적인 종교세를 과시하다가 이번 조사 결과 정작 교인수 860만에 불과(?)하다는 것이 탄로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정도로 가슴 아플 정도는 아닐 것이다. 교세 1300만이라는 것은 언제나 개신교 자체내의 조사 결과였을 뿐.. 정부쪽 조사에서는 줄곧 800여만에서 왔다갔다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공신력 상 전체 인구를 대상으로 하는 정부쪽 조사가 더 무게가 실리는 법. 이번 기회에 허수로 포장된 교세를 가지고 1300만 운운하는 모험은 이제 좀 사그라졌으면 좋겠다.

하지만 개신교의 위기의식은 단지 숫자의 하락에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그 숫자야 개신교내에서도 알만한 사람은 이미 이전부터 지적하고 있었던 바이기 때문이다. 대부분 각 교회의 신자수 집계에는 상당한 정도의 거품이 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비밀이기도 하다. 여하튼 개신교입장에서 그 보다 더 뼈저린 것은 가톨릭의 발전 추세이다. 250여만 정도의 교세인줄로만 알았던 가톨릭이 이번 조사결과 510여만에 이르는 성장을 했다는데 있다. 얼마나 배가 아팠던지.. 각종 개신교 계열 언론과 사이트마다 이 문제가 큰 잇슈가 되고 있다. 그러면서 이런 저런 대안책, 혹은 대응책들을 제시하는데.. 다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고작 나오는 대응책들 중의 하나가 이미지 개선, 그럼에도 노인층 공략을 통해 새로운 타개책을 발굴해야 한다는 등.. 혹은 죽어도 말씀, 기도 외에 없다느니 등등이다. 하지만 종교학자로서 내 눈에는 지금 한국 개신교의 한계가 너무 뚜렷이 보인다. 물론 개신교 스스로는 인정하려고 하지는 않겠지만, 한국 개신교는 너무도 세속화되어 있다. 평소 말하는 바와는 달리, 그들이 저주해마지 않는 세상과 전혀 다를바없는 세계관으로 꽁꽁 무장한 세속화 그 자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세속세계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바로 그런 점에서 한국 개신교의 현 가장 큰 문제는 그 안에 '종교다운 요소'의 상실에서 찾아야 한다. 종교학적으로는 '거룩한 요소' 혹은 '성스러움'이 언제부터인가 모르게 한국 개신교회에서 묽어지기 시작했고, 대신 천박한 자본화된 세속논리가 교회 안에 가득한 맘몬이 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약삭빠른 세상의 자녀들은 교회에서 건질 것이 거의 없음을 금시 눈치채게 된다. 그 결과는? 당연 교세의 약화로 이어질 뿐이다.

거룩한, 성스러운 체험이 빠져있는 교회에서 과연 사람들은 무엇을 기대할까? 성스러움이 빠져나간 교회는 인간관계와 연줄, 교인수 등을 이용해 장사할려는 사람, 정치할려는 사람, 사업할려는 사람들만이 난무하게 되고, 결국 이는 더욱더 빨리 교회의 세속화를 조장하고, 마침내 그것은 개신교회의 고사로 결론이 날 가능성이 크다. 거기에 덧붙여 영성이 빠진 교회는 배타만이 남아 이미 다원화된 한국 사회에 그 강력한 독선으로 무장하다보니 대 사회적 이미지 역시 끝없는 미끄럼을 탈 뿐이다. 한마디로 작금 한국 개신교는 총체적 난국이다. 어찌 단발성 치료로는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도 않는다.

반면 가톨릭의 경우는 60년대 제 2 차 바티칸 공의회 때부터 서서히 새로운 세기의 선교방법을 선택하게 된다. 그들은 나름대로 전례를 통한 신비성, 혹은 성스러움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 기왕의 장점에 대사회적으로 포용성과 개방성을 모토로한 선교 정책을 유지하게 된다. 그래서 그리스도교의 독특성과 배타성은 유지하면서도 타문화와 종교에 대한 여유를 정서적으로, 논리적으로, 학문적으로 쌓아가기 시작했다. 아주 간단한 것이긴 하지만 부처님 오신 날에 가톨릭에서 보내는 화한이 지니는 사회적, 문화적 의미를 결코 가볍게 폄하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이웃 문화와 종교에 대한 가톨릭의 이해는 구호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도 발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가톨릭 계통 학교에 종교학과를 설치하고, 또 많은 해당 종단의 성직자들을 이웃 종교의 전문가로 양성해왔다. 이미 우리는 신문지상을 통해 한국의 대표적인 불교대학인 동국대에서 가톨릭 사제가 학위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전해듣고 있다. 그 외에도 다양한 문화전문가들과 전통 해석가들을 양성하여 사회적 인식에 더 한층 눈높이로 다가서는 작업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바로 그러한 작업의 결과는 종교를 갖길 원하는 이들로 하여금 가톨릭에 대한 호감도를 높이고, 결국 이는 실제적인 교세 성장으로 드러나고 있다.

따라서 작금 개신교가 이 위기(?) 상황을 타파하길 원한다면 괜한 외부적 사업과 이벤트, 혹은 프로그램에만 안주할 것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 서서히 잠식당한 '성스러움'부터 회복하는 운동을 해야 할 것이다.

여하튼 이쯤에서 그 이 얘기는 정리를 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작금 한국에서 가장 큰 종교는 불교도, 그리스도교도, 유교도 아닌 것 같다. 내가 보기에 한국 최대 종교는 정서적 컴플렉스에 볼모가 된 왜곡된 민족주의인 것 같다. 최근 몇년 새에 한국에서 드러난 적잖은 사건들은 이런 한국인의 병적인 민족주의의 한 단면을 보게 만든다. 이런 병적 민족주의를 촉발시킨 사건은 지난 2002년도 월드컵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금 세기 들어 처음으로 한국민들이 세계에 대하여 큰 자부심을 갖게 해준 이 문명사적 사건은 한국의 민족주의를 긍정적으로가 아니라 왜고된 형태로 결집시키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물론 2002년 월드컵 4강이라고 하는 것이 우리 사회에 끼친 긍정적인 요소도 적지않지만.. 적어도 한국민의 정서적 세계에 월드컵 4강이라고 하는 것은 소극적 민족주의가 적극적, 혹은 폭력적 민족주의로 전환되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운동경기로서 축구를 즐기는 의미로서 월드컵 4강이 해서되지만은 않는 것은 월드컵 이후 한국민이 보여준 자국 축구 리그에 대한 철저한 무관심으로도 드러난다.

그리고 지난 2년여 한국 사회를 벌겋게 들끓게 했던 황우석 파동 역시 한국의 왜곡된 민족주의가 만들어낸 대표적인 사회현상이라고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황우석 사태에는 사실 적잖은 지식인들도 이 민족주의교의 광신도로서 아직까지 열렬한 줄기교 신도로 활동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 사회의 균형의식을 유지해야 할 지식인들 조차 쉽게 줄기교의 신자가 된 것은 황우석씨가 자신의 사기행각을 포장하기 위해 사용한 화려한 민족주의적 수사 앞에 전혀 힘을 쓰지 못하고 말았다. "과학에는 국경이 없지만, 과학자에게는 조국이 있다"느니. "반만년만에 찾아온 국운상승의 기회"라느니, "미국의 심장부에 태극기를 꼿고 왔다"느니.. 전혀 과학적이지 않은 황씨의 언어들은 오히려 한국 민족주의에 더 큰 자극으로 작용하여 그 이후 대통령이하 대부분의 국민들이 이 말도 안돼는 사기 행각의 직간접적인 피해자, 혹은 가해자가 되어야 했다.

그리고 또 월드컵.. 우리는 또 스포츠를 스포츠로 즐기는 것이 아니라, 이번 기회에 소국 컴플렉스를 또다시 극복하고자 하는 시퍼렇게 날 선 민족주의를 또 발동시키고 있다. 그리고 이런 묻지마 식 민족주의가 돈이 된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기업들은 정신없이 한국민들을 종교적 광분상태로 빠져들게 만들고 있다. 언론도 미디어도 모두 정신없이 월드컵 특수 누리기에 바쁘다. 뉴스고 정보고 모두 필요없다. 그저 한가지 교리만 있으면 충분하다. "꿈은 다시 이루어지고, 한국은 다시 세계 4강이다!~!" 이 끝없는 종교놀음 속에 과연 한국이 정상적으로 가야할 길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 난 몹씨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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