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학의 세계
2006.03.25 17:15

제자리 걸음하는 한국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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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그리스도교가 들어온지 신교는 120년 구교는 250년이 넘어갑니다. 그런데 사실 지금까지 여타에 알릴만한 신학자가 신학이 이땅에서 형성되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물론 그나마 서남동, 안병무 박사 등의 민중신학이 한국적 신학의 한 모습으로 서구에 많이 소개는 되어있습니다. 하지만 서늘한 서구신학자들의 평가는 민중신학 역시 남미에서 발발한 행동적 해방신학의 한 지류 정도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민중신학자들의 글과 언어 속에 그들로서는 잘 이해가 가지 않는 (한국적) 비약적 논리를 찾아내고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드는 이들도 있습니다. 뭐 서구인들이야 그런 인식이성의 만능주의 속에 살고있기에 지들 논리 구조 속에 이해되지 않는 것에 대한 그 정도의 반응은 어쩔 수 없는 것이겠죠. 여하튼간에 그나마 민중신학 정도가 한국적 신학으로 알려져 있을 뿐 그 이외에는 거의 미미합니다.

한동안 감신계열의 신학자들이 토착화 문제를 들고나오긴 했지만, 결국에는 토착화하겠다는 대상에 대한 이해의 부족(이 부분 상당히 심각한 지경입니다. 윤성범 교수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좀더 동아시아 문명과 역사에 대한 공부가 필요합니다)으로 인해 하다 만, 혹은 계속 시론에만 멈춘 형국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이외는 별로 말할 것도 없고, 보수계열 쪽의 신학 역시 억지 주장식의 이야기는 있어도 사실 별로 들어줄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한국에 들어온 종교들 가운데 1백년이 넘어가면서도 굴직한 사상가, 혹은 학자를 만들지 못한 것은 그리스도교가 처음이라 할 것입니다.

불교는 신라땅에 들어온지 1백년 만에 원효라는 걸출한 인물을 배출합니다. 원효야 천년이 훨씬 넘어가는 지금까지도 사상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거인중의 거인입니다. 그리고 그 이전만 해도 삼론종의 승랑이나, 의상, 지눌 등등 학문과 실천에서 굴직한 족적을 남긴 많은 불교인들을 만나게 됩니다. 유교만 해도 초창기 설총을 위시해서, 김부식, 정도전, 이황, 이이, 김종직, 서화담, 최한기 등등 걸출한 유교 사상가들이 이 땅을 거쳐갑니다. 또한 19세기에는 최제우, 최시형, 강증산, 박중빈 등등 세계 종교사에 기록될 만한(실제로 기록되고 있는 중입니다. 동학의 경우는 세계 종교사전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종교이기도 하지요) 신종교의 창도자들도 등장합니다.

하지만 유독 그리스도교에서는 그만한 크기의 걸출한 사상가들이 여지껏 배출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나마 다석 유영모 선생이 그에 비견할 수 있겠으나, 솔직히 그분의 그리스도교에 대한 이해는 그리 정밀한 편이라고는 보기 힘듭니다. 다석 선생의 경우는 기존 그분이 소유한 신유학적 지식이 새로운 성서적 세계관과 교묘히 습합된 상태를 이루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여하튼 그나마 다석 선생 외에는 달리 내세울 사상가가 없을 정도로 한국 그리스도교는 사상적으로 학문적으로는 궁핍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그 점에서 다석 선생이 신학을 제대로 했음 어땠을까 라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하기사 역으로 그분이 정식 신학 교육을 받았다면 전혀 다석답지 않았을 수도 있었겠죠)

왜 그럴까요?

많은 진단이 가능하겠지만.. 우선적으로 지목할 수 있는 것이.. 한국의 신학교육 자체가 교단 중심으로 돌아간다는데서 하나의 원인을 찾아볼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사실 한국에서 신학을 리드할 만한 학교가 별로 없습니다. 대부분 목회자 양성소로 각 신학대학이 올인한지 오래입니다.(뭐 개주에는 신학대학들과 교단별로 도표까지 만들어 진보, 자유, 보수 등등 구분하기도 하지만, 다 거기서 거기입니다. 대충 그러한 구분은 이념적이거나 정치적인 영역으로 본다면 틀리지는 않지만, 신학적 포지션으로 보자면 거기서 거기입니다. 구호와 명찰만 가지고 신학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나마 학문으로서의 신학을 발전시켜야 할 위치와 그러한 책임을 가졌다고 여길만한 일반 종합대의 신학과들도 생존을 위해 교단도 없이 목사안수를 주는(이 경우 거의 목사 라이센스를 주는 모양새이죠) 처지입니다. 연대, 이대, 숭실대, 계명대, 호서대, 경성대 등등 대략 십여 개 정도의 종합대학 내 신학대학들이 컨소시움을 형성하듯 연합체를 꾸려 졸업생들에게 목사안수를 라이센스 마냥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단 신학대학들은 전도사들을 데랴와봤자 당장 쓸만한 재목들이 없다는 개 교회 담임목사들의 불평하에 서둘러 모든 커리를 실용적인 부분 위주로 채워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 진중한 신학적 사변이 필요한 공부에 경주해야 할 신학도들은 당장 교회에서 써먹을 만한 것들에만 혈안이 되어, 실천분야쪽의 과목에만 집중적으로 선택하게 됩니다. 한 학기 동안 '복음 송 인도법'이라는 수업을 듣는 작금의 신학대 커리에서 과연 무게감 넘치는 신학자를 기대할 수 있을는지요..

갈수록 조직신학이나 성서신학쪽을 선택하는 이들은 줄어들고, 그나마 신학적 사유의 모범을 보여줄 교수들 역시 대형 교회 담임 목사들의 눈치를 보느라 내야 할 소리를 스스로 필터링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대형교회 담임들에게 밉보여 찬물을 마신 경우는 부지기수입니다. 대표적인 예로 토착화신학을 이끌던 감신의 변선환, 홍정수 교수의 출교사건이 있습니다. 그리고 근래에도 이런 권력구조적 억압속에 신학적 사유영역으로 강제 퇴출당한 사례는 적지 않습니다. 김승철교수나 강남대의 이찬수 교수의 경우도 학문적 역량보다는 사실 그런 권력적 역학관계의 피해자들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런 형국에 제대로 된 신학자를 기대한다는 것이 어불성설일 수 있겠죠.

솔직히 진보연 하는 진영들도 보면 지네들끼리 패거리주의에 빠져있어 솔직히 내공을 성실히 쌓기 보다는 도덕적 우월주의에 매몰되어 갈수록 퇴화의 길에 빠져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자유연하거나 혹은 오지랖 넓은 티를 내는 구석도 알고보면 알맹이없이 허울좋은 단어들만 나열하는 모습임을 금시 알 수 있게 됩니다. 보수연 하는 쪽은 별로 할말도 없습니다. 신학과 신앙, 그리고 신념 조차 별반 구별해내지 못하는 모습들이 태반이니까요.

참으로 힘든 형국입니다. 그렇다고 기독교가 국교도 아닌 한국에서 일반 종합대학에 너도나도 신학과를 설치하라고 강요할 수도 없는 일이고, 그나마 얼마 남지않는 종합대 신학과들도 존폐의 위기에 처해있는 상황인데.. 아무리 꾀어도 지원하지 않는 학생들을 무어라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구요.

언제쯤 한국의 신학자가 쓴 책을 전 세계의 신학도가 교과서처럼 읽을 수 있는 날이 올런지.. 언제쯤 신학자의 발언을 한국 사회 전체가 귀 기울여 경청할 때가 올런지..

지금처럼 사회 이곳 저곳에서 들려오는 그리스도교에 대한 비아냥 거림이 익숙해져 버리면 정말 그대로 비아냥의 엑기스로 굳어버리지나 않을까 걱정입니다.

이런 점에서 한때 연세대에 설치된 연합신학대학원이 그 역할을 했던 것처럼.. 한국의 교단들이 연합으로 양질의 신학자들을 양성할 수 있는 연합대학원 하나 기획하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뭐 그것도 집요한 권력에의 의지로 인하여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요..

천 4백여년전 원효가 쓴 [대승기신론소]는 그때나 지금이나 전 세계 불교인들이 즐겨있는 명저가 되었는데.. 과연 한국 그리스도교의 원효는 언제쯤에나 가능할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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