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학의 세계
2005.11.06 18:06

한유(韓愈, 768~824)가 신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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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학회에서 한 기독교 신학자를 만났다. 그는 한 논문 발표장에서 질문을 던지면서 한유가 신유학자라는 발언을 해 버렸다. 당시 마태오리치의 천주실의를 이야기하면서, 리치가 한유의 불교비판을 수용해서 그 책을 쓰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교수의 이야기를 따르자면, 마태오리치의 천주실의에서 사용된 불교비판은 신유학자인 한유의 배불론을 그대로 수용한 셈이 된다.

그리고 그 교수는 그러한 요지의 발언을 2회나 함으로써 자신의 견해의 분명함을 온 천하에 드러내었다.

발표가 끝난후 난 그 교수에 다가가 이렇게 말을 건넸다.

"다른 건 몰라도. 한유를 신유학자로 본 것은 좀 무리가 있는 거 같습니다."

그러자 건너오는 반응은 중국학자들이 그렇게 보고 있는데 뭐가 문제냐는 식이다. 난 계속해서 한유가 송학의 선구자로서 평가할 수는 있겠지만, 신유학이라 함은 송대의 주렴계(태극도설의 저자)로부터 잡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라고 그의 견해를 교정해 주었지만, 요지부동.. 그는 변함없이 자신의 견해를 견지해갔다.

자~ 여기서 그분이 이야기한 중국학자란? 다름 아닌 풍우란일 것이다. 풍우란은 한유와 이고의 배불사상을 높이치고, 특히 한유의 경우는 후에 주자학의 성전이 되어버린 중용과 대학 등을 사상계의 전면에 끌어들인 사람으로서 다른 이들 보다 꽤 높게 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풍우란 역시 그들을 본격적인 신유학자라 보기 보다는 신유학의 붕아로서 평가하고 있다. 그리고 풍우란 역시 본격적인 신유학의 시작은 주렴계로부터 잡는다. 즉 수당시대를 거치면서 불교, 도교의 영향하에 번지기 시작한 형이상학적 담론을 유학이 수용함으로써 새로운 형식의 유학이 생기게 되고, 그것을 우리는 신유학(주로 서구쪽에서 부르는 이름)이라 지칭한다.

물론 발표회 장에서의 그 교수가 한유는 신유학의 모태가 되는 사상가라 칭하였다면 별 문제없겠지만.. 두번씩이나 한유는 신유학자라는 발언을 포기하지 않았기에.. 문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뭐 별반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도 있겠지만..)

그리고 그의 말에 따르자면 리치의 천주실의는 한유의 배불론을 잇고 있기에 신유학적이라고 하는데.. 이도 역시 좀 억지에 가까운 말이기도 하다. 사실 리치는 불교 비판에 있어서는 한유와 이고의 방식을 따르고 있지만, 상제에 대한 증명에 있어서는 의도적으로 신유학적 논의를 회피하고 있다. 왜냐? 그야 당근 신유학은 이미 이기이원론에 의해 세계를 설명할 수 있는 완벽한 사유체계였기 때문이다. 그도 창조주인 인격신이 전혀  끼어들 여지가없는 유물론적 세계관을 근간으로 하는 사상이니.. 제 아무리 리치고, 그 리치가 써먹고 있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우주론적 신 증명이라 할지라도.. 유물론자들에게는 씨알도 안먹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리치는 천주실의라는 서물에서 지속적으로 공맹에 의존한다. 그리고 시, 서경에 의존한다. 옛부터 중국인들이 알고있는 (신유학적으로 재 정립된 의미의 천리로서의 상제가 아니라, 다분히 인격적인 요소가 강한 고대 중국 문헌에 등장하는) 상제란 신은 그리스도교의 천주(Deus)와 동일한 신이라는 이야기를 수도 없이 반복한다. 물론 애매하고 문제가 지극히 될만한 사안인 "예수는 구세주"라는 도식은 철저히 외면한다. 아주 극히 적은 분량 외에 리치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고대 문헌의 상제와 그리스도교의 천주의 동일성에 대한 것이다.

그렇다면 리치가 한유의 신유학적 사유방식을 천주실의에 사용했다는 테제는?

당근 좀 무리가 있는 연결이다.

짧은 대화였기에 긴 설명이 오가지는 않았지만.. 나로서는 말할 수 없는 답답함을 느낀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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