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학의 세계
2002.07.06 02:08

知訥의 眞心直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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知訥의 眞心直說


1. 이끄는 글
지눌은 고려시대 사람으로 자호는 목우자(牧牛子)이며 황해도 서흥(瑞興)줄신이다. 지눌이 활동하던 당시 고려는 안팎으로 큰 시련기에 처해있었다. 몽고의 강력한 무력적인 위협은 고려를 완전한 자립국으로 존립하는 데 큰 어려움이 되고 있었다. 그리고 내부적으로는 안으로는 최씨 일가의 정권탈취로 인하여 무신정치가 기세를 올리던 때가 바로 지눌의 활동시대였다.
이런 시대적인 상황 아래 태조 왕건이래 전성기를 구가하던 불교는 원래의 신심이 많이 퇴락해 부패와 타락의 길에 빠져들었다. 이때 등장한 사람이 바로 지눌이었다. 그는 쇠퇴기에 있었던 고려의 불교를 새로운 종교 각성운동을 통하여 禪敎一元的인 曹溪宗을 설립하였다. 따라서 그의 조계종 설립은 불교개혁운동이었다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의 불교개혁 운동의 목적은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타락, 부패된 교계의 혁신과 새로운 지도이념의 재정립에 있었다. 이렇듯 지눌의 활동은 신라시대 원효나 의상에게도 뒤지지 않는 창의성과 우수성을 가지고 있다. 특히 종교개혁운동의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는 그의 불교개혁 운동, 즉 선교일원화의 노력은 시대적인 요청이며 필연적인 귀결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에 개략적이나마 그 시대적 배경과 지눌의 사상적인 특색을 개괄해 보고자 한다.



2. 시대적 배경

삼국시대의 불교수용에는 그 나름대로의 정치적인 의미가 숨어있었다. 삼국시대가 각기 왕국으로 형성하는 데에는 기존 지배계층의 왕권화가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지방 호족들의 중앙집권화로 표현할 수 있다. 즉 당시의 샤만적인 역할까지 수행하던 제정일치 사회에서의 지배계층에 대해 지방 호족의 득세가 왕국으로 치닫게 되는 요인이 된 것이다. 이에 초기 왕국의 주권을 잡은 신진 세력들은 자신들의 위치를 대변하며, 합리화 시켜 줄 어떠한 통치이념을 찾고 있었을 것이다. 이에 불교는 그들에게는 적절한 대안이 될 수 있었다. 불교 자체가 인도의 카스트 제도에 대한 완전부정을 한 종교였기에 기존 세력에 대한 부정과 신진세력의 인정을 원하는 당시 지배계급의 정치적 욕구에 불교는 그야말로 적절한 것이었다. 이러한 정치적인 배경 하에 한민족에게 전래된 불교는 급속도로 대중의 신앙심을 유발시켜 장족의 발전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승랑, 원측, 원효 등 당대의 독특한 대 사상가들을 배출시키기도 하였다. 이렇게 삼국의 사상계를 주름잡다시피한 불교는 통일 신라기에 이르러 극치의 꽃을 피운다. 이제 승려는 사회의 높은 지위도 보장받게 된다. 그래서 왕족의 신분으로서 출가하는 이들도 부지기수를 헤아리게 된다. 이때까지의 한반도의 불교는 ‘교종’ 중심의 전 파였었다. 승랑의 三論宗, 원측의 唯識論, 원효의 大乘起信論 등은 모두 부처의 가르침(言)에 의거한 학문적인 색채가 강한 것들이었다. 그러나 서기 8세기 후반에 이르러 신라는 통치계급의 내적 갈등으로 인해 정치적인 혼란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런 정치적 영향으로 막강했던 불교도 초창기에 지니고 있었던 역동성과 창의성이 많이 감소되었다. 이러한 시기에 중국의 당으로부터 선교가 들어와 九山이라는 이름으로 지방 호족들을 중심으로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였다. 인도의 선을 중국의 달마대사가 하나의 종으로 형성해 생겨난 선종이 바야흐로 한반도에 전래된 것이다. 그리고 이 지방 호족을 중심으로 번져가기 시작한 선종은 기존의 교종과 서서히 긴장관계를 일으키게 된다. 이즈음 신라의 지배층은 귀족들의 득세로 왕권이 점점 약화되기 시작하고 급기야 극심한 정치적 공백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때 지방에서 힘을 키워가던 호족들이 드디어 신라 정권에 반기를 들게 되어 후삼국시대의 막이 올려진다. 이런 상황 아래 이 난국을 정리할 유력한 호족이 등장하였다. 그가 바로 고려의 태조가 된 왕건이었다. 그는 후삼국을 통일시키고 신라의 뒤를 이은 새로운 왕조을 세우게 된다. 그것이 고려이다.

왕조가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불교는 여전히 한민족의 중요한 정신적 지주로서 살아남게 된다. 여전히 불교는 왕권의 비호 아래 번창할 수 있었다. 불교는 고려시대에 더욱 번창하게 된다. 특히 현대의 국가고시제도 같은 과거 제도 하에 ‘승과’란 시험이 있어 그 시험을 통과한 승려는 여러 혜택을 받게 되는 등... 고려 시대에 이르러 불교는 갖가지 특혜를 누리게 된다. 그러나 고려시대의 불교도 장미 빛 탄탄대로만은 아니었다. 통일신라 말기부터 전래되기 시작한 선종과 기존 불교인 교종과의 갈등이 점점 심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대각국사 의천같은 이는 균여계의 華嚴學을 배척하고 송학의 영향 아래 天台宗을 세우게 된다. 그래서 어느 정도 교선의 화합을 이루고자 하였다. 의천은 교의 입장에서 선을 받아들이는 ‘敎主禪從’의 입장을 취했다. 그러나 의천의 생은 이 노력의 결실을 보기에는 너무도 짧은 기간에 끝이나고 말았다. 그는 47세의 나이로 지상에서의 삶을 정리해야만 했다. 미처 자신이 고대하던 교선의 일치를 이루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래서 의천에 의해 제기된 천태종은 교선의 통합체적인 역할을 크게 이루지 못하고 또 다른 종파불교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렇게 고려불교는 계속 이어져 왔다.

12-13세기에 접어들면서 고려는 또 하나의 시련을 맞게 된다. 그것은 내외로의 정치적 위협이었다. 당시 주변세력은 요, 금에 이어 아주 막강한 세계제국으로 성장한 원으로 대표된다. 그래서 고려는 이 원의 속국 형식으로 끊임없는 시련과 고통을 받게 된다. 그리고 고려 자체 내에서도 이자겸, 묘청, 정중부 등의 난에 이어 드디어 최충헌에 의한 무신 통치시대를 맞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불교도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특히 안정된 정국 속에서 수많은 특혜를 누린 불교는 어느 정도 순수한 종교심이 추락한 상태에 있었다. 게다가 이런 국란을 맞아 한편으로 호국 불교적인 색채를 띄게 되었고, 한편은 타락과 부패의 끝없는 나락에 빠져들게 되었다. 이러한 혼란기에 이제 불교 자체 내에서도 자성의 소리가 울려 퍼지게 되었다. 그것은 참된 불교의 정신으로 돌아가자는 개혁운동이었다. 이때 나타난 이가 바로 지눌이다. 지눌은 승려는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야 한다는 일종의 종교개혁을 주창하게 된다. 그래서 의천이 시행하고자 했던 교종과 선종의 융합을 그는 선종의 입장에서 교종을 받아들여 실로 오랜만에 불교다운 불교의 모습을 만들어내게 되었다. 그래서 지눌은 원효에 버금가는 불교의 대상사가의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3. 지눌의 禪敎一元 思想

전 장에서도 밝혔듯이 지눌의 사상사적 업적은 퇴락한 당시의 불교를 새로이 순수한 종교운동으로 되돌린데 있고, 또한 의천때부터 추구되어 오던 교선의 조화를 성공적으로 이루었다는데 있다. 당시 고려불교는 화엄종이라는 막강한 교종이 있어 선종의 위치를 여간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이에 지눌은 부처의 말씀(言)이 敎이며 心이 禪인지라 양자간의 모순은 있을 수 없다며 선의 입장에서 교를 포용하고자 한다. 이러한 조화의 방법으로 지눌은 三門의 체계를 사용한다. 즉 惺寂等持門, 圓頓信解門, 經截門 이다. 이중 惺寂等持門에 頓悟漸修, 定慧双修의 법을 포용하고, 圓頓信解門은 화엄사상을 도입한 것이며, 전통적인 格外禪旨를 가져와 經截門을 세우고 있다. 이 중 지눌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頓悟漸修論과 定慧双修說 그리고 眞心直說에 대해 살펴본다.

1) 頓悟漸修論
선종과 교종을 조화시키려는 공통적인 수행법으로서 지눌은 돈오점수를 원칙으로 하였다. 이 돈오점수법은 圭峰 宗密의 사상을 받아들인 것이다. 돈오라 함은 일각의 깨우침이며, 점수라 함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수련에 의해 知를 획득하는 것이다. 여기서 지눌은 이 양자를 구분하지 않고 깨우침을 위해 서로가 필요한 ‘쌍수’의 개념으로서 이해한 것이다. 지눌에 의하면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그 사람이 현명하거나 어리석거나 간에 자성, 즉 자기 본질을 갖고 있다고 본다. 그런데 그 자성은 번뇌망상이 없고 空寂하여 부처와 같으므로 이 자성을 닦아 나아가고, 한편 먼저 깨닫고도 根機가 훌륭치 못한 사람도 隨相定慧를 겸수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렇듯 모든 이를 가릴 것 없이 인간은 불성을 소유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깨달음은 계속되는 수행에 의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홀연히 한꺼번에 이루어진다는 의미에서 돈오를 설명했고, 비록 일시적으로 깨우침이 있었다고는 하나 성불의 완성을 위해서는 오랜 실천과 수행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卽心卽佛임을 깨치는 돈오와 그 완성의 단계를 위한 방법으로서 지눌은 점수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점수의 강조는 지눌 자신이 실천주의자임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증거가 된다. 이렇듯 그에게 있어 돈오점수란 양자가 단독으로만 있어서는 안되고 서로가 成佛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兩輪과 같다고 본 것이다.

2) 定慧双修說
여기서 定이라 함은 禪의 수행법이요, 慧는 敎의 수행법이다. 모든 인간의 自性은 원래 眞如自性으로서 모든 번뇌망상이 없는 공적한 상태라고 지눌은 보고 있다. 그리고 이 사실을 깨닫는 방법론으로서 그는 돈오와 점수를 내세운다. 이러한 돈오점수에 의해 깨달음이 있다해도 계속해서 수행은 필요한 것이다. 그 깨달음 후의 수행에는 이 정과 혜 밖에 없다는 것이다. 만약 정과 혜가 없다면 그것은 광이요, 어리석음일 뿐이다. 그런데 이 정과 혜를 함께 지니는 데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自性門은 저절로 寂知하여 원래가 스스로 함이 없고, 하나도 대립을 지음이 없다. 한 생각도 情識에 따라 생김이 없기 때문에 망연의 힘을 빌 필요가 없다. 이것이 自性定慧이다.

그에 대하여 수상문 정혜라고 하는 것은 진리에 두루 통하여 산란함을 포섭하며, 공을 관조함으로써 혼침과 어지러움을 조화시켜 무위에 들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수행방법은 그 자신의 신념이었고, 후세에도 많은 구도자들의 귀감이 되었던 것이다.

3) 眞心直說
진심직설은 지눌의 대표적인 저술로써 그의 진심에 대한 명쾌한 이해가 담겨있는 책이다. 진심직설은 근본적인 어리석음인 無名實性이 곧 불성이며, 사대로 화합된 허무한 환화공신이 곧 부처의 진리의 몸인 法身임을 밝히는 것으로 서두를 시작한다. 일종의 대화체 형식을 빌려 진심에 이르는 법을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지눌은 이 진심직설에서 15개의 범주로 진심에 대한 체계적인 정리를 단행하고 있다. 여기서 그 약간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眞心正信 : 여기서 자기 본래가 곧 부처임을 믿어야 한다고 하였다.
② 眞心異名 : 般若經의 菩提, 華嚴經의 法界, 金剛經의 如來, 金光明經의 如如 등 진심을 가리키는 수많은 다른 이름들이 있으나 이는 인연에 따라 이름을 세웠을 뿐 모두다 진심을 가르키고 있는 것이다.
③ 眞心妙體 : 진심의 본체는 因果를 초월하고 古今을 관통하여 모든 상대성을 넘고 대허공을 두루하며, 묘체가 Ꞧ寂하고 湛然常主하여 일체 중생 본유의 불성으로서 일체 세계의 생명근원이라 하였다.
④ 眞心妙用 : 묘체가 드러났다면 묘용이란 무엇인가? 체가 서면 용 또한 따라 있는데, 지눌은 그것을 動用施爲라 한다. 체의 流行作用이다.
⑤ 眞心體用은 一이냐? 異이냐? : 진심의 체용은 서로 여이지 않으므로 이가 아니다. 마치 물과 물결과 같이 다 같이 물이니 일이요, 그 물은 고요하고 물결은 인연따라 일어나므로 이이다. 그러나 水卽波, 波卽水 이므로 非一非異이다.
⑥ 眞心在迷 : 진심은 범부, 성인 할 것 없이 모두 함께 갖추어 있다. 그러나 범부는 망심에 덮여 진심을 나타나지 못하여 마치 백옥이 진흙에 묻혀 있는 것과 같다. 그러나 그 본색은 변하지 않는 것과 같이 진심은 그대로 늘 있는 것이다.
⑦ 眞心息妄 : 망심이 없는 곳이 바로 보리이다. 심에서는 無事요, 사에 있어서는 無心이다. 그리하여 자연 허하면서 영하고, 寂하면서 妙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無心工夫에는 十種이 있다고 설명한다.
⑧ 眞心四儀 : 行往坐臥의 사의는 진심을 證하는 것이다. 행도 선, 왕, 좌, 와 모두가 선이다. 이러한 사의를 통하지 않고 진심을 증함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⑨ 眞心所在 : 진심은 없는 곳이 없다. 도처에 보리의 길이 있고, 일마다가 功德의 숲이라 大法眼의 스님이 말하였던 것이다.
⑩ 眞心出死 : 생사는 본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중생이 망심을 일으켜 생사를 본 것일 뿐이다.
⑪ 眞心正助 : 無心으로써 망심을 쉬게 하는 것이 정이요, 뭇 착함을 익혀서 助로 삼는다.
⑫ 眞心功德 : 무심으로 本具한 性功德을 드러내니 공덕이 아닌 것이 없다. 진심은 망심에 덮였다가 망심이 사라짐에 다시 공덕은 나타나는 것이다.
⑬ 眞心驗功 : 진심의 성숙함은 마치 소 먹이는 것과 같아서 쌓고 쌓아야 하는 것이다. 마음을 시험하여 싫어하거나 좋아하는 마음이 나지 아니해야 비로서 無礙함이 마치 놓아둔 白牛와 같이 남을 상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⑭ 眞心無知 : 진심은 憎愛, 取捨가 없는 無知의 지이며, 평등심이요, 평상심이다. 그러나 망심은 불평상심이다. 평상심은 보편심이요, 不平常心은 차별심이라 할 것이다.
⑮ 眞心所往 : 진심에 통달하면 顯生, 卵生, 胎生, 化生 등 四生과 六道가 단번에 녹아 떨어지고 山河大地가 모든 진심이 된다. 영명이 어둡지 않아 뚜렷이 사무쳐 늘 아는 자리로 온데도 없고 간데도 없는 것이며 空寂靈知가 이 마음의 體用이다.


4. 마무리

지눌에 의하면 선은 불심을 의미하고 교는 부처의 말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선이 법에 속하면 교는 의에 속하는 것이다. 따라서 선과 교는 서로 도와주어야 하겠음에도 불구하고 무정문의 일관도로서 분열과 대립을 해결하지 못함을 보조국사는 안타깝게 생각한 나머지 ‘원돈성불론’과 ‘간화결의문’을 지어 이 양자의 조화를 도모하였다. 그러나 단순히 지눌의 선교의 합일 사상을 이러한 교리적인 측면에서만 볼 수만은 없다. 당시의 시대적 상황이 불교 자체의 타락과 국내외적으로 혼란스러운 정세이었음에 순수한 종교운동의 움직임이 필요한 시기였고 지눌은 이때 정혜쌍수 및 돈오점수 등의 방법론으로 그 움직임에 부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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