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2521 추천 수 345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Extra Form


고대인의 눈으로 현대를 조망한 호모 렐리기오수스
멀치아 엘리아데 (Mircea Eliade, 1907-1986)


“인간이 거룩한 것을 깨닫는 것은 그것이 세속적인 것과는 전적으로 다른 그 무엇으로서 자신을 드러내고 보여주기 때문이다.”(멀치아 엘리아데)

The Bus that stops at Eleusis...

위에 적힌 영어문장은 어느 책의 한 항목을 아우르는 제목으로 사용된 것이다. “엘레우시스 앞에 멈춰선 버스” 그 제목만으로는 필력 넘치는 한 작가의 수필이나 소설에서 따옴직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저 제목이 붙어있는 서적은 아쉽게도 소설이 아니다. 물론 수필집도 시집도 아니다. 그렇다면 저 제목이 적혀있는 책은 누구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것인가? 그 책은 한 학파의 수장이기도 했고, 종교학이라는 분과학문을 대중화, 세계화하는데 지대한 공로를 세웠던 엘리아데라는 한 대학의 교수였던 이가 필생을 걸고 저술한 한 학술 연구서적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 책은 바로 『종교이념의 역사』(“A History of Religious Ideas”, Chicago, 1982)이다. 급작스러운 저자의 서거가 없었더라면 총 4권으로 출간되었을 이 책은 아쉽게도 3권으로 마무리되었고, 저 위에 인용된 멋들어진 작은 제목은 2권 맨 마지막 장의 끝 귀퉁이에 걸려있는 것이다. 고대 이교도의 몰락과 그리스도교의 승리를 언급하고 있는 2권의 30장 ‘신들의 여명’(The Twilight of the Gods)의 끄트머리에 엘리아데는 1940년에 있었던 아테네 신문에 나온 에피소드 하나를 제시하며 저 타이틀을 사용하고 있다. 엘리아데가 보기에 그것은 농업의 여신인 데메테르가 어떻게 그리스도교의 신화로 변해가는 가를 보여주는 상큼한 사례였던 것이다. 이런 식이다. 그는 이렇게 어렵고, 골치 아프고, 고민스러운 학문적 내용을 상쾌한 문학적 상상력에 담아 너무도 깔끔하게 표현하곤 했던 감수성 풍부한 ‘예술가적 학자’였다. 그래서였던가? 그는 열정적인 학자로서의 활동 중에도 소설 및 자서전 쓰기를 멈추지 않은 문필가이기도 했다.

난 독일 유학시절 박사반에 함께 있던 한 여학생으로부터 엘리아데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귀동냥 할 수 있었다. 그 학생의 이름은 한나였고, 그녀는 엘리아데를 가지고 학위 논문을 쓰고 있었다. 게다가 그녀는 엘리아데와 같은 고향 출신이었다. 유창한 독일어에 유난히도 말랐고, 또 유난히도 번득이는 눈빛을 지닌 한나는 루마니아에서의 엘리아데에 대한 평판에 대한 나의 질문에 이렇게 답변해 주었다. “루마니아에서의 엘리아데? 글쎄 그의 고향사람들은 그가 유명한 소설가인줄 알지.” 옅은 미소와 함께 한나는 고향에서의 엘리아데의 대한 평가를 그렇게 정리해주었다.

엘리아데는 1907년 3월 9일 부카레스트(Bucharest)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의 그는 곤충과 식물들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던 꿈 많은 소년이었다. 그러다 엘리아데는 그가 동경해마지 않던 독일의 대문호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가 그러했던 것처럼 자신의 관심의 폭을 점점 넓혀갔다. 세계 문학에 대한 그의 관심은 점차 문헌학과 철학을 넘어 종교학으로까지 이어졌다. 1925년부터 그는 자신의 고향인 부카레스트에서 철학으로 본격적인 대학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1928년 르네상스기의 철학자 피치노(Marsilio Ficino, 1433-1499)를 주제로 석사를 마친다. 그 후 엘리아데의 학문여정은 유럽을 떠나 인도로 이어진다. 석사를 마친 해부터 1931년까지 엘리아데는 인도에 머물며 그의 생애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학문적 기간을 보내게 된다. 우선 그는 캘커타에서 다스굽타(Surendranath Dasgupta, 1887-1952)라는 대가로부터 산스크리트어와 인도철학을 공부하게 된다. 다스굽타와의 인연은 엘리아데가 이탈리아를 방문했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탈리아 여행 중에 엘리아데는 우연히 다스굽타가 저술한 『인도철학사』(‘The History of Indian Philosophy’)라는 책을 접하게 되고 큰 감명을 받게 된다. 먼 타지에서 문자로 만난 스승의 글에 엘리아데는 주저 없이 인도로의 여행을 선택한다. 다스굽타의 가르침을 받은 후 그는 히말아야의 리시케쉬(Rishikesh)에 있는 작은 암자에 6개월가량 머물게 되는데, 바로 그곳에서 엘리아데는 쉬란다(Swami Shiranda)의 도움으로 요가수행에 전념한다. 그 당시 엘리아데가 손수 행한 요가수행은 학문적 작업으로 이어져 결국 부카레스트로 돌아온 엘리아데는 인도 요가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게 된다(1936).  

학위 후 엘리아데는 다양한 학문적 활동과 더불어 열정적인 사회활동을 시작한다. 뛰어난 문장력을 자랑하던 그는 당시 학자로서 뿐만 아니라, 문학가로서도 활동하였고, 또한 신문평론가로서도 이름을 높여가고 있었다. 그즈음 엘리아데는 루마니아의 한 우익단체에 열성적인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적어도 신문평론가로서 엘리아데는 그 우익단체에 대한 서포터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고, 서서히 공산화의 길을 걸어가던 루마니아의 정세 속에 엘리아데의 그러한 우익활동은 그의 정치적 입지를 상당히 축소시키는 일이 되기도 했다. 1938년 이 문제로 인하여 약간의 어려움을 당한 엘리아데는 1940년 런던에 있는 루마니아 연락사무소로 파견된다. 그리고 1941년부터 45년까지는 포르투갈의 리스본 주재 루마니아 대사관에서 근무한다. 당시 그는 루마니아 민요의 수집에 전념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고 ‘환상문학’에 속하는 몇 권의 소설들을 발표하면서 나름대로는 유의미한 시간을 그곳에서 보내게 된다.

1945년 엘리아데는 프랑스 파리에 정착하게 된다. 당시 그의 조국 루마니아는 공산국가가 되었고, 우익전력을 가지고 있던 엘리아데가 그러한 조국에서 활동하기에는 곤란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다행히 엘리아데는 파리 소르본느 대학의 방문교수라는 신분을 얻을 수 있었고, 바로 그곳에서 엘리아데는 유력한 종교학적 저술들을 내어놓는다.

1957년 급작스레 스위스에서 운명한 요아킴 바흐의 후임으로 엘리아데는 시카고대학의 종교학 전임교수로 초빙을 받는다. 그 후 그는 종교학의 대가로서 열정적인 학문 활동을 보내게 된다. 시카고 시절의 엘리아데는 커다란 세 가지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 첫 번째가 「종교학」(‘History of Religions’)이라는 연구 잡지의 창간이었고, 이는 1961년에 그 첫 번째 호가 간행됨으로 목표를 달성하였다. 다음은 그의 필생의 역작이라고 할 수 있는 『종교이념들의 역사』였는데, 아쉽게도 이 계획은 미완으로 남았다. 1976년 불어로 된 1권이 나온 이후 3권까지는 출판되었지만, 마지막 권이 될 4번째 책은 끝내 그의 죽음이라는 장벽 앞에 세상의 빛을 볼 수가 없었다. 그의 세 번째 계획은 『종교백과사전』(Encyclopedia of Religion)의 완간이었다. 하지만 이 시리즈의 책임 편집자이기도 했던 엘리아데는 사전의 완간까지는 지켜볼 수 없었다. 그 사전의 마지막 시리즈이기도 했던 16번째 책이 출간되기 1년 전인 1986년 4월 22일 엘리아데는 시카고에서 그의 고단한 육신의 여정에 종을 고했기 때문이다.

illud tempus: 고대인의 눈으로 세상보기

흡사 시간 여행자와도 같이 엘리아데는 현대에 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눈은 언제나 과거를 지향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지향하고 있었던 과거는 단순한 기억 속에 머물고 있는 그런 유의 과거는 아니었다. 그가 꿈꾸고 바라보고 있었던 과거는 멀고도 먼 참으로 먼 옛날이었다. 하늘이 열리고, 땅이 뒤틀리고, 바람이 물을 가르던 개벽의 시대를 엘리아데는 언제나 그의 가슴 속에 묻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처럼 그는 ‘그때’(illud tempus)를 지향하고 있었고, 또 언제나 그는 ‘그때’를 현대인에게 소개하거나, 혹은 망각 속에 파묻힌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려고 설명하고 또 설명하였다. 그리고 엘리아데에게 있어 ‘그때’를 설명하기 위한 도구는 반드시 학술적이거나 아카데믹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는 다양한 방법을 통하여 그가 지향하고 있는 세계를 현대인들에게 소개하길 원했고 때로 그것은 다양한 모습의 소설로도 우리 앞에 나타났다. 그렇다면 그는 왜 옛날을 그처럼 지독하게 골똘히 바라보고 있었던 것인가? 여기에서부터 바로 엘리아데가 생각하고 있었던 ‘종교의 본질’이 읽혀진다.

이미 밝혔듯이 엘리아데는 고대인들의 자기이해와 세계이해를 자신의 연구 테마로 삼았다. 그는 이를 ‘고대의 존재론’이라 부른다. 그렇다면 엘리아데가 바라보고 있었던 고대인의 특징은 무엇인가? 엘리아데는 시간이라는 잣대로 고대인과 현대인을 나눈다. 엘리아데는 고대인들에게 있어서 역사는 바로 공포의 대상이었음을 지적한다. 역사는 흘러가는 시간을 제어하거나 붙잡을 수 없는 인간에게는 공포 그 자체이다. 시간의 축적이란 곧 인간에게는 소멸과 직결되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식으로든 인간은 시간을 잊고자 한다. 그리고 시간을 거슬러 생명력이 넘쳐나는 최초의 시간으로 ‘복귀’하고자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인간들은 일상 속에서 지속적으로 그들을 괴롭히는 시간의 저주와 공포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하지만 현대인은 다르다. 세속화된 시공 속에서 현대인은 시간의 두려움을 잊고 산다. 아니 어떤 점에서 현대인은 시간의 주체적인 창조자로서 자각하기조차 한다. 엘리아데는 이러한 현대인의 역사친화적인 태도를 ‘유대-그리스도교적 역사이해의 부산물’이라 판단한다. 즉 신적 존재가 인간의 역사에 개입함으로써 인간은 바야흐로 역사의 의미와 가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역사는 인간을 소멸시키고 사장시키는 마력적인 괴물이 아니라, 신의 의지가 실현되는 긍정적인 마당이 되었고, 바로 그러한 현장에서 인간은 신의 섭리에 따라 역사의 창조적인 활동가로서 자리매김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제 인간은 역사를 두려워 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역사적 사건은 그것이 어떤 것이든,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간에 더 이상 인간을 공포의 구렁텅이로 몰아가는 그러한 것은 아니다. 이제 인간은 역사를 피해 멀리 도망할 필요가 없이 자신에 주어진, 혹은 사회적으로 맞닥뜨린 개별적 사건들이 지니는 신적 의지 혹은 섭리의 의미, 즉 역사적 의미를 해석해내면 될 뿐이다. 바야흐로 인간은 역사가 주는 무서움을 그렇게 잊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런 것일까? 과연 현대인은 고대인이 지녔던 역사에 대한 공포를 완전히 떨쳐낸 것인가? 이제 더 이상 현대인은 역사의 공포를 체험하지 않으며 매 순간 역사의 창조자로서 초역사적인 시공에 대한 존재론적 동경을 벌써 망각했으며 또 다시는 할 필요도 없는 존재가 된 것인가? 그렇다면 세속과 일상에서 경험되는 종교적 현상들은 또 무엇인가? 왜 무서움이 사라진 이 세속에서, 역사의 공포를 망각한 이 일상적 공간에서 사람들은 단절적인 시공의 드러남을 그리워하고 또 그것들에게 매혹 당하는가? 엘리아데의 질문은 끊임없이 터져 나온다. 제 아무리 현대인이라 하더라도 그들이 속한 세속적 공간에서 만나게 되는 종교적 시공의 의미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이러한 질문의 연속은 엘리아데로 하여금 현대에 살면서 고대인으로 남게 만드는 결정적인 동인이 되게 한다.

엘리아데의 진단은 인간은 여전히 고대인의 세계 이해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제 아무리 역사친화적인 존재로 인간이 변화하였다 하더라도 끊임없이 만나게 되는 일상 속의 초역사적인 체험들이 인간 안에 본질적 속성으로 자리 잡은 고대의 존재론을 알게 해 준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어느 누구도 ‘종교적 인간’(homo religiosus)이라는 인간의 본질적 속성으로부터 탈출한 이들은 없다. 잠잠히 생각해보라! 우리는 얼마나 많은 일상 속에서 전혀 ‘이질적인 시공’의 침범을 당하고 있는가! 무언가에 몰두하고 있는 이들의 모습을 살펴보라. 좋아하는 소설이나 영화에 빠져 시간의 흐름조차 망각한 이들의 즐겁고 유쾌한 경험을 생각해보라. 때론 음악에 몰두하여 시간의 축적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행복해하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보라. 그들의 일상적 시공에 그러한 낯설고 이질적인 시공의 접목이 가능한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가? 『해리 포터』을 읽고 있는 한 소년의 모습을 생각해보자. 그 이야기책이 주는 현란한 포장과 화장술에 빠져 얼마동안이라도 넋을 읽고 책속으로 빠져든 그 아이가 자신은 잠깐 ‘호그와트 마법학교’의 학생이 되어 해리 포터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노라고 이야기 한다할지라도 우리는 그것을 무척 낯선 풍경이라 억지 부리며 그 아이의 정신 상태를 의심하는 우는 범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상황 속의 아이들을 보고 우리는 시간 축적으로부터 해방되어 일상적 시공과는 전혀 다른 이질적인 존재체험을 하는 것이 현대인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것임을 알 수 있게 된다.

바로 그러한 일상적 공간에 전혀 낯선 세력이 등장하는 것! 그것이 바로 ‘성현’(hierophany)이다. 일상적 시공에 침투하는 존재의 모습. 이것이 성현이며 엘리아데는 이를 ‘존재의 드러남’(ontophany)이라고도 부른다. 존재하는 것이, 실재하는 것이 자신의 참 모습을 드러내는 것. 바로 그것이 성현인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성현의 드러남을 담고 있는 것이 종교적 현상들인 것이다.

자, 이제 문제는 정리되었다. 고대의 존재론은 고대인들의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인간 안에 선험적으로 주어진 세계 이해의 가장 본질적인 방식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고대인들의 존재론을 보다 인내심 있게 설명할 수 있는 자세를 지녀야 한다. 여기서 엘리아데의 ‘고대로의 여행’은 좀 더 탄력을 받게 된다. 그처럼 무서운 역사를 고대인들은 어떻게 이겨냈는가? 엘리아데는 이와 같은 질문을 가지고 세밀한 관찰자의 시선으로 고대의 문명, 문화, 종교적 흔적들에 집중한다. 그리곤 곧 하나의 중요한 단서를 찾아낸다. 고대인들의 문화 속에 빈번히 등장하는 ‘반복’의 표상들. 그것이 하나의 열쇠이다. 그들은 자꾸 무언가로 돌아가려고 하는 행위를 의례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지향하는 바의 꼭짓점에는 바로 ‘그때’, 즉 태초의 그때가 있었다. 무섭고 떨리는 역사의 공포로부터 탈출하기 위해서는 역시 그 역사의 시초로 돌아가는 것이 현명한 해결책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고대인들은 일상을 깨고 태초의 시간으로 돌아가고자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고대인들은 최초의 시간을 회복할 수 있었을까? 엘리아데의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때 엘리아데의 안테나에 잡힌 것은 바로 ‘그때’의 모습을 담고 있는 고대인들의 한 문화적 유산이었다.

신화! 바로 그것이다. 고대인들의 신화는 ‘그때’를 담고 있다. 그래서 하늘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산은, 계곡은, 바다는... 종국에는 인간을 비롯한 이 모든 만물이 어떤 경로를 통해 지금과 같은 모습을 지니게 되었는가를 신화는 설명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신화는 단지 꾸며낸 이야기도 아니고, 작위적인 거짓 이야기도 아니다. 고대인들은 신화라는 양식을 통해 그들이 이해하고 있었던 세계를, 존재를 담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그들이 관찰하고 수용하고 있는 세계를 신화라는 장르를 통해 보존 가능한 문화적 유산으로 만들고자 했다는 것이다. 이제 고대인은 신화를 들으며 ‘그때’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신화는 제의와 결합되며 더 큰 생명력을 얻게 된다. 매년 새해에 반복되는 신화적 제의는 고대인들에게 역사의 공포를 잊게 해주는 세계 이해를 위한 ‘시스템적 장치’로 기능하게 해 주었다. 그리고 신화라는 그릇에 담긴 고대인들의 세계이해는 곧 고대인들의 행위에도 모범적 역할을 하게 된다. 이제 고대인들은 신화가 제공해주는 ‘그때’의 세계이해에 기초하여 문명이라는 부산물을 만들어나가게 된다. 즉 사원이나 도시들, 그리고 인간이 거주하게 되는 집들은 하늘을 본받아 건축되며, 인공적으로 축조된 건축물들의 안정과 존속을 위해 치러지는 각종 다양한 제의들은 세계 창조의 구조를 모방하게 된다.

이처럼 엘리아데는 고대인의 눈으로 세계를 읽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점에서 그 또한 스스로 그렇게 불리기를 원했던 것처럼 ‘종교사학자’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의 역사는 일반적 의미의 역사와는 그 규모와 크기에서 너무도 달랐다. 왜냐하면 그가 말하고 있는 역사는 일반적 역사를 넘어서 저 태초의 때, 바로 그때를 지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종교학은 창조적인 해석학

혹자는 나무나 돌을 보고 절하며 그들을 대상으로 하여 기원하는 이들을 손가락질한다. 그러면서 냉철한 계몽주의적 시선을 가진 양 돌과 나무도 제대로 구분 못하는 그들의 지적 능력의 떨어짐을 흉보기도 한다. 도대체가 기원하는 바를 해결해줄 수도 없는 일개 무기물질이나 혹은 단순한 생명체에 불과한 돌이나 나무에게 왜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머리를 조아리고 있느냐는 일갈인 것이다. 하지만 여기 엘리아데의 시선이 중첩된다면 우리는 이들 계몽주의자들의 독선이 오류일 수도 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어떤 이라도 단순한 나무나 돌을 경배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그걸 모를 리가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무와 돌에 절하는 이들이 있다. 왜? 그들이 나무와 돌을 숭배하는 바로 그 시공에 ‘성현’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즉 사람들은 나무와 돌을 통해 드러나는 존재 그 자체와 또 그러한 성현으로 인하여 형성되는 ‘시간 없음’을 체험하고 그에 대한 반응으로 종교적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행간의 문화적 맥락과 존재론적 의미를 잡아내고 끌어내고, 또 설명해 내는 것이 바로 엘리아데가 생각하는 종교학이라는 분과학문이다.

따라서 엘리아데는 이와 같은 종교적 의미를 주도면밀하게 잡아내지 않게 되는 상황에 대하여 우려의 심정을 숨기지 않는다. 따라서 종교를 대하는 이들은 단순히 문헌학적, 역사적, 철학적 혹은 사회학적 시선에만 매몰된다면 종교의 참 모습을 제대로 잡아낼 수 없다고 본다. 종교현상의 의미는 분명 그런 세속적인 시선으로는 잡아낼 수 없다고 엘리아데는 단언한다. 예를 들어 환원주의적 종교연구는 각자의 처한 관점에 따라 종교현상들을 분석할 수는 있겠지만, 결국 그들은 종교의 본질적 요소(근원으로의 회귀)를 보지 못하기에 정확한 의미 축출에는 실패하고 말 것이라는 우려를 끊임없이 엘리아데는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주의적 토대 위에 건설된 현대의 사회과학적 종교연구는 따라서 종교의 본래적 의미를 훼손할 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종교를 대하는 이들은 우선 종교현상이 가지는 비일상적인 특성을 누구보다 더 잘 이해하고 있어야만 한다. 우선 종교연구가들은 무엇보다도 인간들이 ‘종교적 인간’임을 직시하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은, 앞서 언급했듯이, 종교적 행위를 통하여 ‘근본으로의 돌아감’을 기원하고 있는 존재들이고, 종교란 바로 그러한 과정의 현상이다. 따라서 종교학은 바로 그러한 종교적인 기준으로 인류가 보여주는 종교현상들을 기술하고 설명하는 해석학적 작업을 본류로 삼는 분과학문이다. 하지만 이때의 해석학은 창조적이어야만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의미들을 잡아내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엘리아데는 생리학, 심리학, 사회학, 경제학, 언어학 등과 같은 환원주의적 학문들을 가지고 종교 현상들을 해부하는 것에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낸다. 무엇보다도 종교학은 종교현상들이 가지는 본질적 특성과 또 초역사적인 의미를 잡아낼 수 있어야만 한다. 적어도 엘리아데가 생각하는 종교학은 그렇다. 그리고 그런 점에서 종교학은 환원주의적 학문들이 보지 못하는 종교현상의 본질적 의미를 축출해내는 ‘창조적 해석학’이 되어야만 한다.

엘리아데는 학문적 작업 못지않게 문학적 활동을 통하여 종교현상의 본질적 의미를 전달하고자 한다. 따라서 그의 문학 활동은 취미생활 그 이상의 것이다. 단순히 학술적 연구 중간에 무료함을 달래기 위한 보조적 장치로서의 글쓰기가 아니라, 현대인들에게 고대의 종교적 인간들이 가졌음직한 실존적 상황을 일깨워주는 효율적인 도구로서 엘리아데는 문학작품을 선택한 것이라 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넓게 보아 그의 문학 활동 역시 그가 학문적 영역에서 하고 있었던 창조적 해석학의 연장 속에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아니 어쩌면 엘리아데 자신은 학술적인 문장에서보다 더 많은 즐거움으로 자신의 고대 존재론에 대한 이야기를 소설들을 통해 우리에게 전하길 원했는지도 모른다. 따라서 보다 적극적으로 그의 학문 활동을 평가한다면, 그는 학문과 문학의 장벽을 허문 최초의 사람으로도 기록될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럴만한 자격과 결과물은 엘리아데는 충분히 가지고 있다.

비판과 칭송 사이에 서서

엘리아데에 평가는 극과 극이다. 한편에서는 여전히 그의 영향력은 대단하다. 하지만 곧바로 다른 쪽에 서있는 학자들은 그에게서 종교학자라는 지위를 거부할 정도로 매섭고 싸늘하다. 이 엇갈리는 평가들 사이에서 엘리아데는 여전히 살아있는 종교학자로서 우리에게 남겨져 있는 셈이다.

우선 엘리아데의 지지자들은 여전히 엘리아데가 제시한 창조적 해석학으로서의 종교학에 매료를 느끼고 있다. 그가 처음부터 제시한 종교적 인간이 종교적 현상을 체험하는 것을 제대로 잡아내는 기술적 학문으로서의 엘리아데식 종교학은 여전히 유의미하다는 것이다. 그러한 최소한의 규범적 장치 없이 어떻게 다양한 인간의 종교현상들을 유의미한 해석체계로 담아낼 수 있겠는가 란 물음이 여전히 힘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더들리(Guilford Dudley)라는 학자는 엘리아데가 역사가가 아니라는 비판에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엘리아데를 옹호하고 나선다. 더들리 자신도 엘리아데는 일반적인 의미의 역사가는 분명 아니라고 못을 박는다. 아니 그에 더 나아가 엘리아데는 ‘반역사가’로서 봐야만 하며, 오히려 그 점이 엘리아데의 더 큰 장점이 된다고 까지 주장한다. 꼭 검증적 실증적 역사주의의 요구대로 엘리아데를 구속할 것이 아니라, 그가 우리에게 보여주었던 창조적 해석학으로서의 새로운 종교연구 방법을 더 끌고나갈 필요가 있다고 까지 주장하는 것이다.

엘리아데에 대한 비판은 그의 종교학이 검증적인 성격과는 일정부분 거리가 있음을 지적한다. 즉 그는 너무도 규범적인 학문적 전제를 구축함으로 현장에서 만나게 되는 다양한 종교적 현상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길을 차단시켰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엘리아데의 연구는 종교신학이나 철학 쪽으로 경도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고 그들은 지적한다. 마르부르크 대학의 루돌프(Kurt Rudolph) 교수는 이런 입장의 대표적인 사람이기도 하다. 물론 루돌프 교수도 엘리아데가 가진 매혹적인 부분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엘리아데식의 종교이해는 억지로 현대의 종교인들을 고대 종교의 세계로 끌고 갈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그러한 엘리아데식의 종교연구는 종교학이 지니는 역사 비평적이고 문헌학적인 기초를 한 번에 허물어버릴 수도 있다고 본다. 루돌프 교수는 좀 더 목소리를 높이며 엘리아데의 규범적 종교연구방법을 비판한다. “역사와 시간을 지양하기 위해 우주적인 성스러움에 철저히 천착해 들어가는 그런 류의 호모 렐리기오수는 결코 존재하지도 않았고 그리고 결코 존재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루돌프 교수는 일갈하고 있다.  

엘리아데가 서있는 바로 그 지점을 놓고 이처럼 첨예하게 양 진영이 대립하고 있는 것은 종교연구가로서 엘리아데가 지닌 매력이 여전히 시들지 않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그가 제시한 종교연구를 위한 선험적인 조건들(성현, 근본으로의 회귀, 원형으로서의 신화, 고대의 존재론 등등)은 여전히 더 많은 탐구와 논의가 필요한 지금도 유효한 논쟁거리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앞서 언급했던 한나의 이야기를 재차 꺼내보고자 한다. 엘리아데의 조국인 루마니아에서 온 한나. 그녀는 아이러니하게도 엘리아데식 종교연구에 강력한 비판자로서 자임하고 있는 루돌프 교수 밑에서 바로 엘리아데를 가지고 학위 논문을 쓰고 있었다. 비판자의 밑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는 나라에서 온 학생이 비판의 대상을 가지고 논문을 쓰고 있는 이 아이러니! 난 세미나가 파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기에 한나와 마주치면 어김없이 그녀에게 다음과 같이 질문하곤 하였다.

“요즘 루돌프 교수와 잘 지내? 그리고 너와 루돌프 교수의 엘리아데는 아직 별 문제는 없니?”

장난기 섞인 내 질문에 한나 역시 잊지 않고 다음과 같은 답변에 웃음을 더하여 내 물음에 응해주었다.

“왜 그분이 엘리아데를 싫어하는지를 역으로 추적해가면 정말 엘리아데가 어떤 사람이었는가 보다 더 분명히 알 수 있더라~”




  1. No Image

    한국에서 종교학 하기

    한국에서 종교학 하기 종교학에 대한 몇 가지 여전한 오해들 한국에서 종교학을 한다는 것은 대략 두 가지 정도의 오해에 기초한 질문이나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들어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우선 개별종교에 속한 신앙인들은 종교학이 자신들의 신...
    Date2005.11.07 Category종교학 강의 Views2902
    Read More
  2. No Image

    고대인의 눈으로 현대를 조망한 homo religiosus: M. Eliade

    고대인의 눈으로 현대를 조망한 호모 렐리기오수스 멀치아 엘리아데 (Mircea Eliade, 1907-1986) “인간이 거룩한 것을 깨닫는 것은 그것이 세속적인 것과는 전적으로 다른 그 무엇으로서 자신을 드러내고 보여주기 때문이다.”(멀치아 엘리아데) The Bus that ...
    Date2005.10.08 Category종교학 강의 Views2521
    Read More
  3. No Image

    검증적 종교학의 개척자: 요아킴 바흐

    검증적 종교학의 개척자: 요아킴 바흐(Joachim Wach, 1898-1955) “종교학의 과제는 검증 가능한 종교들에 대한 연구와 기술(記述)에 있다. 따라서 종교학은 기술-이해적인 학문이지 규범적인 학문은 아니다. 구체적인 종교의 형성을 역사적이고 체계적인 방법...
    Date2005.09.05 Category종교학 강의 Views3215
    Read More
  4. No Image

    우리는 이미 종교적으로 태어났다: 루돌프 옷토

    우리는 이미 종교적으로 태어났다: 루돌프 옷토(Rudolf Otto, 1869-1937) - 성스러움의 의미를 찾아 나선 한 개방적 그리스도인 “결국 그는 왕과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겸허함을 갖춘 왕이었습니다. 다른 이의 말을 빌려본다면, 그는 하느님의 예...
    Date2005.08.08 Category종교학 강의 Views2723
    Read More
  5. No Image

    종교현상학의 개척자: 나탄 쇠더블롬

    종교현상학의 개척자: 나탄 쇠더블롬(Nathan Söderblom, 1866-1931) - 신학과 종교학의 경계에 서서 “나는 하느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난 그것을 종교학을 통해 증명할 수 있다.” 종교는 이념 혹은 고백? 근자에 은퇴한 한 원로 종...
    Date2005.07.06 Category종교학 강의 Views2633
    Read More
  6. No Image

    종교학의 아버지: 막스 뮐러

    종교학의 아버지: 막스 뮐러(Friedrich Max Müller, 1823-1900) - 비교언어학에서 비교종교학으로 “오래 된 동전과도 같이 고대 종교는 수백 년이 지난 후 그 위의 녹을 털어내면 그것이 지니고 있었던 모든 순수함과 이전의 광채를 드러낼 것이다. 그리...
    Date2005.06.09 Category종교학 강의 Views2946
    Read More
  7. No Image

    종교학의 목적과 한계- 종교역사학과 종교체계학

    종교학의 목적과 한계 - 종교역사학과 종교체계학 “경험세계에서 만나게 되는 다양한 종교들이 종교학의 대상을 이룬다. 종교학은 그러한 대상들을 연구하고, 이해하고 그리고 설명하는 것에 가치를 둔다. 그리고 이 작업은 두 가지 입장으로 이루어진다. 종...
    Date2005.05.05 Category종교학 강의 Views2311
    Read More
  8. No Image

    종교연구에 있어서 진리의 문제- 종교학과 종교철학

    종교연구에 있어서 진리의 문제 - 종교학과 종교철학 “종교학이라고 하는 분과학문은 두 개의 극 사이에서 흔들리는 운명에 처해있다. 그 두 개의 극은 신학적 혹은 철학적인 것이고, 다른 하나는 문헌학적이고 역사학적인 것이다.” (쿠어트 루돌프) 진리에 ...
    Date2005.04.06 Category종교학 강의 Views2298
    Read More
  9. No Image

    종교연구의 탈신화화

    종교연구의 탈신화화 - 종교현상학과 종교사회학 “심지어 사춘기의 감정, 소화불량이나 사교적 감정을 자각할 수 있으나 고유한 종교적 감정은 느낄 수 없다는 사람과 더불어 종교적 문제에 대해 논하기는 어렵다” (루돌프 오토) 종교사 수업이 있던 한 강의...
    Date2005.03.06 Category종교학 강의 Views2739
    Read More
  10. No Image

    종교를 이해하려는 여러 시도들

    종교를 이해하려는 여러 시도들 “종교학자들은 여러 종교들을 대할 때 자신의 개인적인 신앙체계를 연구를 위한 잣대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다른 이의 신앙을 편견 없이 연구하는데 있어서 자유롭다. 문제는 그들이 과연 얼마나 많은 자유를 감내할 ...
    Date2005.02.28 Category종교학 강의 Views2192
    Read More
  11. No Image

    도대체 우리는 종교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도대체 우리는 종교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 종교 정의에 대한 많은 논의들 "내가 추구해 가는 이상이란 나 자신의 신앙의 이상이 아니라 하느님 자신이요 나의 이웃 자신이다. 신앙은 영원의 일부가 아니라 영원에 대한 나의 현재의 의식이다." (W. C. ...
    Date2005.02.28 Category종교학 강의 Views2453
    Read More
  12. No Image

    종교학과 신학: 그 가까움과 멈

    종교학과 신학: 그 가까움과 멈 난 개신교 신자이다. 그리고 종교학을 전공했다. 이 두 개의 사실관계가 내게는 전혀 큰 갈등이나 충돌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내가 독일에서 학위를 취득한 후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처음 나의 전공에 대해 전해들은 개...
    Date2005.02.28 Category종교학 강의 Views2706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Next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