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학 강의
2005.09.05 18:29

검증적 종교학의 개척자: 요아킴 바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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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증적 종교학의 개척자: 요아킴 바흐(Joachim Wach, 1898-1955)

“종교학의 과제는 검증 가능한 종교들에 대한 연구와 기술(記述)에 있다. 따라서 종교학은 기술-이해적인 학문이지 규범적인 학문은 아니다. 구체적인 종교의 형성을 역사적이고 체계적인 방법으로 연구함으로써 종교학의 과제는 완성된다.”(요아킴 바흐)


근대 종교학의 전환기에 서있는 한 거인의 쓸쓸한 그림자

“혹시 한국에도 요아킴 바흐가 소개되어 있나요?”
바흐 세미나가 있던 어느 날 지도교수가 수업을 파한 후 내게 던진 질문이었다. 수업이 있던 카페에서 교수의 연구실이 있는 건물로 가는 길 위에서 나는 그 질문에 이렇게 답을 늘어놓았다.
“많이 소개되어 있는 편은 아닙니다. 하지만 종교경험을 강조한 대표적인 종교학자로 알고들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대표적인 저서인 『비교종교연구』라는 책도 번역되어 있고요.”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교수는 재빨리 자신의 의견을 내어 놓았다.
“『비교종교연구』는 바흐의 대표적인 저서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물론 그 책은 바흐가 생전에 해왔던 유력한 강의들을 묶은 것이고, 나름대로는 후기 바흐 사상을 잘 보여주고 있기는 하지만, 그의 검증적 종교학에 대한 세밀한 관심과 열정은 『비교종교학』보다는 오히려 그의 초창기 저서인 『종교학』에서 찾아야 할 겁니다. 그리고 종교학의 역사에서는 후기의 바흐보다는 초기 독일 시절의 바흐가 더 크고 비중 있게 다뤄져야 할 겁니다.”

항상은 아니지만, 지도교수는 바흐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면 불을 뿜는다. 그도 그럴 것이 그분 자신이 유력한 바흐 전문가이기도 하며, 그분의 학자로서의 목표 역시 바흐가 꿈꿔왔던 검증적 종교학의 종합 내지 완성에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 지도교수의 바흐에 대한 각별한 애정은 이해 못할 바가 아니다.

사실 바흐는 분과학문으로서 종교학의 역사에서는 전환기에 서있는 학자이다. 무엇보다도 그는 신학, 철학, 역사학 등 기존 종교연구에 있어서 우선권을 쥐고 있던 인근 학문들로부터 종교학이라는 새로운 근대 학문을 독립시키고자 최선을 다해 경주하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바흐의 이와 같은 학문적 노력은 나치가 독일의 권력을 독점하게 됨으로써 서서히 전망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독일태생이긴 하지만 바흐는 유대인의 혈통을 잇고 있었다. 따라서 유대인이라는 그의 신분은 인종주의적 정책을 고수하던 나치 치하에서는 너무도 분명한 제약과 한계를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바흐는 다양한 정치적 압박 속에서 자신의 학문적 무대를 미국으로 옮기게 되었고, 미국에서의 바흐는 저 유명한 시카고학파를 태동시키는 등 학문적으로나 인생의 커리어에 있어서 새로운 부흥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것은 검증적 종교학의 도래를 기다리던 이들의 입장에서는 동시에 매우 안타까운 장면이 되기도 했다. 왜냐하면 미국에서의 바흐는 이전과는 다른 학문적 태도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신학이나 철학 같이 종교를 규범적으로 연구하는 분과학문들로부터 해방된 검증적 종교학의 독립을 꿈꿔왔던 바흐의 학문적 구상은 미국생활 속에서 적잖은 변화를 노출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 역시 단수로서의 종교, 즉 종교의 본질적 요소에 대한 관심을 이전부터 보여주고 있었긴 했지만, 그것을 추적하는 과정은 역사적이고도 검증적이어야 할 것을 강조했었지만, 어느 순간 그는 ‘종교체험’을 강조하며 그것에 대한 ‘선험적 설명’에 몰두하는 또 하나의 ‘종교신학자’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미국이라는 새로운 환경이 생각의 변화를 강요한 것인가? 검증적 종교학의 탄탄한 등장을 기대하던 이들로서는 바흐의 변심(?)이 무척 아쉬운 대목이라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삶의 궤적을 끈질기게 추적하다보면, 그의 사상 전환의 이유가 그렇게 이해할 수 없는 성질의 것도 아닐 것이다. 여기서 잠시 인간 바흐의 일생을 스케치해보자.

바흐는 캠니츠(Chemnitz)를 고향으로 1898년 1월 25일 펠릭스(Dr. Felix Wach)와 카타리나의 아들로 세상과 만나게 된다. 그의 부모는 모두 멘델스존-바르톨디(Mendelssohn-Barthody)라는 유대 가문의 피를 이어 받았다. 바흐의 가문은 당시로서도 꽤 이름 있는 위인들의 집합소와도 같았다. 그의 할아버지는 아돌프 바흐(Adolf Wach)는 라이프치히의 유명한 법률가였고, 그의 아버지 역시 작센주의 추밀고문관으로 일하던 법학박사였다. 그의 할아버지가 릴리 멘델스존-바르톨디(Lilly Mendelssohn-Bartholdy)와 결혼함으로써 법률적이고 예술적인 집안의 분위기가 농익기 시작하였고, 이러한 흐름은 그의 부모 대에도 변함이 없었다. 이렇게 바흐는 어린 시절부터 치밀한 법학적 사고와 또한 그것의 건조함을 보완해 줄 수 있는 예술가적인 심미적 감수성을 그의 조부모와 부모로부터 물려받을 수 있었고, 이와 같은 성장기 경험은 그의 학문적 여정을 이끄는 훌륭한 자양분이 되었다.

아버지를 따라 켐니츠에서 드레스덴으로 옮긴 바흐는 1916년 그곳에서 김나지움을 졸업한다. 그 후 바흐는 2년 동안 장교로 전쟁에 참여하게 된다. 제대 후 1918년 바흐는 라이프치히에서 본격적인 대학생활을 시작한다. 그리고 그 다음해 뮌헨으로 학교를 옮긴 바흐는 한 학기 정도 그곳에 머문 후 다시 프라이부르크로 학교를 옮긴다. 그곳에서 바흐는 훗설(Edmund Husserl, 1859-1938)이라는 당대의 거장을 접하게 된다. 그 후 다시 바흐는 프라이부르크를 떠나 베를린으로 향한다. 베를린에서 바흐는 그의 학문생애에 있어서 적잖은 영향을 끼치게 되는 두 명의 거장을 만나게 된다. 하르낙(Adolf von Harnack, 1851-1930)과 트뢸치(Ernst Troeltsch, 1865-1923)가 바로 그들이다. 1920년 겨울 다시 바흐는 라이프치히로 돌아온다. 그곳에서 바흐는 종교학자 하스(Hans Haas, 1868-1934), 동양학 교수들인 침머른(Heinrich Zimmern, 1862-1931)과 피셔(Otto Fischer), 그리고 철학자 폴켈트(Johannes Volkelt, 1848–1930)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게 된다. 이들과 함께 한 신학과 철학, 그리고 동양학에 대한 연구는 1922년 “구원사상의 현상학적 기초들”(Grundzüge einer Phänomenologie des Erlösungsgedankens)이라는 학위 논문으로 결실을 본다.

박사가 된 후 바흐는 다시 하이델베르크로 자리를 옮겨 그곳에서 2년여 더 연구생활에 집중하게 된다. 하이델베르크 생활 역시 바흐의 학문적 여정에서는 대단히 중요한 시기이다. 그곳에서 바흐는 군돌프(Friedrich Gundolf, 1880-1931), 릭케르트(Heinrich Rickert, 1863-1936), 알프레드 베버(Afred Weber, 1868-1958) 등과 밀접한 학문적 교류를 이어가며 아울러 그의 일생의 역작인 『종교학』을 저술한다. 그는 이 논문을 1924년 6월 3일 라이프치히 대학의 종교학과 교수자격논문으로 제출하였고, 그 후 문화-보편사 연구원(Institut für Kultur- und Universalgeschichte)의 사강사로 임명되었다. 사실 바흐의 애초의 계획은 이 논문을 종교학뿐만 아니라, 철학전공 교수자격논문으로도 제출하고자 했지만 그것은 몇몇 철학과 교수들의 거센 반대로 무산되었다. 그리고 사실 그의 종교학 교수자격논문 심사 시에도 적잖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이 기념비적인 논문을 통하여 종교학이라고 하는 학문이 가져야 할 새로운 방향과 개념, 그리고 길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통적인 방법에 몰두하고 있었던 보수적인 학자들의 입장에서 바흐의 새로운 시도는 무척 낯설고 또 어색했던 것 또한 당연했을 것이다.

사강사 시절 바흐는 복잡한 해석학적 문제에 천착해 들어갔고, 이는 또 하나의 기념비적인 저작인 『이해: 19세기 해석학 이론사의 기초』로 열매를 맺게 된다. 1927년 6월 스승 하스의 노력으로 바흐는 라이프치히 대학 종교사회학과의 강사가 되었다. 당시 라이프치히 대학의 종교사회학과는 독일 최초의 것이기도 했다. 바로 그해 저명한 신학자인 틸리히(Paul Tillich, 1886-1965)가 라이프치히 대학 신학부에 부임하고, 이들의 조우는 이후 장소를 옮겨 미국 시카고 대학에서 또 한 차례 이루어진다. 그리고 1929년 바흐는 같은 대학의 종교학 전공 원외 교수로 청빙을 받는다. 이때까지만 해도 바흐의 학문여정은 순풍을 단 것 같았다. 그리고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듯이, 이 기간 동안 바흐는 매우 열정적인 학문활동을 보내게 된다. 1924년부터 1935년 사이 바흐는 앞서 언급한 그의 기념비적인 저술인 『종교학』과 더불어 3권으로 구성된 그의 해석학적 방법론의 핵심을 이루는 『이해』시리즈, 그리고 또 하나의 중요한 저작인 『종교사회학 입문』(“Einführung in die Religionssoziologie”, 1931) 등이 이 시기에 저술되었다. 이와 같은 전문적인 저술활동 외에도 바흐는 학교를 대표하는 종교학자로서 다양한 국제회의에 참석하였으며, ‘선교-종교학 학술지’(“Zeitschrift für Missionskunde und Religionswissenschaft”)의 공동 편집자(1934-1938)로 활동했으며 아울러 ‘현대 종교학 사전’(R.G.G.)의 편찬에도 관여를 하였다.

하지만 나치의 등장과 더불어 서서히 어둠의 그림자가 바흐의 발목을 옥죄고 있었다. 나치의 일관된 인종주의적 정책이 유대인 형통을 타고난 바흐의 활동을 그냥 방치해 두지 않았던 것이다. 그 결과 바흐는 1935년 4월 10일 당시 그가 유지하고 있었던 모든 공적인 위치로부터 떠나야만 했다. 그의 교수 지위는 곧바로 박탈되었고, 후에는 박사 학위까지도 취소(1943년)되는 불운을 맞는다.

하지만 이와 같은 독일 내에서 겪게 된 바흐의 불운은 미국 종교학계로서는 하나의 희망이기도 했다. 독일로부터 배척받기 시작한 이 외로운 학자를 미국의 벗들은 그냥 내버려 두지 않았다. 결국 바흐는 1935년 미국 브라운 대학의 초빙교수가 되어 독일을 떠나 신대륙으로 터전을 옮기게 된다. 1945년까지 종교학 과목을 강의하면서 바흐는 유럽과는 상이한 미국의 종교 환경을 직접 겪고 보면서 기존 자신이 소유하고 있었던 종교와 그것을 이해의 영역으로 담아내는 기술학으로서 종교학에 대한 시각에 적잖은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즉 정치적 압력으로 고국을 등지고 찾아 온 신대륙 미국에서 바흐는 전혀 새로운 분위기의 교회들을 만나게 된다. 유럽의 그것들과는 차이가 날 정도로 역동적이고 활발한 미국 교회들의 종교 활동에 강한 인상을 받은 바흐는 점차 종교에 있어서 경험적 요소가 얼마나 중요한지 더욱 깊게 인식하는 기회를 만나게 된다. 이후 바흐는 점차 종교학의 보다 중요한 과제는 종교의 본질에 대한 추구라고 여기게 된다. 이는 애초에 그가 주장했던 낯선 종교들에 대한 이해를 위한 기술로서 종교학을 독립시키려 했던 계획과는 많은 점에서 차이가 난다.  그는 계속해서 종교체험에 더 많은 관심을 쏟아 붓게 된다. 바흐가 보기에 종교의 본질적 요소를 이루는 것은 바로 종교체험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바야흐로 바흐의 학문세계에서 종교체험은 가장 큰 화두로 자리하게 되었다.

이 와중에 바흐는 시카고대학으로부터의 청빙을 접한다. 브라운대학의 교환교수로 재직 시 몇 차례 시카고대학으로 강의를 나섰던 것이 계기가 되어 결국 그는 시카고 대학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고, 그것은 유명한 시카고학파의 출범을 알리는 신호이기도 했다. 시카고 대학 종교학과의 주임교수로서 바흐는 규범학문과 검증학문의 가능한 연결고리로서 종교학을 독립시키는 작업을 쉼 없이 진행하였다. 그리고 이 시기 그의 활동은 『종교 사회학』(“Sociology of Religion”, 1949)이라는 저술로 결실을 맺는다.

1952년 그는 인도 ‘배로우 강연’(Barrows Lecture)의 초대를 받게 되었는데, 이 강연은 바흐로서는 종교학 방법론과 이론적 관점을 새롭게 조망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이 당시 받은 영감은 그의 안식년 동안(1954-55) 좀 더 보완되었고, 후에 이 강의록은 키타가와에 의해 “비교종교연구”(1958)란 이름으로 출판되었다.

1955년 바흐는 로마에서 개최된 7차 국제 종교학회에 참석하였고, 귀국 길에 마르부르크에 들렸다. 당시 대학 당국으로부터 신학부 정교수로의 청빙을 받게 되지만 바흐는 이를 정중히 거절하였다. 그해 8월 27일 가족들과 함께 휴가를 보내고 있던 스위스 로카르노 근처의 오르젤리나(Orselina)에서 바흐는 갑작스런 심근경색으로 영욕의 인생을 마감하게 된다. 검증적 종교학을 위해 좀 더 많은 역할을 해 줄 수 있는 한 거인의 급작스러운 사망은 당시 종교학계뿐만 아니라, 지금으로서도 매우 안타깝고 아쉬운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종교학의 독립을 위하여!

학자 바흐의 등장은 새로운 정신과학 분야로서 막 고개를 들기 시작한 당시의 종교학계로서는 너무도 반가운 일들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바흐만큼 신학, 철학 등 인근 분야의 학문들로부터 종교학을 독립시키기 위해서 투신한 학자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의 학문여정의 초반부는 사실 이 부분을 위한 투쟁이었다고 볼 수 있다. 지속적으로 그는 규범적 학문과 구별되는 검증적 학문으로서의 종교학의 독립을 위해 최선을 다해 경주하였다. 그리고 그것의 결과물이 바로 그가 교수자격논문으로 제출한 『종교학』이란 연구서이다.

『종교학』은 총 5장으로 구성되어있다. 이 책의 첫 번째 장에 ‘종교학의 독립’이라는 타이틀이 붙어있는 것만 보아도 우리는 이 책을 쓰고 있는 바흐의 의도와 그의 학문적 과제에 대한 인식을 단번에 눈치 챌 수 있다. 물론 바흐가 이 논문을 쓰기 이전에도 뮐러(Max Müller)나 틸레(C. P. Tiele) 같은 저명한 종교연구가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바흐는 종교연구에 있어서 아예 새로운 판을 짜려고 하였다. 그래서 기존의 신학, 철학, 문헌학, 민속학, 역사학 등에서 이루어지던 종교연구와는 다른 새로운 개념의 연구 방법론을 제시하며, 그러한 종교연구만을 위해 따로 전념할 수 있는 새로운 분과 학문의 독립을 끊임없이 주장하였다. 그것이 바로 검증적인 종교학이다. 이는 종교연구의 모태가 되는 기존의 규범적이고 절대적인 종교연구 분야(신학, 철학)와 해석학적인 종교연구에 전념하는 종교역사학과는 다른 새로운 길이다. 바흐가 주장하고 있는 검증적 종교학은 연구의 대상이 되는 종교들, 혹은 종교현상들을 규범적으로 조망하지도 않으며 아울러 그것에 특정한 의미부여에 몰두하지도 않는다. 다만 순수하게 검증적으로 대상인 종교현상들을 연구하며 그것을 정확히 이해, 또한 기술하는 것에 만족하는 것이 바로 바흐가 생각했던 새로운 의미의 종교학이었다. 이런 점에서 바흐야 말로 본격적인 근대 종교학의 토대를 쌓은 개척자라고 할 수 있다.

『종교학』의 두 번째 장은 그렇게 자리매김을 한 검증적 종교학의 과제에 대해서 논하고 있다. 이 장에서 바흐는 종교학의 두 가지 방향에 대해서 논하고 있다. 우선 통시적으로 종교학은 종교들의 역사적인 전개와 그것의 과정에 주목한다(종교역사학). 하지만 종교학은 순수한 역사적 시각에만 머물러있지는 않는다. 바흐가 보기에 종교학은 그것 이상을 요구한다. 즉 종교학은 역사적으로 종교들 혹은 종교현상들을 추적하지만, 그것과 더불어 또 한 가지 구비하고 있는 추적 장치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체계적인 관심’이다. 이것이 바로 종교학의 공시적 기능이라고 볼 수 있다(종교체계학). 종교학자는 종교들을 연구할 때 바로 이러한 두 개의 시각을 공유하고 있어야 한다. 우선 역사적으로 종교현상들을 추적해야 하지만, 그것들을 이해하는 체계적이고 구조적인 시각 역시 동시에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체계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는 곧바로 규범이라는 매혹적인 담을 넘어설 수도 있다. 따라서 바흐는 이에 대한 또 하나의 안전장치를 마련한다. 즉 그러한 연구를 통하여 얻어진 결과물들은 언제나 다시금 구체적인 경험을 통하여 점검되고 또 교정되어야 한다고 바흐는 본다. 여전히 바흐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구체적인 현실이었지, 그것을 초월하는 규범적인 원칙은 아니었다.

세 번째 장에서 바흐는 종교학의 한 분류로서 종교역사학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바흐가 언급하고 있는 종교역사학은 헤겔 유의 그것과는 많은 점에서 차이가 있다. 헤겔의 역사철학에서 논구되는 것과도 같이 보편적인 관계들의 구성에 관심을 두기 보다는 구체적인 종교들의 역사적 발전의 재구성을 위한 도구로서의 종교역사학을 바흐는 생각하고 있었다. 즉 그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역사에 있다고 여겨지는 궁극의 관심이나 목표가 아니라, 구체적인 종교의 생성과정이었다. 또한 바흐는 당시 많은 종교연구가들이 종교심리학적 방법에 대해 호감을 지니고 있었던 것에 반해, 그것을 거절하는 편에 서게 된다. 바흐가 보기에 종교심리학은 종교현상들에 대한 검증적 연구라기보다는, 오히려 종교철학 쪽에 가까운 종류의 것이었다. 따라서 종교학 내에 심리주의적 방법을 도입함으로 인해 생겨날 수도 있는 (종교에 대한 검증적 연구에 방해가 될 수도 있는) ‘주관주의’라는 위험한 요소를 제거하는 것이 검증적 종교학의 우선적인 과제로 인식하였고, 바로 이로 인해 바흐는 동시대 다른 종교연구가들로부터 적잖은 비판을 만나게 된다.

『종교학』의 네 번째 장은 주로 방법론적인 문제에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이 장에서 바흐가 취한 태도는 방법론 자체에 대한 이론적인 논구라기보다는 종교학과 종교철학 사이에 놓인 경계를 보다 분명히 함으로써 해결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다섯 번째 장에서는 ‘체계적인 종교학’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바흐가 보기에 지금까지의 종교학적 연구는 역사적인 방법에 너무 치중해 있었다. 하지만 독립된 학문으로서의 종교학은 그 보다 더 나아가야 한다. 즉 바흐는 이 장을 통해 역사적 연구로 인해 얻게 된 결과물들에 대한 유형적 연구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다양한 종교현상들의 역사적 결과물들, 예를 들어 기도, 의례, 황홀경, 구원 등등 다양한 수확물들로부터 그것들이 가지는 규칙성과 법칙성을 찾고 기술하는 것 역시 종교학이 무시할 수 없는 과제라는 것이 바흐의 생각이었다.

바흐는 종교학적 연구의 궁극의 목적은 종교의 본질문제에 대한 답변에 있다고 보았다.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한 만족스러운 답변을 얻기 위해서는 역사적이고 체계적인 종교연구뿐만 아니라, 종교철학 역시 자연스레 요청된다. 바로 이 점이 후기 바흐가 종교체험에 몰두하며 자신의 종교학적 작업을 검증적이 아니라, 규범적으로 몰고 가는 단서가 되기도 한다. 그만큼 그에게 있어서 ‘종교의 본질’ 문제는 반드시 풀어야 할 집요하고도 지난한 숙제 중의 숙제였다.


종교의 본질을 이루는 궁극의 체험

한국에서의 바흐는 시카고학파의 수장으로서 종교체험의 보편적 요소를 밝힌 현상학적 종교연구가, 혹은 비교 종교학자로서 기억되고 있다. 하지만 그전에 그가 얼마나 철저하게 검증적 종교학의 독립을 위해 투신하였는가를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이제 잠시 간략하게나마 독일과 미국으로 이어지는 그의 사상적 변화의 추이과정을 살펴보도록 하자.

우선 바흐의 사상을 구성하고 있는 학문적 배경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그는 신학적으로는 에른스트 트뢸치의 영향을 받고 있다. 특히 신학을 과학적인 근대학문으로 만들고자 했던 트뢸치의 시도는 바흐에게서도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다. 바흐 역시 종교학을 그렇게 만들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철학적으로 바흐는 빌헬름 딜타이(Wilhelm Dilthey, 1833-1911)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고 있다. 특히 딜타이의 영향은 바흐의 해석학적 시각에 많이 수용되고 있는데, 종교학 역시 다른 정신과학들과 마찬가지로 경험 속에 주어지는 검증적 연구 방법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딜타이의 주장은 그대로 바흐의 입장이 되고 있다. 그리고 종교사회학적으로는 게오르그 짐멜(Georg Simmel, 1858-1918)과 막스 베버(Max Weber, 1864-1920)의 영향을 간과할 수 없다. 특히 바흐는 종교 현상들의 내면 역시 사회학적 관찰에 포함할 수 있다고 본 짐멜로부터 큰 영감을 받는다. 이 점에서 상대적으로 사회 현상의 내면에 대해 소홀하게 취급하고 있는 베버는 바흐의 비난을 피해가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러한 학문적인 배경 속에서 바흐는 그의 전 생애를 통해 적어도 세 번의 변화과정을 거치게 된다. 우선 첫 번째 시기의 바흐는 무엇보다도 신학, 철학, 그리고 역사학으로부터 종교학의 독립을 이끌어내고자 했다. 이때 바흐가 취한 태도는 이들 학문들과 종교학의 학문 목적의 차이에 대한 부각에 있었다. 바로 이해를 위한 학문을 바흐는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즉 종교학은 낯선 종교들과 그 현상들에 대한 학문적인 이해를 추구하는 분과학문이다. 바흐가 바라보는 종교학은 ‘설명’을 위한 학문이 아니라, ‘이해’를 위한 학문인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시기에는 종교의 본질을 이룬다고 생각되는 종교체험의 표현양식들에 대한 연구와 그 성격의 규명에 집중한다. 따라서 바흐의 종교경험에 대한 집착은 이미 이 시기에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종교경험이야 말로 인간 공동체를 구성하는 가장 본질적인 요소로 보았다. 바흐는 자신의 학문여정의 3기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종교체험 문제에 집중하게 된다. 이제 바흐에게 있어서 종교체험은 방법론적인 출발임과 동시에 학문적 목표가 되어버린다. 즉 바흐는 종교체험의 외형적 표현들에 대한 연구가 아니라, 곧바로 종교 체험에 집중하게 된다. 이후 그는 그토록 주장해마지 않았던 검증적 방법을 포기하고 규범적인 방법을 통하여 종교체험에 접근하게 된다. 그 결과가 바로 종교체험의 유형들에 대한 그의 선험적 분석이다.

우선 바흐는 종교체험이 가지는 보편적 특성을 강조한다. 즉 인간은 어디에서든지 영원성을 체험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다만 그것이 표현되는 문화적 환경에 따라 어느 정도의 차별이 생길 수 있다고 보았다. 그렇다면 그와 같은 보편적 종교체험의 유형적 요소는 무엇인가? 바흐는 이를 4개로 요약하여 설명한다. 우선 종교체험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체험들 중 가장 궁극(ultmacy)적인 것이다. 그것은 궁극적 존재를 체험하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 다음은 전체성(totality)이다. 종교체험은 전인적인 것으로서 인간을 전체적으로 하나로 묶어주는 체험이라는 것이다. 세 번째는 강렬함(intensity)이다. 종교체험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경험들 중에서는 가장 강렬한 것이다. 따라서 진정한 종교적 체험을 경험한 이들은 모든 것을 포기하는 헌신이 이루어진다. 마지막으로 바흐는 종교체험의 유형적 특징으로서 행위(action)를 들고 있다. 종교체험은 실제적이며 또한 인간을 행동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즉 종교체험으로 인해 인간의 삶이 변화하고 그 행위도 바뀌게 된다는 것이다. 바흐는 이 모든 요소들을 가지고 있어야만 진정한 의미의 종교체험이라 할 수 있다고 진단한다.

이와 같은 종교를 구성하는 본질적 요소인 종교체험은 삼중의 모습으로 외부에 표출된다. 사상적, 행위적, 공동체적 표현이 바로 그것이다. 종교체험의 개념적 표현, 즉 신화, 교리, 신앙관 등이 바로 사상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종교들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의례나 기도, 명상 수행 등을 일컬어 행위적 표현이라 한다. 마지막으로 앞서 언급한 사상, 행위적 표현을 공유함으로써 생기게 되는 종교체험의 사회적 표현, 즉 공동체의 형성을 들고 있다.

이러한 종교체험에 대한 바흐의 규범적 탐구는 사후에 출판된 『비교 종교 연구』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바흐의 다른 논문을 통해 살펴 볼 때 바흐 자신은 이 ‘비교 종교 연구’를 체계적인 종교학의 완성으로 이해한 듯싶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바흐의 최종적인 결론은 그가 애초에 시도했던 검증적 종교학의 토대 세우기와는 전적으로 다른 모습이다. 즉 ‘비교종교연구’에서 바흐가 말하고 있는 바는 그가 교수 자격논문에서 줄기차게 주장했던 종교학의 검증적 특성을 포기하는 것이고, 그로 인해 그의 종교연구는 종교신학적, 혹은 역사신학적인 모습으로 바뀌고 말았다.

그렇다면 바흐에게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도대체 무엇이 바흐로 하여금 기존의 입장을 바꿔 그가 줄기차게 주장하고 있었던 내용과 상반되는 위치에 스스로를 서게 만들었던 것인가? 여기서 우리는 그의 진리에 대한 집착, 그리고 종교의 본질에 대한 포기할 수 없는 집념을 읽게 된다. 그리고 이와 같은 바흐의 변심(?) 배후에는 정치적 이유로 인해 찾게 된 두 번째 고향 미국에서 만나게 된 유럽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역동적인 종교 활동과 활발한 체험적 신앙생활도 적잖은 역할을 했을 것이라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러한 강렬한 인상과 종교체험에 대한 활발한 관찰은 바흐를 무척이나 조급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조급하다기 보다는 그것들은 바흐를 더욱 분명한 학문적 확신 속으로 밀어 넣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제 바흐는 빙빙 주변부를 헤맬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그가 그토록 궁금해마지 않던, 또 언제고 분명한 답변을 내리길 원했던 질문으로 직접 진입해 들어갈 수 있는 용기를 바흐는 얻게 된 것이다. 그것은 바로 ‘종교의 본질에 대한 탐구’이다.

바흐는 다양한 종교현상들 안에는 분명 그것들을 가능케 하는 본질적 요소가 똬리를 틀고 있다고 보았다. 최초에 바흐는 그것들의 외부적 표현들을 천착해 들어가며 그것들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가다보면 결국 종교를 이루는 본질적 요소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이제 그런 돌아가는 길로만 바흐는 만족할 수 없었다. 이제 그는 곧바로 종교표현의 본질적 요소를 이루는 것을 궁극적인 종교체험이라 진단하고, 이제 그 종교체험 자체에 대한 규범적 논의를 수행하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모태가 되는 주변 규범적 학문들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했던 바흐 자신이 스스로 종교학을 다시 역사신학화 혹은 종교철학화하는 아이러니를 감행하게 된다.


바흐에 대한 아쉬움, 그리고 새로운 기대

여러 모로 바흐는 아쉬운 거인이다. 분명 그에 의해 새로운 검증적 종교학의 활로가 트였건만, 그것이 조국 독일에서 꽃을 피우기도 전에 정치적인 이유로 사장되었다는 것은 몇 번이나 말해도 안타까움이 쉬 가셔지지 않는다. 이는 그의 초기 주요한 저작 중의 하나인 『종교학』의 운명만 봐도 알 수 있다. 물론 당시로서도 이 연구서의 내용을 그대로 수용하기란 쉽지 않았겠지만, 그 책은 이후 지속적으로 학문적인 영향을 주지 못하고 정치적 상황 탓에 지속적으로 학계의 외면을 받게 되었다는 것은 너무도 안타까운 일이다. 반면 미국에서의 활동은 강한 영향력을 얻게 되어 오히려 학자로서의 바흐를 대표하는 연구서들이 초기 『종교학』이 아니라 후대 미국에서의 저작들이라는 점 역시 아쉬움을 더하게 하는 부분이다. 결국 바흐는 그의 전모 중 반쪽 모습만 사람들에게 남긴 채 급작스레 세상을 뜨고 만 셈이다. 그래서 최초 그가 던진 학문적 문제 제기는 옅어지고, 바흐하면 종교체험의 유형적 특성을 밝힌 규범적 연구가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이러한 바흐의 부분적 이해는 그의 조국 독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 독일 내에서는 의미 있는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우선 꼽을 수 있는 것은 이제 고작 300여권 정도 밖에 남아있지 않은 그의 중요한 저작 『종교학』이 원본과 동일한 판으로 재간되었다는 점이다.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지 70여년이 넘어가는 지점에 새롭게 학문적 논의를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것 자체가 『종교학』이 가지는 학문적 치열함과 엄밀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1924년에 바흐가 제기한 검증적 종교학의 독립 요청은 당시로서도 매우 시의 적절했고 또 매우 정밀하고 엄정했으며, 아울러 현대 종교학으로서도 지속적으로 풀어야 할 숙제였기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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