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학 강의
2005.03.06 21:37

종교연구의 탈신화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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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연구의 탈신화화
- 종교현상학과 종교사회학

“심지어 사춘기의 감정, 소화불량이나 사교적 감정을 자각할 수 있으나 고유한 종교적 감정은 느낄 수 없다는 사람과 더불어 종교적 문제에 대해 논하기는 어렵다” (루돌프 오토)


종교사 수업이 있던 한 강의실 풍경

종교학 관련 수업을 하게 될 때 난 가장 먼저 학생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말문을 열곤 한다.

“여러분은 종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참으로 쉽고도 어려운 질문이다. 대부분 자신만의 종교를 지니고 있는 사람이라면 별반 어려움 없이 자신이 속한 종교적 전통과 선이해 속에서 여러 가지 것들을 제시한다. 주로 학생들이 내게 내어놓는 것들은 ‘믿음, 신, 경전, 교리, 찬미가, 묵주, 기도, 죽음’ 등 주로 그들에게 친숙한 종교적 대상들이나 혹은 도구들이 대부분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기도 하고, 그런 대상들을 통해 ‘종교적’인 그 무엇을 느끼고 있다는 것은 상식적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이 정도에 만족하지 못하는 나는 학생들에게 좀 더 전진해줄 것을 요청하곤 한다.

“좋아요. 그런 것‘들’은 정말 우리에게 종교에 대해서 일깨워 주고 생각나게 해주는 것들이긴 합니다. 하지만 지금 제가 여러분께 던지고 있는 질문은 ‘종교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입니다. 다시 말해 전 종교에 대한 여러분 각자의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이런 계도적인 산파술이 전해지면 학생들은 또 여지없이 다양한 종류의 대답들을 쏟아놓는다. ‘종교란 인간에게 진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혹은 ‘인간에게 있는 여러 문화들 가운데 지고의 가치를 지닌 것’이다. 개중에는 맑스의 동지들도 섞여 있어 종교에 대한 극히 서늘하고 차가운 대접을 가하곤 한다. 그리고 그들에겐 어김없이 종교는 ‘민중의 아편’일 뿐이다(그리고 사실 그런 현실적인 경우를 우리는 지금도 많이 목격하고 있다. 이 점 종교에 속한 이들이 곱씹고 반성해봐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적잖은 대답들이 줄을 서고 있지만, 대부분 자신들이 들어 알고 있는 지식과 정보 내에서 추려 정리된 것들이라 단선적이고 깊은 고민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때 몇몇 학생들은 나름대로의 계몽적 이성에 의거한 대답을 토해놓기도 한다.

“종교는 인간이 미지의 세계에 대한 나름대로의 해석방법입니다.”

오우~ 나름대로 참신한 대답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그렇기도 하다. 사실 종교학에서도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사변적 시스템’(Welterklärungssystem)들 중의 하나로서 종교를 보고 있다. 즉 종교는 인간으로 하여금 나름대로의 세계관을 구축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문화현상이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알지 못하는 세계에 대한 각자 나름대로의 해석체계라 정의를 내린 이 학생의 시도는 나름대로 근대적 종교연구의 모토에 가까운 발언을 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약간의 부추김과 격려가 끼어들면 학생은 더 신이 나서 성급한 자의적 해석을 덧붙여 강의자의 확실한 눈도장을 받고 싶어 한다.

“그러니까 말이죠, 여기에서 종교란 결국 미지의 세계, 그러니까 ‘초차연적’인 세계에 대한 원시인들의 나름대로의 수용과정에서 비롯된.....”

어이쿠! 약간의 비행기태우기가 이 학생의 경계선 지키기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사실 이 학생은 지금 좀 오버하고 있는 중이다. 물론 백여 년 전만 해도 이 학생의 언변은 대학 강의실의 학생 석이 아니라 교수 석에서 들려오던 말이었을 것이다.

사실 19세기 계몽주의의 여파로 종교에 대한 ‘신학적 주술’이 벗겨지고 근대적 의미의 객관적(?) 연구가 감행될 때 대부분의 저명한 학자들이 보유하고 있던 생각이 바로 저것이기도 했다. 즉 앞서 우리가 잠깐 살펴보았던, 계몽주의의 적자인 진화론, 바로 그 진화론의 충실한 제자들로서 근대 객관학문의 선구자들인 테일러와 마레트 모두 저 학생의 생각과 유사하게 종교를 바라보았던 것이다. 물론 그들이 그렇게 해서 종교연구자들에게 제시해놓은 ‘아니마’anima와 ‘마나’mana란 용어는 두고두고 유용한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고, 또 초기 검증적 종교연구가들의 득세에 이들은 적잖은 영향과 도움을 주기도 했다. 여하튼 그 이야기는 잠시 뒤로 미루고, 지금은 보다 더 진화론자들의 종교이해에 대한 깊이를 넓혀갈 때이다.

결코 ‘초자연적’일 수 없었던 고대인들의 세계: ‘초자연’이란 개념의 작위성

여기서 위 학생이 발설한 최종 진술에서 사용되고 있는 개념들을 차근차근 해부해보도록 하자. 우선 저 학생이 사용한 단어들 중에서 무게가 있다고 판단할 수 있는 것들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종교’, ‘미지의 세계’, ‘초자연적’, ‘원시인’ 그리고 이 단어들의 조합을 통해 이 학생이 던지고 싶은 의미는 바로 ‘종교의 기원’에 대한 것일 게다. 즉 ‘종교의 기원은 원시인들이 가졌던 초자연적인 세계에 대한 이해의 시도에서 비롯되었다’라는 일단의 가정을 아마도 이 학생은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 이야기는 사실일까? 아니 사실 여부를 떠나서, 과연 학생의 이 발언은 유의미한 것일까? 이 질문에 위한 대답 때문에 난 크게 고생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바로 그런 류의 종교기원 찾기에 매달리던 이들에게 지금으로부터 대략 90년 전 한 위대한 학자가 그의 이름만큼 저명하고 무게 있는 저술을 통하여 박력 있는 통박을 날렸기 때문이다. 그가 바로 뒤르켕(Émile Durkheim, 1858-1917)이다. 그리고 저 진화론자들의 거센 종교연구의 도전을 온몸으로 저항하며 적어낸 것이 바로 “종교생활의 원초적 형태”(Lés Formes Élémentaires de La Vie Religieuse, 1916)라는 기념비적인 연구서이다.

뒤르켕은 이 책을 통해 19세기 영국의 사회학자와 인류학자들에 의해 진행된 진화론적 종교연구를 강한 어조로 비판하였다. 책의 서두에서 뒤르켕은 종교를 초자연적인 것, 혹은 신비한 것으로 몰아가는 근대 진화론적 지식인들에 대해 날 선 비판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초자연이라는 것의 족보부터 주도면밀하게 따져 묻는다. 지금의 우리는 아주 오래 전의 그들은 지금은 우리가 쉽게 이해하고 있는 자연현상들도 제대로 설명해내지 못하는 지적으로 매우 낮은 수준의 사람들이었을 것이라 단정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매사에 경험하게 되는 현상들을 과학적 수준으로 이해하고 있지 못했기 때문에 ‘초자연적’이고도 ‘기이한’ 현상들을 만나게 되면, 그것들은 초자연적이고, 마땅히 그들 배후에는 자신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초자연적인 존재나 힘이 스며있다고 믿게 되었고, 그러한 믿음은 그들에게 종교의 길로 이끄는 지름길이 되었을 것이라 추정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것은 현대인들의 기대일 뿐이지, 원시인들은 전혀 그렇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 뒤르켕의 통박이었다.

뒤르켕은 거친 어투로 반문한다. 초자연적이라 말은 쉽게 하지만, 그 말이 있기 위해서는 ‘자연적 질서’에 대한 이해가 먼저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즉 어떠한 현상을 ‘저건 초자연적인 것이로군!'이라고 해석해 내기 위해서는 이미 자연적인 질서는 어떻게 구성되고, 어떻게 유행되고, 또 어떠한 질서를 가지고 진행되고 있는가를 파악하고 난 이후에나 가능하다는 것이다. 자연적 질서라고 하는 또 하나의 세계관을 지닌 이들에게 있어서야 초자연적이라는 현상에 대한 이해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즉 우리 같은 근대의 인간들은 부지불식간에 과학적, 수학적 세계관을 가지고 산다. 따라서 우리는 이미 세계는 톱니바퀴같은 이치에 따라 흘러가는 기계적 존재라고 인식하게 된다. 따라서 그러한 수학적 과정에 어긋나는 현상이 등장했을 때, 그러한 현상들에게 우리는 쉽게 ‘초자연적’이라는 레떼르를 붙일 수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과학적, 수학적 세계이해의 정도가 낮은 고대인들의 경우에는 비록 현대인의 눈에는 초자연적이라 불릴 수 있는 것들도, 그들의 세계관 속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무지개를 빛의 스펙트럼의 한 현상으로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고대인들이 그러한 빛의 속성이나 작동 매카니즘을 모르고 있다 하더라도, 무지개 현상을 우리가 기대하듯이 ‘초자연적’인 것이라 해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나름대로의 세계관과 시각 속에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세계를 그들의 방식대로 ‘해석’하고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뒤르켕은 진화론자들이 당시 그들의 관점과 시야를 가지고, 마치 고대인들도 자신들처럼 자연을 대했을 것이라는 극히 이념적인 소망으로 고대인들의 시각을 왜곡시켰다고 본다. 따라서 종교의 기원이 초자연적인, 혹은 신비한 세력과의 조우에 기초한다는 것은 일종의 엉터리 해석이라고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뒤르켕은 계속 말을 이어간다. 따라서 초자연이라는 사상적 결과물은 (그가 활동하던 당시로 보아서는) 극히 최근에 나타난 것들이며, 그것을 하나의 조직된 사고체계로서, 즉 특정한 현상들을 설명하는 사상적 도구체계로서 사용하기 위해서는 ‘사물의 자연적인 질서가 존재한다는 느낌, 다시 말해서 우주의 현상들이 <법칙>이라고 불리는 필연적인 관계에 의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미리>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진화론자들의 오류가 지적되는데, 그들은 세계관과 시각의 차이를 제대로 의식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즉 자신들의 눈으로 원시인 혹은 고대인들의 사고를 해석하고 싶어 했다는 것이다. 뒤르켕은 계속해서 다음과 같은 진단을 내린다. 오히려 원시인들에게는 우리가 지금은 초자연적이며, 신비하다고 여기는 현상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나름대로의 해석체계가 있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생각하듯이 ‘고대인들은 그들 생활세계 속에서 만나게 되는 (현대인들이 기술하기에) <기적적인 현상>들을 기적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현대어의 쓰임에서는 기적이라고 볼 수 없는 것들이었을 것이다. 기적이란 그들 고대인들 눈에는 초자연적인 현상이라기보다는 아름답거나 희귀하거나 끔찍한 광경이었고 놀라움과 경이를 불러일으키는 것들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원시인들은 그 곳에서 이성으로서는 파악할 수 없는 신비한 세계의 어떤 단서도 발견하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즉 세계를 자연과학적 구도 속에서 보지 않고, 고대의 존재론적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는 이들에게 (현대인들이 생각하기에) 초자연적이었을 것이라고 여겨지는 사건은 정작 고대인들의 시각에서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종교의 기원을 초자연적인 것이나 신비한 것으로 국한시켜보는 것은 문제가 있으며, 아울러 그것은 참으로 계몽된 근대인이 해야 할 작업은 아니라고 그는 보았다.  

이렇게 뒤르켕은 종교를 신비와 초자연의 영역에 묶어버리려고 하는 진화론자들의 시도를 과감하게 거부한다. 그리고 그의 논지는 계속 전진하여 종교라고 하는 것의 배면에는 오히려 또 다른 목적이 존재한다고 바라보았다. 그것은 진화론자들과 전통적인 신학자들이 봐왔던 방식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뒤르켕은 바로 종교의 ‘사회적 기능’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의도는 다음과 같은 그의 말 속에 정직하게 노출되고 있다.

“심지어는 이신론(理神論)적인 종교들 안에서 까지도 우리는 신이라든가 영적인 존재에 대한 모든 개념과는 완전히 무관한 많은 의식(儀式)들을 찾아볼 수 있다. 우선 많은 금지조항들이 있다. 예를 들면 성서는 여자에게 매달 일정한 기간 동안 따로 떨어져 살 것을 명령한다. 성서는 여자가 분만하는 동안도 이와 유사한 분리를 명한다. 성서는 당나귀와 말을 함께 매여 두는 것을 금지하며 삼과 아마를 섞은 옷을 입는 것도 금한다. 그러나 야훼에 대한 믿음이 이러한 금지조항들에 있어서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는 알 수가 없다. 왜냐하면 야훼는 이러한 금지된 모든 관계들에서 완전히 제외되어 있고 그러한 금지들에 관심을 가질 수도 없기 때문이다.”

뒤르켕의 자신만만한 목소리는 유일신 종교인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에게로 까지 향하고 있다. 그는 레위기의 정결법전을 트집삼아 개별 종교를 세심하게 살펴보면 기존 많은 이들의 종교의 본질적인 요소라고 생각해오던 신, 영혼, 영적 존재 등과는 하등의 관련 없는 개념들이나 의식들이 적잖이 자리하고 있음을 우선 지적한다. 그리고 그는 거칠게 근대인을 하나의 물음으로 몰아세운다. ‘도대체 앞서 인용한 저 조항들이 그들 신앙과 무슨 연관이 있단 말인가?’ 뒤르켕의 질문은 집요하게 이어진다. 솔직히 이야기해보자면, 사실 많은 종교전통들의 의식 속에는 그들 신앙의 대상이나 교리와는 직접적으로 만나지지 않는 요소들을 적잖이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종교의 핵심이 만약 초자연, 신비, 신, 영적 존재 등등의 것이라면 도대체 이런 것들의 개입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계몽주의 사조의 적자 뒤르켕은 이러한 질문을 근간으로 하여 종교는 공동체, 혹은 사회통합을 위한 문화적 장치로 보아야 한다고 점잖게 훈계한다. 즉 그는 종교의 사회적 기능을 잡아내고, 바야흐로 그것을 연구하는 새로운 학문으로서의 종교사회학을 계몽주의 시대 지성인들에게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또 하나의 ‘탈신화화’된 종교연구였고, 또한 종교사회학의 발단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막스 베버(Max Weber, 1864-1920)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신칸트 학파의 한 자락을 이루고 있는 화남학파의 영향권 하에 있었던 막스 베버는 역시 철저한 계몽주의의 상속자였다. 베버 역시 종교를 이해함에 있어서 도구적 이성의 그물에 걸리지 않는 것들에 천착하는 이들을 비웃었다. 그것은 구도자의 길이지 연구자요 학자의 길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일단 볼 수 있는 것에 대한 철저한 작업을 가지고 종교전통을 연구해야 한다고 보았다. 신비주의에 매몰되는 것은 오히려 인간 지성의 투명함을 막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것자체에 빠져버려 종교의 본질적인 모습마저 놓치게 된다고 본 것이다.

그래도 종교는 경험을 본질로 한다!

하지만 일단에서는 이러한 이들의 움직임에 대해 한쪽에 서서 차가운 조소의 시선을 보내는 이들이 있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들 역시 종교연구의 탈신화화를 외치며, 신학적 종교연구의 틀을 깨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즉 그들 역시 ‘변론’과 ‘설득’에만 초점을 맞춰오던 기존의 종교연구의 한계를 넘어서서 대상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그것에 대한 엄밀한 기술에 초점을 맞출 것을 중시하던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들은 초반부 사회학자들이 진화론자들에게 그리했던 것처럼, 사회학자들의 종교연구 태도에 대해 거침없는 비판을 늘어놓기 시작하였다. 그런 비판들 중의 대표적인 것이 바로 앞서 인용한 오토의 문장이다. 오토는 그의 대표적인 저작 『성스러움의 의미』서두에서 종교를 객관적으로 연구한다하면서 (오토가 보기에) 종교의 본질적 요소인 경험의 영역은 무시하는 이들에게 서늘한 논조의 조소를 보낸다. 이는 계몽주의적 지성인들에게 종교는 ‘절대의존의 감정’이라고 설교했던 그의 선배 쉴라이에르마허(F. Schleiermacher, 1768-1834)의 작업과 크게 보아 같은 선상에 있는 것이기도 하다. 여하튼 오토의 조롱은 자극적이기까지 하다. 도대체 사춘기의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 심지어 소화불량이나 사교적인 감정에 대해서는 무어라 코멘트를 날리는 사람들이 왜 종교적 감정 문제만 나오면 입을 굳게 닫고 마느냐는 그의 일갈은 종교경험에 대한 양 진영(종교현상학, 종교사회학)의 입장을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현상학적 종교연구가들의 조롱에 대해 사회학적 연구가들 역시 거의 같은 세기의 서늘함으로 맞상대하였다. 그들은 종교의 경험적 요소를 강조하는 이들에게 학자로서의 자세보다는 차라리 구도자의 길을 선택할 것을 은근히 종용하였다. 물론 꼭 그렇게 하라는 말이라기보다는 또 다른 하나의 조롱이었다. 이성의 영역에 들어올 수 없는 것을 가지고 감내라 콩내라 하는 것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인가를 그들은 그런 식으로 지적하고 싶었을 것이다.

한 문제(종교연구의 탈신화화) 다른 해결(낭만주의적 혹은 계몽주의적)

이렇듯 두 연구 집단의 갈등은 좀처럼 봉합되거나 해소되기 곤란해 보인다. 이들 분과학문들은 각각 종교를 주요한 자신들의 연구대상으로 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쪽에서는 학문이 아닌 신비주의자들의 수도 행위로, 한쪽에서는 종교체험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여 종교의 핵심적 요소를 표피적인 것으로 환치시키는 환원주의자로 냉소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이들 분과학문들의 태동에는 앞서 언급한 진화론자들의 도움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즉 이들 모두는 알게 모르게 타일러와 마레트로 이어지는 종교에 대한 진화론적 기원추적의 결과물을 자신의 주요한 학문적 모티브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쐬더블롬-오토-반 데레우로 이어지는 현상학적 종교학자들은 말할 것도 없이, 앞서 언급했던 뒤르켕과 베버에게도 그러한 타일러-마레트의 유물은 살아있는 것이다.

쐬더블롬은 종교학사에서는 ‘성스러움’(holiness)이라는 개념을 최초로 도입한 사람이다. 그는 <종교윤리 백과사전>Encyclopedia of Religion and Ethics에 기고한 논문에서 다양한 종교들 사이에 공유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실존적 체험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이와 같은 자신의 주장을 위한 논거로 쉴라이에르마허와 마레트의 사례가 제시된다. 쐬더블럼은 ‘성스러움’을 종교에서 가장 특징적인 단어로 보았다. 심지어 그는 ‘성스러움’이신(神)이라는 개념보다 더 본질적인 것이라고 보았다. 그는 종교를 규정하는 것은 단순한 신성의 현존뿐만 아니라, 그것의 마나, 힘, 성스러움 등이라고 보았다. 오토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오토는 그의 책 『성스러움의 의미』에서 종교의 기원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 정령주의적, 주술적 그리고 민중 심리적인 설명들은 문제가 많음을 지적한다. 그가 보기엔 종교의 본질적인 요소로서의 경험은 질적으로 고유한 그 어떠한 것이고, 다른 것으로부터는 추론해 낼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다. 따라서 여전히 진화론적인 위치에 있긴 하지만, 종교의 기원을 마나에서 보려했던 마레트의 경우는 기존의 종교 기원론자들과는 덜 환원주의적이고, 종교의 본질적 요소에 많이 다다른 것이라 보아 긍정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심지어 오토는 마레트의 경우 사물에 거의 가까이 근접해갔다고 볼 정도로 그를 높이 평가하였다. 이 점에서 반 델레우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그 역시 그의 저서 『종교현상학』(1933)에서 종교의 본질적 요소는 종교적 경험이며, 그것은 힘의 모습을 현현한다고 봄으로써 그 안에 녹아있는 마레트의 유산을 엿보게 해준다.

테일러-마레트의 마나론은 또한 뒤르켕과 베버에게도 이어지고 있다. 그들은 종교의 경험적 요소보다는 사회적 기능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논지 속에 어느 정도 테일러-마레트의 개념을 수용하고 있다. 뒤르켕의 유명한 ‘토템’연구와 베버의 ‘카리스마’라는 개념이 바로 이러한 수용의 흔적들이라고 볼 수 있는 부분들이다.

그리고 이들에게 해결해야 할 또 하나의 숙제가 주어졌다. 그것은 바로 역사주의의 극복이다. 19세기 후반 역사주의의 득세로 인하여 당시 서구 사회는 다양한 역사적 지식을 축적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결과로서 상대주의가 대두되었고, 이는 곧 기존 절대적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었던 종교에 대한 회의를 가져오게 되었다. 곧 이신론이 득세를 하게 되었고 이를 통해 종교는 역동성을 잃어버리고, 교양인의 관심사로부터는 멀어질 수밖에 없는 천덕꾸러기가 되어가고 있었다. 이 즈음 일단의 연구가들이 기존 마레트의 마나론을 근간으로 하면서 각자의 처한 사상적 방법론을 가지고 새로운 종교연구의 르네상스를 일으키게 된다. 바로 그 흐름이 종교현상학, 종교사회학, 종교인류학의 등장이다. 따라서 이들은 동일한 모티브와 동일한 시대적 환경 아래 서로 상이한 해결책을 내놓은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사상적 배경에는 각각 생철학과 신칸트주의가 자리하고 있었다.

먼저 종교현상학파들은 딜타이(Wilhelm Dilthey, 1833-1911)가 주창한 생철학적 시각을 가지고 종교에 대한 이해를 시도하였다. 즉 그들은 신비체험의 한 표현으로서 종교를 바라보고 있다. 그들에게 있어서 종교란 개인적 차원에서의 비합리적인 요소로 가득 찬 그 무엇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을 설명에 담아낼 수 있다고 보았다. 딜타이는 칸트의 비판철학이 보여주었던 엄밀성과 정밀함은 받아들이지만, 순수이성비판만 가지고는 인간의 세계이해를 완전히 해석해 낼 수는 없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칸트에게서 도외시 되었던 ‘역사’, ‘경험’이라는 개념을 중요한 철학적 개념으로 끌어온다. 인간은 ‘세계 내 존재’로서, 즉 ‘역사’라는 영역에 속한 존재로서 단순한 순수이성적인 작용만 아닌, 역사가 개입된 존재로서 그것을 통하여 이루어진 세계이해의 흔적들이 바로 세계관을 구성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러한 딜타이의 주장은 자연스레 종교적 체험을 강조하는 현상학적 연구가들의 주요한 이론적 토대를 형성하게 되었다.

이에 반해 종교사회학자들의 경우는 실천이성비판을 집요하게 발전시킨 화남학파의 영향권 하에서 행위 합리화의 한 근거로서 종교를 보았다. 이러한 시각의 대표자가 바로 베버이다. 그는 종교연구를 통하여 연구하는 대상으로서의 종교의 배면의 어떤 본질적인 요소나 체험 등과 같은 것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그가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행동(Verhalten)과는 다른 즉 행위자의 주관적 의미가 스며있는 행위(Handeln))에 대한 규명과 설명 작업이다. 그에게 있어서 종교란 역시 이러한 행위의 연속이며 사회학은 바로 그러한 행위의 배면에 스며있는 주관적 의미를 규명하는 것이라 본 것이다.  

결국은 많은 길을 돌아왔지만, 현상학적 종교연구나 사회학적 종교연구나 모두 테일러-마레트가 행한 종교연구의 새로운 분위기를 모두 수용하고 있다. 즉 그들은 본격적인 탈신화적인 종교연구를 감행하고 있는 것이다. 바야흐로 이들의 등장으로 인해 종교는 또 다른 의미의 복권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점차 지성인들의 시각에서, 그리고 특정 종교에 함몰되어있던 이들에게 관심의 영역으로부터 멀어지던 종교란 대상과 분야가 이들의 등장으로 인해 본격적인 근대 학문의 당당한 연구 대상들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 따라서 좀 거칠게 표현해 보자면, 종교현상학과 종교사회학은 동일한 마레트의 유산을 가지고 각각의 사상적 경향 속에서 나름대로의 종교연구 해법을 제시한 것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배면에는 낭만주의(종교현상학)와 계몽주의적 경향(종교사회학)이 자리하고 있었다.

좀 이론적인 내용들이어서 지루한 감도 없잖아 있겠지만, 조금만 더 인내하고 다음 호에서는 종교학과 종교철학의 관계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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