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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우리는 종교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 종교 정의에 대한 많은 논의들

"내가 추구해 가는 이상이란 나 자신의 신앙의 이상이 아니라 하느님 자신이요 나의 이웃 자신이다. 신앙은 영원의 일부가 아니라 영원에 대한 나의 현재의 의식이다." (W. C. 스미스)


플로로그: ‘다름’에 대한 태도들

무료한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밀려드는 지루함을 TV로 달래고 있었는데, 불현듯 재미있는 장면 몇 개가 눈 속으로 밀려 들어왔다. 프로그램의 이름이나 방송사 등 구체적인 정보는 거의 남아있지 않지만, 그때 방송되던 내용만은 내 기억 속에 또렷하게 살아있다. 그것은 거리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 거리에는 마이크와 사기로 만든 요강을 든 리포터가 서 있었다. 그리고 그 리포터는 외국인들이 많이 오가는 길목에 자리를 잡고 연신 요강에 대한 외국인들의 첫인상을 묻고 있었다. 전공이 다양한 문화권에 대한 연구와 관련이 있는지라 난 그 순간 밀려오는 졸음을 몰아내며 좀 더 그 방송에 집중하게 되었다. “이 물건이 어디에 쓰이는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리포터의 질문에 각양각색의 피부색을 지닌 이방인들은 그 색만큼이나 다양한 답변을 늘어놓는다. “도자기네요”, “와우! 매우 기하학적인 모자로군요! 멋져요”, “음.. 이거 스프 담는 그릇 아니에요?”, “아, 이건 비올 때 싣는 신발 같은데요?” 등등 경계 없는 그들의 상상력은 요강의 쓰임새를 무궁무진 넓혀놓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 어떤 이방인들도 사기로 만든 요강의 본래 기능을 알아맞히지는 못했다. 어느 누구도! 그때 내 머리를 감고 지나가는 생각 하나. "어쩌란 말이냐 이 엄청난 ‘다름의 차이’를!"

방송자체로 따지자면 시청자들에게 보다 많은 웃음을 주기위해 시작한 일이었겠지만, 나는 그 장면이 던져주는 웅변의 의미를 그렇게 녹녹하게 방임할 수가 없었다. 그처럼 문화의 차이는 넓고 크다. 요강을 경험해 보지 못한 이들은, 도저히 그 생김새와 재질만을 가지고서 그것의 정확한 쓰임새를 유추해 볼 재간이 없을 것이다. 문화는 그런 것. 경험해보지 않고 생활해보지 않으면, 자신과 익숙지 않은 타문화는 언제나 ‘다른 세계’일뿐이다. 따라서 그런 이질적인 문화와의 접촉을 위해서는 보다 세밀하고 주도면밀한 준비와 과정이 요청되며, 그것은 그 문화에 대한 정밀한 이해로부터 시작한다.

다시 우리의 현실로 돌아와 본다. 종교학에서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불교 등과 같은 세계적인 규모의 역사종교들을 보통 ‘선교종교’라 부른다. 이들 선교종교들은 고대 종교에서 흔히 보이듯이 특정 민족이나 공동체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교리나 사상적인 면에서 보편적인 특성을 보이며 아울러 포교의 대상도 특정 집단이 아닌 전 인류적 단위를 지향하고 있다. 때문에 이들을 통칭하여 선교종교라 부른다. 선교를 본질적인 특성으로 하는 이들 종교는 어쩔 수 없이 역사적 전개 과정이 선교적이고, 그것은 타문화권과의 끊임없는 ‘접촉점 찾기’라고 볼 수 있다. 그리스도교 역시 선교종교의 하나로서 속성상 끊임없이 타문화권과 접촉하고 또 대화해야만 했다. 이는 그리스도교 역사를 통해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리스도교 신학이라고 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지속적인 외부 문화권과의 만남과 대화를 통해 형성된 그리스도교적 고백과 신앙의 ‘이성적 축적물’이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그리스도교는 진보-보수, 혹은 자유주의-근본주의건 간에 타문화권과의 합리적인 접촉점 찾기는 본질상 주어진 하나의 선교적 과제로서 볼 수 있다. 더군다나 타문화권의 구성원들을 선교의 대상으로 보고 있다면, 그들이 이해하고 있는 문화적-종교적 선이해에 대한 충분한 공부와 전문적인 정보 축적은 효과적인 선교전략을 세우기 위한 필수조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요강’을 ‘국그릇’이라 평가한 외국인들의 인터뷰 내용을 보다 더 유심히, 그리고 진지하게 관찰해야 할 것이다. 만약 그것이 요강이 아니라 어느 특정 종교전통의 핵심적인 교리를 지칭하는 것이었다면, 어떤 상황이 연출되었을까? 어느 한쪽에서는 지고의 가치를 지닌 그 무엇이 때로는 국그릇으로, 신발로, 모자로 해석된다. 그리고 그런 해석을 내리는 이들이 자신들 종교의 무엇인가를 손에 들고 선교의 대상이 되는 이들에게 다른 의미의 강요를 요청하고 있다면, 선교의 대상이 되는 당사자들은 과연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 그리스도교의 고백을 타문화권에 소개하고 전하고자 하는 이들이 주목해봐야 할 대목이다.

이런 점에서 다종교사회이며, 아니 그것을 넘어 세계 종교 박람회장이라고도 볼 수 있는 한국사회에서 그것도 선교적 열정이 지구촌 어느 곳 보다도 강렬하다고 자 타천 인정받는 한국교회가 정작 타문화권에 대한 전문적인 식견을 지닌 이들의 배양에 적극적이지 않다는 것은 무언가 개운치가 않다. 어떤 점에서 서구보다도 종교학이 더욱 필요하다고 볼 수 있는 한국의 그리스도교계에 종교학 전공자가 극히 적다라고 하는 이 불안정한 그림은 이 땅의 그리스도교계가 갖는 문화적 태도의 애매함을 한 번에 보여주는 대목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선교 대상자의 문화적 토대나 그들의 전통적인 종교성에 대한 기본적인 자료와 정보마저 합리적으로 축적하지 않은 채, 요강을 국그릇이라고 우기며 도발하는 것처럼 타문화권의 가치를 자기 기준에 따라 재단하고 있는 작금 한국 그리스도교회의 모습은 극히 정상적인 것이라 장담하기에는 석연찮은 점은 없지 않을까?

혹자는 그렇게 말한다. 복음을 전하는 데 왜 다른 종교에 대한 선이해가 필요하냐고? 그리고 복음의 완전성은 선교의 대상자들을 충분히 ‘설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선교는 설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선교의 대상들에 대한 진지한 ‘이해’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구체적인 현장의 경험이 말해준다. 실제로 선교의 과정에서는 선교 대상자들에 대한 진솔한 이해의 노력과 ‘요강’을 ‘요강’이라고 말하며 다가서는 준비된 이들의 자세에서 더 큰 효과가 나타나곤 한다. 그럼 점에서 타문화권에 대한 선교는 신앙으로 그들을 정복하겠다는 일종의 제국주의적인 시각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사랑’하고 ‘이해’하려는 자세와 노력으로부터 출발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그리스도교는 종교학계의 소리에 귀를 기우릴 필요가 있을 것이다. 종교학이야말로 서로 이질적인 문화권들이 접촉할 때 상호 이해할 수 있는 다양한 정보들을 제공해주는 분과학문이기 때문이다.


몇 가지 이유 있는 오해들: 종교학의 대상으로서의 종교란?

대학에서 종교학을 가르치고 있다고 하면 사람들은 이렇게 묻곤 한다. “그럼 그 수업시간에 세계 종교 전부 다 가르치세요?” 혹은 이렇게 말한다. “그럼 ‘비교종교학’하는 거군요” 뭐 틀린 말들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정확한 것들도 아니다. 보통 종교학 수업 시간을 통하여 학생들은 많은 종교들에 ‘대해서’ 배운다. 하지만 종교학은 그렇게 많은 종교들에 대해서'만' 배우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종교학은 ‘비교적’으로 종교들을 연구하지만 그렇다고 종교학이 꼭 비교종교학은 아니다. 사실 초창기 종교학은 비교종교학이라 불리기도 했지만, 그 이후 점차 이 용어는 폐기되어갔다. 그리고 작금 현대 종교학에서는 거의 사라진지 오래이다. 그것은 이 용어가 가지는 가치 판단적 암시 때문이기도 하다. 무엇을 위한 ‘비교’일까? 그 비교의 ‘주체’는 무엇이고, 또 ‘대상’은 무엇인가? 이런 고민은 종교연구가들로 하여금 비교 종교학이라는 단어사용을 주저하게 만들었다. 사실 이러한 고민은 종교학의 역사를 주제별로 나눠보면 보다 쉽게 이해할 수가 있다. 종교학의 주제는 시기별로 다음과 같이 변천해 왔다. 초창기에는 ‘기원, 진화’(origin-evolution)의 문제에, 그리고 두 번째 시기에서는 ‘본질, 구조’(essence-structure), 세 번째 시기에서는 ‘의미와 기능’(meaning-function), 그리고 지금은 ‘총체적 다원방법’(holistic, multi-method)을 주요한 테마로 하고 있다. 이 시기들 중에서 초창기 강한 진화주의의 영향 속에서 종교학은 비교적인 종교연구라 인식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이후 점차 “종교 그 자체로!”(이는 훗설의 “사상 그 자체로!”라는 현상학적 모토에서 빌려온 것이기도 하다)의 구호 하에 종교현상학이 득세하게 되고 이제 서서히 비교 종교학이라는 명칭은 종교연구의 전면에서 물러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작금의 현대 종교학 수업을 비교종교학이라, 혹은 세계종교를 리스트화 시켜서 배우는 것으로만 생각하는 것은 극히 제한적인 지식이라는 것을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종교학은 무턱대고 세계 종교‘들’을 배운 다기 보다는 그 종교들에 대한 관찰자의 ‘자세’를 좀 더 세밀하고 지지하게 다루게 된다. 즉 종교 혹은 신앙에 있어서는 변론적인 신학과 가치론적인 철학과는 달리 ‘검증적인 시각’에서 종교‘들’을 취급해야 하는 종교학으로서는 연구의 대상에 대한 연구자들의 태도를 점검하는 것이 보다 필요한 과제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교학 수업에는, 특히 그것이 개론이나 입문을 위한 수업이라면 세계 종교‘들’에 대해서, 그리고 엄밀치 못한 종교주제들에 대한 비교작업을 배우기보다는 ‘종교’ 혹은 ‘종교들’에 대한 연구자들의 태도와 그 태도의 역사에 대해서 배우게 된다. 그래서 때론 지루하고 지난한 과정이 종교학 수업에 반복된다. 대뜸 학생들은 다양한 종교들과 신화들, 그리고 호기심 진득한 대상들에 대한 정보들이 쏟아질 것을 기대했다가, 듣도 보도 못했던 학자들과 다양한 해석학 이론들이 쏟아져 나오면 거의 기절에 가까운 한숨을 지르곤 한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은 중요하다. 이렇게 종교를 보는 ‘눈’을 제대로 점검하지 않고서는 종교학은 설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나게 되는 종교학의 첫 번째 관문에서 우리는 또다시 혼란스럽다. 그것은 바로 종교학이 다루는 ‘종교’에 대한 개념 정리 때문이다. 과연 무엇을 종교라 하는가? 이 질문을 받게 되면 즉시 사람들은 의아하게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미 우리는 종교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미 우리는 어느 종교에 대한 체험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새삼스럽게 또 종교의 개념 혹은 종교의 정의라니! 왜 종교학은 이처럼 현기증 나는 일에 몰두해야만 하는가?
그것은 종교학이 바로 서구전통에서 시작한 분과학문이기 때문에 갖게 된 태생적 한계라고도 볼 수 있다. 종교학은 서구 계몽주의 사조에 빚진 바 크다. 그리고 지리상의 발견을 통한 비 그리스도교적 종교전통들에 대한 정보의 축적에도 일정부분 의존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 변화에 따라 계몽주의적 지식인들은 그리스도교 이외의 종교전통에 대한 합당한 해석도구를 찾길 원했고, 그것의 구체화가 바로 종교학이라는 분과학문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문제는 그 이전까지 그들에게 있어서 인간의 종교적 현상을 규정하고, 지칭하는 통로는 유일하게 그리스도교뿐이었다는 사실에서 출발하게 된다. 그들은 그리스도교를 기준 삼아 그리스도교 밖의 종교들을 이해하고자 했다. 그들은 전혀 다른 상황의 종교 전통들을 일단은 그리스도교적인 용어로 담아 이해하려고 한 것이다. 즉 최초의 종교연구가들은 요강이 국그릇일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외부의 종교적 결과물들에 접근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그들의 접근은 곧 실패를 경험하게 된다. 좀 더 그들이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종교 전통들에 대한 정보와 지식을 보충해 갈수록 자신들이 국그릇이라 생각했던 것이 전혀 다른 용도의 도구임을 알게 된 것이다. 여기서 그들은 종교연구에 있어서 새로운 필요성을 만나게 된다. 즉 종교연구를 위한 새로운 ‘용어(terminology)의 구축’이다. 새 술은 새 부대를 요청하기 마련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보편적인 종교 정의의 필요성

그래서 그들은 전통적으로 사용하던 기존의 신학적 용어를 대신할 새로운 것을 찾으려 노력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그리스도교적인 외투의 벗음으로부터 시작된다. 쐬더블럼(Natan Söderblom, 1866-1931)과 오토(Rudolf Otto, 1869-1937)의 "성스러움의 의미"찾기는 이런 고민의 연장 속에 있다. 그들은 개방적인 종교연구를 위해 다분히 특정 종교적 가치에만 국한되어 있는 신학적 용어들과는 다른 보다 보편적인 개념을 확보하고 싶어 했다. 그리고 그들의 고민은 ‘성스러움’이란 용어의 부각으로 결실을 보게 되었다. 그런데 어떤 점에서 이들이 찾아낸 ‘성스러움’이라는 용어는 기존 신학에서 말하는 ‘신론’의 다른 이름이라 볼 수도 있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신(神) 개념과도 같이 모든 종교에 일반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새로운 개념으로서 그들은 ‘성스러움’을 제시한 것이다. 그들은 이 ‘성스러움’이야 말로 신이 없거나 혹은 희박한 종교전통에도 모두 포섭되는 종교의 본질적 요소를 나타낼 수 있는 용어라 생각하였다. 그래서 가급적 가치중립적이고 특정 종교전통에 얽매이지 않는 용어로서 이 ‘성스러움’이 선택되었다. 하지만 이들의 노력 역시 기존 그리스도교라는 영역을 완전히 탈피하지는 못했다. 결국 그들이 제시한 종교의 보편적인 요소로서의 성스러움도 모든 종교전통을 아우르는 일반적 용어로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이 제시한 ‘성스러움’이란 개념은 주로 셈족 계통의 종교에는 적당했지만, 그 이외의 종교들에는 적용하기 곤란한 사례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스러움과 속됨을 날카롭게 구별하는 것이 모든 종교에 있는 것도 아니며, 또한 성속의 개념을 지닌 종교라 할지라도 그 영역의 한계에 있어서는 서로 차이가 나기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리스도교적 종교정의를 넘어서고자 했던 최초 계몽주의적 종교연구가들의 시도는 실패에 이르고, 이후 계속해서 많은 종교연구가들은 자신들의 연구대상인 종교를 ‘어떻게 규정할까’의 문제로 지난한 씨름을 하게 된다.

이제 작업은 처음으로 돌아간다. 다시 종교학자들은 특정 종교에 구속받지 않는 가치중립적인 학술용어를 새로이 찾아내야만 했다. 이런 점에서 종교의 본질을 ‘종교경험’에 두고 이를 우선적으로 규명하려고 했던 요아힘 바흐(Joachim Wach, 1898-1955)의 작업은 나름대로의 타당성이 있다. 바흐는 종교라고 하는 개념을 귀납적인 연구가 아니라, ‘무엇이 종교인가’라고 하는 본질적 물음으로부터 출발하였다. 그러나 애초부터 바흐가 이렇게 종교경험에 대한 연역적 본질 탐구에 몰두한 것은 아니었다. 보통 바흐의 종교학은 크게 독일과 미국시기로 나누어 이해한다. 아직 나치의 유대인 박해가 일어나기 전 독일 라이프치히 대학의 교수였던 바흐는 주로 주변 학문(신학, 철학)들로부터 종교학의 독립을 위한 방법론 구축에 매진했던 학자였다. 그는 기존의 종교를 취급하는 학문들이 규범적인데 반해 새로운 종교학은 검증적인 성격을 지녀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래서 그는 종교경험이 종교의 본질적인 요소인 것을 인정하지만 그것을 곧바로 직시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경험의 표현들에 대한 역사적 자료 축적(종교역사학)과 그 결과물들에 대한 공시적 구조를 탐구하는 종교체계학(종교현상학)의 역할 분담을 통하여 근대적 의미의 종교학을 확립하고자 애를 썼다. 하지만 이러한 그의 노력은 미국으로의 망명 이후 급격하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유럽과는 달리 역동성을 지니고 있었던 미국의 종교 활동과 또 윌리엄 제임스를 위시로 한 종교심리학자들의 종교경험에 대한 계몽주의적 접근이 있었다. 그러한 외부 환경의 변화 속에서 바흐는 오히려 이전과는 달리 종교경험 그 자체로 접근해 들어가는 방식을 선호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제 바흐는 검증적인 종교학자로서가 아니라 연역적인 종교철학자, 혹은 종교 신학자의 길을 걷게 된다. 그래서 그는 과감하게 귀납적 방법의 결론으로서가 아니라, 규범적인 가치를 지닌 종교경험의 보편적 특징을 연역적으로 도출해 낸다. 즉 바흐는 종교경험의 보편적 요소를 4가지로 정리한다. 그것은 궁극성(Ultimacy), 전체성(Totality), 강렬함(Intensity) 그리고 행위(Action)이다. 바흐가 제시한 종교경험을 이루는 4가지 요소는 나름대로의 타당성은 지닌다. 종교경험은 궁극적 실재를 체험한 인간의 반응이라는 것, 그리고 그것은 부분이 아니라 인간의 전체적 반응이라는 것, 그리고 인간이 할 수 있는 경험 중에서 종교 경험은 가장 강렬한 것이고, 아울러 그러한 체험은 실제적인 행동으로 이어진다고 본 점에서 그렇다. 그는 이 4가지 요소를 모두 포함하고 있는 것이 바로 종교경험이고, 그것이 종교의 본질적인 요소라고 설명하였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것은 바흐 자신의 검증적 연구의 결과물이 아니라, 순수한 사유의 구조물이었을 뿐이다. 다분히 심리학적이고, 종교철학적인 그의 논의는 애초에 목적했던 ‘독립적인 검증학문으로서의 종교학’으로부터는 더 멀리 떨어진 셈이 되었다. 이런 점에서 그가 시도한 종교경험을 중심으로 하는 종교에 대한 개념 정의는 애초부터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종교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들

와덴버그(Jacques Waardenburg)는 그리스도교적인 틀 속에서 다른 종교들을 관찰하려는 시도는 종교에 대한 정의를 폐쇄적으로 만드는 것이라 보았다. 그는 특정한 시각으로 종교들을 고정시켜 이해하기보다 ‘열린 개념’으로 관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 맥락에서 그가 꺼내든 카드는 ‘상징체계로서의 종교’이다. 그는 종교를 기호, 상징체계로 이해한다. 아울러 그는 신앙인의 종교적 상징체계에 대한 해석도 종교학의 연구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와덴버그는 언어가 소통을 위해 단어들을 가지고 있듯이, 종교 역시 상징과 기호를 소통을 위한 자산으로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그는 종교가 상징체계이긴 하지만 언제나 균일하고 폐쇄적인 성격의 것이라고는 보지 않았다. 즉 동일한 상징체계라 하더라도 소통되는 지리적, 시대적, 문화적 상황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특정 종교의 엘리트들이 이해하는 것과 일반 신도들이 받아들이는 상징체계에 대한 해석은 언제나 동일할 수는 없다. 바로 그 점을 종교연구가들은 직시하고 있어야 한다고 와덴버그는 말한다. 그런 식으로 와덴버그는 공시적인 방법뿐만 아니라, 소통의 다양한 해석과정을 검토할 수 있는 통시적 연구방법의 중요성을 아울러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독일 튀빙엔 대학의 종교학 교수인 글라디고프(Burkhard Gladigow)는 기호로서의 종교는 언어적 행위뿐만 아니라 그 밖의 다른 것들도 더 포함하고 있다고 본다. 시각적 기호들, 장식들, 그림들, 몸짓들, 의례적 움직임들, 춤들이 바로 그런 것들이다. 그는 종교란 개념에 의례성이 포함된 단순한 일상적 행위도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말을 수용하게 되면 이제 종교의 교리나 심오한 사상만이 종교학의 대상이 아니라, 해당하는 종교전통의 다양한 의례들과 그것들이 실현되고 있는 일상적 공간도 종교학의 연구대상이 될 수 있게 된다. 이는 이전의 신학적 종교연구가 이념적이고, 이상적이고, 문헌비평적인 것에 머물러 있었던 것에 비해 상당한 정도의 범위 확장을 이룬 것이기도 하다. 그는 이런 식으로 이전의 본질중심적인 종교에 대한 정의에서 벗어나 ‘문화적인 맥락’ 속에서 종교의 기본개념을 찾으려고 한다.

현대 언어학의 흐름에 맞추어 종교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규정해 보려는 시도는 브레멘 대학의 키펜버그(Hans Gerhard Kippenberg)교수에게서도 잘 나타난다. 그는 현대 언어학이 추상적 기호체계보다는, 실용적인 측면에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이고 있음에 주목한다. 즉 의미론적 분석에만 치중했던 이전의 작업들과는 달리, 최근의 언어학은 실용적인 관점에서 단어의 의미는 그것의 실제적인 사용을 통해서 설명할 수 있다고 본다. 키펜버그는 이 같은 현대 언어학의 시각을 종교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규정하는데 적극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그는 종교를 정의함에 있어서 진리에 대한 문제로 논쟁을 하거나 시간을 끌 필요가 없다고 본다. 더 나아가 그는 종교의 본질에 대한 보편적인 정의를 내리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그것은 꽉 막힌 유리 병 속의 파리처럼 오직 병 내부만을 맴맴 돌뿐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는 탈출구는 찾지 못하고 마는 지루하고 기나긴 소모전과도 같은 것이다. 그보다는 오히려 사회 속에서 종교는 어떠한 ‘소통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가를 연구하는 것이 종교학의 임무라고 그는 보았다. 따라서 연구의 대상은 종교의 본질에 대한 정의가 아니라 종교의 ‘의사소통적인 능력’에 있는 것이다.

세일러(Benson Saler)는 조금 다른 시각으로 종교의 정의를 여러 문화들과 종교들 간의 유용한 범주로서 확립해보려고 시도하고 있다. 이를 위해 그는 비트겐슈타인의 ‘가족 유사성’이라고 하는 개념을 받아들인다. 종교는 보편적인 성격으로가 아니라 유사성으로 설명할 때 더 효과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그는 본다. 하나의 예로서 그는 세계의 대표적인 유일신 종교들인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에 대한 연구를 꼽는다. 이들 종교들을 일관하는 동일한 개념과 표상을 찾아내기란 용이치 않다. 하지만 유사성으로부터 접근해 간다면 이들 종교들이 지니고 있는 전형적인 모범을 잡아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식의 종교연구가 보편성을 지닌 상위개념으로서 종교를 정의내리는 것보다 효과적이고 실용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방법으로 서구의 학자들이 비서구권 민족들의 문화나 종교현상을 연구하려 할 때 우선은 그들과 서구인들 사이의 공감할 수 있는 유사성 찾기에 노력해야 할 것을 지적한다.

그리고 이미 지난 호에서 살펴보았지만, 종교 정의에 대한 유의미한 시도 중의 하나로 스미스의 인격주의적 연구방법을 들 수 있다. 스미스는 종교의 본질은 개념적인 정의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개별 신앙인의 인격적 차원에서 ‘경험’되는 것이라 보았다. 이런 점에서 그는 기존의 종교란 용어를 ‘축적적 전통’과 ‘신앙’으로 세분화시켜 이해한다. 축적적 전통이란 종교의 역사적 총체를 의미한다. 종교적 문서, 교리, 건물, 미술, 음악 그리고 신화에 이르기까지 종교전통이 역사적으로 쌓아오고 전승되는 모든 것들을 그는 축적적 전통이라 부른다. 이와는 달리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집단적이지 않다. 오직 개개인의 신앙만이 있을 뿐이다. 따라서 종교연구에 있어서 생활세계 속에서 실제적은 종교행위를 하는 개인에 대한 배려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단순히 축적적 전통에 대한 역사적 탐구가 절정에 이르렀다하더라도, 신앙생활에 매진하는 개인의 종교성을 잡아내지 못한다면 그러한 종교연구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스미스는 축적적 전통 보다는 신앙에서 종교적 내용의 보다 본질적인 모습을 보았다. 스미스의 견해에 따르면 종교의 개념화는 축적적 전통에 속하는 것이며, 따라서 신앙에 비해서는 부차적인 현상인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지금까지의 종교학이 축적적 전통에만 집착했던 것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의 각을 세운다. 종교 연구의 중심은 오히려 종교의 개인적인 측면을 포괄하는데 있다고 스미스는 보고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스미스는 종교라고 하는 단어 자체를 파기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그리고 그 자리를 ‘신앙’이란 단어가 차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스미스의 이 테제 역시 개별 종교를 서술하는 데 있어서는 별반 진보를 보이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그의 ‘신앙’이라고 하는 구분 역시 일종의 ‘본질 규명’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즉 그가 말하는 ‘신앙’ 역시 오토가 ‘성스러움의 의미’에서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종교의 본질을 개인적, 주관적 차원으로 환원시킨다는 점에서는 일맥상통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다양한 종교 정의에 대한 논의들이 암시하는 바는 무엇인가? 결국은 독단적 세계로부터의 탈출이다. 서구 중심적 사고로부터의 탈피를 의미하며, 그들이 허구적으로 구성한 오리엔탈리즘을 극복하는 하나의 과정이다. 종교학계에서 진행되었던 종교의 정의 찾기 역시 그런 연장선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최근의 종교학은 이러한 지난한 본질 찾기 놀음으로부터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다. 그보다는 종교를 연구하는 이들의 필요에 의한 작업가설적인 개념으로서의 종교를 용인하고 있을 뿐이다.  

이처럼 종교연구가들은 하나의 단어를 보다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기나 긴 논쟁의 터널을 지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히 단어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그동안 우리가 가지고 있던 ‘종교’ 혹은 ‘종교들’에 대한 제국주의적 시각에 대한 반성의 연장이라고도 볼 수 있다. 바로 그러한 일방적이고 폐쇄적인 시각을 반성하는 것, 바로 그것이 종교학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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