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학 강의
2005.02.28 13:24

종교학과 신학: 그 가까움과 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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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학과 신학: 그 가까움과 멈


난 개신교 신자이다. 그리고 종교학을 전공했다. 이 두 개의 사실관계가 내게는 전혀 큰 갈등이나 충돌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내가 독일에서 학위를 취득한 후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처음 나의 전공에 대해 전해들은 개신교 분들은 특별한 예외 없이 ‘왜 개신교 신자가 종교학을 전공했느냐?’라고 묻는다. 그럴 때마다 난 짐짓 진지한 톤으로 “목사가 수학(數學)을 전공해서는 안 되나요?”라고 반문한다. 종교학과 신학 모두 ‘종교’라고 하는 동일한 대상을 전문으로 하고 있지만 그것을 대하는 각 분야의 입장과 방법론에는 상당한 거리가 실존한다. 아마도 그러한 종교학과 신학의 상호 ‘독립성’을 난 수학이라는 변수를 통하여 설명하고 싶었나 보다. 여기에 적고 있는 길지 않은 이 글 역시 그러한 변수의 한 연장이라고 봐도 크게 무리는 아닐 것 같다.

대화 하나: 종교학의 과제

독일에서 학위 중이었을 때 난 지도교수와 종종 긴 대화를 나누곤 했다. 때로는 내가 쓰고 있는 학위논문이, 혹은 종교와 인간에 대한 각자의 견해들이 우리 대화의 중심이 되곤 하였다. 대화가 끝날 즈음이면 종종 내 지도교수는 예의 그 담백한 웃음을 길게 늘여가며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던져주곤 하였다.

“Herr Lee는 좋겠습니다. 한국에 돌아가면 종교학을 하는 사람으로서 할 일이 많을 테니까요. 독일에서는 사실 여러 종교들에 대한 관심은 많아도, 기본적으로 특정 종교 일색인지라 다양한 종교들의 세계를 탐구하는 일이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더군다나 유럽 쪽 학자들은 유럽어 이외의 언어에는 익숙지 않아 아시아권 종교들에 대한 원문 탐구에 한계도 있고요.”

지도교수의 이야기가 좀 길어질라 치면 나는 어김없이 어느 정도의 결례를 무릅써가며 말허리를 자르곤 했다.

“꼭 그렇지도 않아요. 한국의 종교계는 생각보다 ‘내용 없는 보수’가 많아서 스스로 단절적이고, 폐쇄적일 때가 많죠. 그래서 ‘상호 이해’라는 ‘의미 있는 작업’보다는 ‘상호 단절’이라는 지극히 ‘정치적인 입장’을 고수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생각보다 종교학자들의 운신의 폭이 그리 넓지는 않답니다. 아, 물론 종단이나 교파에 연루되어 있지 않는 일반 종교학자들은 좀 다른 편이긴 하죠.”

그러면 어김없이 지도교수의 희망 섞인 전망이 나지막한 톤으로 흘러나온다.

“그러니까 더 Herr Lee처럼 종교학을 하는 종교인들이 많아져야겠지요. 어쩔 수 없이 현대 사회는 다양화되고, 다변화되는데 상호 폐쇄보다는 상호 개방과 이해 쪽으로 방향을 틀 수 밖에 없어요. 결국 그렇게 된다면 언젠가 서로가 서로의 이해를 필요로 할 때 서로를 위해 다리를 놓아줄 수 있는 통로로서 종교학자들의 역할은 매우 중시될 겁니다. 독일과 유럽사회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지요. 그런 점에서 종교학자들은 다양한 문화들의 소통을 위한 통역가와 같은 존재이지요. 전문적인 통역가가 많다는 것은 오히려 그 사회와 전통, 그리고 해당하는 종교의 건강함을 위해서도 좋은 것이죠.”

대화는 보통 이 정도에서 마무리 되곤 하였다. 이 문제를 주제로 삼은 그 이상의 논의는 사실 별 의미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고 그런 식의 대화가 진행될 때마다 나는 속으로 되 내었다.

“제발요, 그렇게 되어야죠. 인생이란 싸우고 있기에는 너무 짧지요.”


대화 둘: 믿는 이들과 종교학

그 후 종교학으로 학위를 마친 개신교 목사로서 난 한국 땅을 밟았다. 그리고 인내심의 한계가 올 정도로 다음과 같은 질문을 쉴 새 없이 받게 되었다. “목사로서 종교학을 하는데 곤란함은 없나요?” “자기 종교 알기에도 바쁜데 다른 종교에 시간 투자할 여유가 있나요?” 이 정도의 질문은 그래도 좋은 분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다음의 질문은 서로에게 적잖은 타격을 가하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종교학을 전공하시면 도대체 신앙을 지킬 수 있습니까? 그거 때문에 신앙이 떨어지지는 않나요?”

이 쯤 이르게 되면, 나의 말문도 살짝 막혀 버린다.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리고 정말 종교학을 하게 되면 기독교 신앙에 문제가 생길 수 있어서가 아니라, 저런 질문을 던지는 이들이 의미하는 ‘신앙’이란 도대체 어떤 종류의 것인가라는 자괴감 섞인 궁금증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기 때문이다. 도대체 그 신앙이라고 하는 것이 어떤 것이기에, 어떤 본질을 가지고 있는 것이기에 다른 종교의 역사와 교리를 공부하게 되면 훼손되고 변질되는 것일까? 아니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리고 그렇게 해서 훼손되고 변질될 신앙이라면 애초부터 그런 것을 가지고 ‘신앙’이라 할 수 있을까? 그럼 그 명사 앞에 붙이는 ‘절대’나 ‘유일’의 내포와 가치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이런 머릿속의 난마를 정리하며 난 편안하게 다음과 같이 답변하곤 한다.

“그렇게 해서 바뀌거나 떨어질 신앙이라면 빨리 버리는 게 낫겠죠.”

적어도 믿는 이가 절대자와의 조우를 통해 얻어낸 ‘구원체험’ 혹은 ‘신체험’이라면 그것에 대한 절대적 의존과 고백은 그런 식의 도전으로 쉽게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식의 자극으로 인해 변화하거나 변질되는 성질의 것이라면, 그러한 구원체험은 진정성에 있어서 적지 않은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지적 역시 충분한 설득력을 가진다.

사실상 종교학은 그렇게 신앙의 문제에 상처를 입힐 성질의 것은 아니다. 이미 우리는 종교를 이해하는 많은 통로‘들’을 가지고 있다. ‘신학’을 위시하여, ‘종교학’과 거의 동시에 세상에 소개된, ‘종교사회학’, ‘종교인류학’, ‘종교심리학’, 그리고 ‘종교철학’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다양한 종교연구들 가운데 종교학은 환원주의적 성향이 강한 사회과학적 연구방법들을 견제하며, 인간이 가지게 되는 종교적 체험에 대한 신중한 태도를 견지하고 보다 심도 있는 인간이해를 목적으로 하고 태동한 근대 학문이다. 따라서 종교학은 믿는 이의 신앙을 좀 더 의미심장한 것으로, 그리고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관찰하기 위한 분과학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종교학은 신앙을 흔들리게 하기 위한 정보를 제공해주는 분야가 아니라, 신앙의 내용을 ‘이해’하고 ‘기술’(descriptive)하기 위한 학문인 것이다.


종교학과 신학: 그 가까움과 멈

19세기 독일인 막스 뮐러(F. Max Müller, 1823-1900)에 의해 세상에 빛을 보기 시작한 종교학이라는 학문은 분명 기존의 신학과는 많은 점에서 다르다. 신학은 특정 종교의 특정한 고백을 지키고 유지하는데 더 많은 노력과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반면 종교학은 가급적 객관적인 시각으로 인간의 다양한 문화현상 속에서 ‘종교적’(religious)이라 불릴 수 있는 것들을 검증적으로 검토하고 이해하려고 한다. 물론 여기서 종교라고 하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실존적이고, 주관적인 성격의 것을 ‘헌신’과 ‘위임’없이 객관화시켜서 볼 수 있겠냐는 반문은 자연스레 던져질 수 있다. 그리고 믿는 이 당사자의 신앙적 세계와 종교적 생활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 공동체의 일원이 되지 않고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다분히 ‘해석학적인 도발’ 역시 충분히 제기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종교학자들도 나름대로 그런 부분에 대한 해답을 위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해석학적 논의에만 주저앉아 있기에는 종교학자들의 현실인식은 좀 더 예민하고 절실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미 우리 주변에는 수도 없이 다양한 종교들이 제각각의 인간과 세계에 대한 이해들을 가지고 우리와 함께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들을 이해하고 또 탐구하기 위한 노력이 방법론적인 성찰을 위한 ‘면벽행위’보다는 더 절실하다고 느끼는 사람의 숫자가 적지 않다고 하는 것 역시 엄연한 현실이다.

여기서 긴 사설로 신학과 종교학의 차이를 논구할 마음은 없다. 하지만 몇 가지 사례들을 제시함으로 종교학과 신학이 어떻게 상호 서로의 연구에 도움이 되는 자극을 받을 수 있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 신학자들은 ‘종교적인’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종교학자들은 종교적인 전통들에 ‘대한’ 전문가들이다. 짧은 문장이긴 하나 종교학과 신학이 가지고 있는 종교연구의 입장을 극명하게 드러내주는 명쾌한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신학은 ‘고백’을 취급한다, 그리고 그 고백의 내용을 공동체적으로 규범화시키고 합리적으로 설명해내려고 시도한다. 이에 반해 종교학은 신이나 구원, 혹은 진리 그 자체에 집중하지는 않는다. 그 보다는 인간(homo-religiosus)이 시공 속에서 표현해낸 여러 문화양식들 중 ‘종교적’이라 여겨지는 ‘특정한 현상들’을 가급적 ‘검증적인 위치’에서 추적하고 이해하려고 한다.

근대적 의미의 종교학이 태동하기 이전의 종교연구는 주로 자기 전통의 종교적 신앙들을 신조화하고 교의적으로 설명하는데 큰 노력을 기울였다. 이런 식의 신학적인 종교연구는 생활세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구체적인 종교 생활과 경험에 대한 이해보다는 각 종교전통에서 주장하는 교리의 이상화에 더 매달리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정작 믿는 이들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소홀해지는 즈음, 계몽주의와 낭만주의의 영향을 골고루 흡수한 일단의 무리가 새로운 형식의 종교연구가 필요함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바로 근대 종교학의 시작이다. 이후 종교학은 기존의, 어떤 의미에서는, 조금은 화석화된 종교연구에 생동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그것은 언어학의 ‘비교 연구방법’을 종교연구의 영역으로까지 확장시킨 뮐러의 공로에 많은 부분 빚지고 있다.

비교연구가 주는 풍성하고 정밀한 해석들

종교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막스 뮐러는 그 스스로가 ‘종교학’(Science of Religion)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기도 했으며 종교연구에 있어서 무엇보다 비교 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지금으로부터 대략 130년 전에 발표한 그의 글에서, 비교연구가 언어학의 발전에 끼친 영향을 언급하면서 종교연구에 있어서도 그러한 연구 방법이 유의미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런던 왕립연구소에서 행한 강연에서 뮐러는 비교언어학의 도움으로 더욱 넓어진 히브리어 대한 이해를 하나의 예로 들고 있다. 그는 히브리어를 단순한 신적 언어로서가 아니라 고대 중근동어와의 관계 속에서 비교언어학적으로 연구하게 됨으로써 히브리어로 기록된 구약의 많은 내용들이 보다 생동감 있는 고대인들의 생각과 시선으로 해석될 수 있었음을 지적한다. 한 예로 그는 하와에게 던지는 아담의 대사 하나를 창세기로부터 인용한다.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뮐러는 이 말은 “그대는 나와 같은 사람이다”라는 현대어로 옮길 수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고대 히브리인들이 사용하는 뼈란, 단순히 물질적인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내부의 가장 본질적인 것을 지칭하는 상징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대 히브리인들은 ‘같음’을 표현할 때는 관용적으로 이 ‘뼈’라는 단어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뮐러는 히브리 성서 외에도 다양한 종교전통의 유사한 사례들을 제시하며 비교언어학을 통해 잃어버린 고대인의 상징과 종교성이 어떻게 그 묵은 때를 씻고 이전의 광채를 발현하게 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계속 해서 그는 반문하고 있다. “비교연구를 통하여 우리가 잃게 된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오히려 우리는 이러한 다양한 비교연구를 통하여 해석되지 않거나, 표피적 의미로만 축소되어 있었던, 그리고 현대어의 용례 속에만 파묻혀있던 고대인의 종교적 진술들이 가지는 본래적 의미를 보다 더 현실감 있게 이해 할 수 있게 되지 않았냐고 뮐러는 연속하여 따져 묻는다. 130년 전 한 선각자의 이야기였다.

윤리 속에 빠져버린 거룩함의 의미들

의미심장했던 종교학계의 또 다른 목소리는 1917년 루돌프 옷토(Rudolf Otto, 1869-1937)의 『성스러움의 의미』(Das Heilige)란 책을 통하여 세상에 알려졌다. 옷토는 이 책을 통해 다분히 칸트적이었던 주지주의적 종교이해와는 달리 ‘누멘적인 것’(the numinous)이 종교의 본질적인 것을 이룬다고 주장하고 있다. 근세 서구사회의 눈부신 자연과학적 발전은 당시 그리스도교계에도 적잖은 변화를 가져오게 하였다. 놀라운 속도로 확장되고 있던 자연과학적 지식과 정보는 점차 그리스도교 신앙을 특정한 영역으로 제한하려 하였고, 심지어 금과옥조처럼 여기던 그리스도교의 신조와 교리에 정면으로 충돌하는 세계관과 정보의 홍보에도 이전만큼 두려워하거나 주저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이에 반해 당시 교회는 이 같은 자연과학의 도전에 효과적인 방어책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미 계몽주의가 극성기의 영향력을 확보해가던 당시는 갈릴레오가 활동하던 세계와는 분명 달랐기 때문이다. 이런 격동의 시기에 칸트(I. Kant, 1724-1804)는 양쪽 분야의 책임 있는 해결사로서 등장하게 된다. 정교한 비판철학을 통해 이루어진 ‘본체계’와 ‘현상계’의 구분, 그리고 도덕적 요청의 영역으로 한정시킨 종교의 세계는 당시 팽창해 가는 과학적 지식과 그리스도적 신앙의 충돌이라는 시대적 문제의 해결을 위한 좋은 방책이 되었다. 현상계에 대한 우월권을 얻게 된 자연과학계는 이제 교회에 의한 이념적, 정치적 견제 없이 자유롭게 자신의 영역을 확장할 수 있게 되었고, 그리스도교계 역시 ‘나름대로는’ 더 의미 있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 본체계라는 마지노선을 자신의 고유한 영역으로 할당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칸트식의 해결은 종교를 도덕적인 이해로 국한시키는 또 다른 부작용(?)을 수반하게 되었다. 이런 맥락 속에서 계몽주의적 세례를 받은 근세의 서구 지성인들은 종교를 더욱더 주지주의적이고 도덕주의적으로 해석하게 되었다. 그리스도교가 도덕과 윤리의 종교로만 고착되는 순간이다. 이후 사람들은 ‘거룩함’을 ‘도덕적’인 것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해라!’(레 11:45)는 명령 역시 우리의 ‘도덕적 온전함’을 요청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지금도 많은 그리스도교 신앙인들은 하느님의 명령대로 거룩하게 살 것을 다짐하며 윤리적인 덕목들을 떠올리고 있다. ‘거짓말 하지 말아야지, 사기 치지 말아야지, 나쁜 짓 하지 말아야지’ 등등의 다짐을 뒤로 하며 우리가 온전한 분이요 절대적인 분이라고 고백하는 하느님을 그 스스로 인간적 윤리의 공리 속에 제한하는 또 다른 ‘불경’(不敬)을 저지르고 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하느님은 그런 식의 제한으로 구속되는 분도 아니실 테고, 그런 식의 정의로 규명되는 존재는 더더욱 아닐 것이다. 그 분은 분명 인간의 상황적인 도덕적 규범 그 이상의 존재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칸트의 집요한 공식대로 우리는 여전히 도덕적인 요청 속에 우리 신앙의 대상자를 가두고, 또 한편으로는 신을 요청의 영역으로만 제한시켰다 하며 칸트의 불경함을 질책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 세기 전의 유럽사회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이런 ‘종교다움’을 윤리적인 것으로 해석하고 있는 유럽의 그리스도교계에 옷토의 『성스러움의 의미』는 신선한 파장을 불러왔다. 옷토는 종교적 체험에 있어서 ‘비합리적 요소’의 중요함을 재차 강조한다. 그는 절대자 혹은 초월적인 존재를 체험함으로써 얻어지는 도덕과 윤리의 영역을 넘어서는 비합리적인 요소가 ‘거룩함’ 혹은 ‘성스러움’을 이루는 보다 더 본질적인 것임을 천명한다. 옷토는 거룩함이란 도덕적 요소에만 국한시켜 해석해서는 안 되며 그 이상을 넘어서는 것으로 봐야한다고 주장한다. 옷토는 거룩함, 혹은 성스러움이란 절대자를 조우함으로써 느끼게 되는 종교적 체험자의 ‘피조물적 감정’을 일컫는 다고 본다. 그는 이러한 감정을 ‘누멘적 감정’ (das numinöse Gefühl)이라고도 부른다. 이렇게 해서 얻어진 성스러움이란 일종의 ‘종교적 선험성’으로서 ‘자류적’(自類的, 독자적인, sui generis)인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 그는 보고 있다. 물론 작금의 현대 종교학계에서는 옷토가 보여준 이런 유의 작업을 신랄하게 비판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그의 작업은 종교학의 검증적 성격을 무시하고 철저히 연역적인 방법에서 성스러움, 혹은 거룩함을 분석했기 때문이다. 더 심하게 비판하는 쪽에서는 옷토의 작업은 종교학을 문학으로 환치시키는 일이라고 까지 힐난한다. 물론 일면 그런 비판은 타당하다. 하지만 옷토 그 자신이 종교학자로서기 보다는 신학자로서의 자의식 속에 자신의 연구 활동을 지속했다는 사실이 그런 비판의 강도를 조금은 누그러뜨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옷토는 근대적인 의미의 종교학자는 아니다. 하지만 종교학적 시각을 신학에 많이 접목시킨 대표적인 종교 신학자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여하튼 그런 세세한 논의는 뒤로하고 여기서 옷토가 발굴한 성스러움의 의미를 가지고 앞서 인용한 레위기의 이야기를 재음미해보면 우리는 보다 더 생생한 성서의 음성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해라!’는 신의 명령은 도덕 완벽주의로의 전진이 아니라, 신을 온전하게 체험하라는 말로도 해석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즉 옷토의 견해를 따르자면 이 구절은 하느님 체험에 대한 독려로도 읽혀질 수 있는 것이다. 주지주의적이고 도덕적인 교리해석에만 매달려있었다면 얻어낼 수 없었던 생동감 넘치는 성서이해가 옷토의 종교학적 고민을 통해 우리에게 선물로 주어지게 된 것이다.

명사로서의 종교 혹은 형용사로서의 종교

종교학이 신학계에 던져준 또 하나의 화두는 바로 캔트웰 스미스(W. C. Smith, 1916-2000)로부터 나온다. 1962년 그는 의미심장한 연구서 하나를 세상에 내어 놓는다. 바로 『종교의 의미와 목적』(The Meaning and End of Religion)이라는 책이다. 이미 종교학계에서는 고전이 되어버린 이 책에서 스미스는 종교란 단어의 본래적 의미에 대한 세밀한 어원분석과 그 역사적 용례에 대한 설명을 소개하고 있다. 그는 종교란 단어는 ‘명사’가 아니라 ‘형용사’로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본래 종교란 단어는 객체화되고 실체화 된 외부의 역사적 전통 조직체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신앙적 경건함’과 ‘절대자에 대한 성실한 태도’를 지칭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스미스는 종교란 단어가 ‘외부적 특정 신앙적 조직체’라는 뜻으로 전용된 것은 17-18세기 이후라고 본다. 당시 몇몇 종교집단간의 치열한 갈등과 충돌, 그리고 계몽주의적 주지주의의 득세, 아울러 지리상의 발견 이후 쏟아져 들어오는 유럽 이외 지역에 현존하고 있었던 비기독교적인 종교적 전통들에 대한 정보로 인하여, ‘종교’란 단어는 점차 객체화되어가고 특정한 교리와 전통을 공유한 폐쇄적인 공동체 집단을 지칭하는 것으로 사용되어졌다는 것이다. 그 후 우리는 불교, 유교, 도교, 힌두교, 이슬람교 등과 같이 독립되고 객체화된 종교개념들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사실 이러한 종교전통들에 대한 명칭은 철저히 서구 중심적이며, 실상 그러한 명칭이 지칭하는 구체화되고 실체화된 종교전통이 현존한다고 보지는 않는 것이 보다 검증적인 설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슬람교는 예외로 한다 하더라도, 힌두교 같은 명칭은 서구인들에 의한 인도의 다양한 종교문화전통을 지칭하기 위한 잠정적이고도 작위적인 이름의 대명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말은 인도 문화 전통 내에서 힌두교라 불릴만한 공통적인 그 무엇은 존재치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힌두교는 특정 종교집단에 대한 명칭이라기보다는 인도의 종교 전통과 역사 전체를 아우르는 포괄적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하튼 스미스의 이 지적은 고스란히 ‘그리스도교’(Christianity)라는 명칭에도 효력을 발휘한다. 스미스의 연구에 의하면 서구사회에서 조차 그리스도교라는 명칭은 18세기 이후에나 뚜렷하게 등장하고 있을 뿐, 이전에는 그리스도교라는 명칭보다는 ‘그리스도적 경건함’(christian piety or faith)이 종교란 단어 속에 포함되어 있었다고 말한다. 이런 스미스의 지적은 물상화(物像化, reification)된 종교로 인해 우리가 잊고 있었던 보다 본질적인 종교적 가치를 찾게 해주었다. 바로 신앙(fides)이 그것이다. 만일 그리스도교에서 스미스 말을 충분히 수용한다면,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교라고 하는 조직체의 일원이기에 앞서, ‘그리스도적 신앙’의 고백자들이 되어야 한다. 바로 이 미묘한 차이를 느끼게 해주는 것, 그것은 신학자들이 종교학자들로부터 얻어낼 수 있는 많은 열매들 중의 하나일 것이다.

이처럼 종교학적인 논의는 경우에 따라서는 전혀 다른 영역의 신학에도 꽤나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이러한 종교학적인 주제와 논의가 적절히 수용되었다면, 한국의 그리스도교는 보다 풍성하고 역동적인 ‘한국적 신학’을 가질 수 있지 않았을까 라고 추측해 보는 것은 정도를 많이 넘어서는 것일까?


할 일들: 종교다원주의 혹은 다종교 사회?

논의가 이 정도 진행되면 ‘당신들은 종교다원주의자가 아니냐?’란 질문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아울러 그렇다면 ‘종교학은 종교 간의 대화를 위해 투신하는 분과학문이냐?’라는 질문도 덧붙여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위의 질문들은 대부분 가치론적 판단이 전제되어있는 것들이다. 사실상 종교학자들은 종교다원주의자라 부를 필요도 또 그럴 대상이 된다고 보기에도 좀 애매하다. 그들은 종교를 연구의 대상으로 볼 뿐이지,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 역시 자체적으로 따르고 고백하는 종교전통이 있을 수 있겠지만, 종교전통과 현상들에 대한 연구자로서의 자세만큼은 중립적이기 위해 애를 쓴다. 따라서 종교학자들은 종교다원주의자라는 기준으로 단정 짓기에는 전혀 다른 영역에 속한 이들이라고 봐야한다.

그리고 종교 간의 대화를 위한 분과학문인가라는 질문 역시 마찬가지이다. 종교학자가 종교를 연구함에 있어서 종교 간의 대화를 지상의 과제로 미리 전제하고 임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이 점에서 종교학자는 종교 신학자나 종교 철학자와는 분명 다른 길을 걷고 있다. 그들은 자신이 검증적으로 검토하고 분석하고 이해한 종교전통을 그 전통에 해당하는 믿는 이들과 더불어 제 3자에게까지 이해 가능한 언어로 서술하고 정리해주는 역할에 만족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대화의 과제는 해당하는 종교전통의 당사자들의 몫이다. 그리고 종교다원주의 역시 해당하는 전통의 종교 신학자들이 선택할 지극히 가치판단적인 영역의 것이다. 종교학자들은 이 부분에 있어서는 최소한의 자유로운 운신을 보장받아야만 한다. 그런 이념적인 레테르로 종교학자들을 구속시킬 이유는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종교학자들은 가급적 중립적인 위치에서 각각의 종교전통에 속한 이들이 필요로 하는 정보와 자료를 축적하고 정리할 뿐이다. 그리고 그 자료들에 대한 이용권은 독점적인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보장된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사회에서 종교학의 필요성은 크게 부각될 수 있다. 왜냐하면 한국사회는 말 그대로 ‘다종교 사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종교 사회라는 구체적인 현장 속에서 한국사회의 문화적 토양을 읽어낼 수 있는, 배타적이고 독선적이지 않은, ‘또 다른’ (alternative) 시각과 전문적인 길이 그리스도교 자체 내에는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그리스도교가 한국 사회에 지속적으로 뿌리를 내리고, 또 자신의 선교적 사명을 적절하게 실현시키기 위해서라도 현 그리스도교가 서있는 토양과 전통에 대한 정확하고 심도 있는 이해는 필수불가결한 전제조건들이다. 어설프게 피해갈 수 있는 영역의 것이 아니라, 보다 더 적극적으로 한국 사회의 다양한 문화와 전통들에 대한 전문적인 정보들을 축적하고 정리해줄 인재들을 키우고 확보하는 것이 작금 한국 교회가 가져할 의무들 중의 하나인 것이다. 이것은 종교다원주의 신학이 옳으냐, 그르냐와 같은 정치적인 논의로 해결 될 성질의 것이 아니라, 작금의 분명한 현실적 진단이고 미래의 과제이다. 사실 안타까운 부분이긴 하지만 한국의 그리스도교계는 지금까지는 주로 이웃종교와의 대화에 대한 정서적 열망에 치중했지, 이웃종교들에 대한 전문적이고 객관적인 정보 축적과 정리, 그리고 그 정보들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기술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했었다. 정치(精緻)하고 엄밀한 정보에 대한 이해와 분석이 전제되어있지 않은 다분히 정서적이고 이념적인 ‘대화지상주의’는 오히려 종교 간의 적절한 공존을 위해서도 유익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그 보다는 보다 더 성실한 상호 이해의 단계가 지금 한국 그리스도교가 이웃 종교들에 대하여 해야 할 일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그런 점에서 한국 교계는 보다 더 전문적인 종교연구가를 양성할 필요가 있다.

생각해본다면, 그리스도교 내에서 종교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가들이 있다는 것은 한국 사회에 있어서는 더 큰 장점으로 작용하지는 않을까? 세속 사회에서도 다양한 문화권과 언어권의 소통을 위하여 전문적인 통역인을 양성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교계 역시 다양한 이웃종교들에 대한 준비된 통역요원들이 필요하지 않을까? 전문적인 통역요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이루어진 지금까지의 한국 교계의 종교간 대화는 지극히 제한적인 ‘몸짓 대화’에 멈춰 서있었던 것은 아닌가?

종교학은 종교 간의 ‘통역’을 위한 학문이다. 상호간 관심이든, 아니면 어쩔 수 없는 필요에 의해서든 이웃 종교들에 대한 정보축적이 필요할 때, 통역관으로서 종교학자들의 역할은 더욱 중시될 것이고, 바야흐로 그런 시대에 이미 우리는 와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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