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기시평
2009.03.18 09:52

왕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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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한달 전 한국 가톨릭의 큰 어르신인 김수환 추기경께서 87세의 나이로 선종하셨습니다. 한국 사회는 그 이후 매우 이상할 정도로 가신 분에 대한 추모의 열기를 더해갔습니다. 물론 이 현상에 대하여 각종 미디어는 나름대로의 해석과 진단을 내립니다. 당시 내려졌던 진단의 거개는 "한국 사회에 큰 어른이 없다. 따라서 그나마 어른 역할을 하시던 분의 가심이 국민들에게 큰 아쉬움과 안타까움으로 번지게 되고, 그것이 거대한 추모 물결로 이어졌던 것이다"라는 것으로 정리되곤 했습니다.

물론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요. 그리고 충분히 그렇게 읽힐만한 구석도 있습니다. 가신 분께서 돌아가시기 직전에는 이념적으로 좀 편향된 발언을 하시고, 균형잡힌 비판적 시각도 좀 잃은 듯하여 특정 계층의 인사들로부터는 과히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지만, 어려운 시절 그분이 보여주신 행위의 올곧음과 일관된 의지 천명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무게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여 저는 가신 분에 대해서는 가급적 언급을 줄이려 합니다. 제가 그분의 삶을 일일히, 그리고 낱낱이 캐어묻고 다닌 적도 없고, 또 이전부터 그분을 흠모하여 일생의 롤모델로 삼은 것도 아니어서, 사실 그분에 대해서 제가 아는 지식이라고는 그분의 생김새와 이름 석자 정도입니다. 오히려 이 즈음 제 관심의 구심점이 되는 것은 그분의 선종 후 보여준 한국 사회의 '일탈'적 모습이다.

분명 한국은 가톨릭 국가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추기경의 선종 후 보여준 한국 사회의 모습은 가톨릭 국가에서도 나오기 힘든 정도의 '몰입'이었습니다. 연인원 40만명이 넘는 추모인파, 자정이 넘어서까지 줄어들지 않는 추모 행렬, 연일 방송과 언론에서는 그분의 삶을 추적하느라 메인 뉴스의 상당 시간을 할애하고 있었고 각지의 유력인사들은 그분의 주검 앞에 마지막 눈도장이라도 찍어야 하는 모양새로 추모 행렬에 끼어들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언론과 방송과 사람들은 또 다시 앵무새처럼 조아립니다. "한국에 워낙 큰 어르신이 없어서..."

근데요.. 천상 비딱이일 수 밖에 없는 제 시선에는 그런 사회적 현상에 대한 진단어구가 영 마뜩지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속에서는 이런 생각이 스물스물 고개를 처들기 시작했지요.

"큰 어르신이 없기는... 당신네들은 어른을 찾은 것이 아니라.. 왕을 찾았던 게지.."

사실 따지고 보면, 추기경 정도의 삶을 산 사람은 부지기수입니다. 또 우리 사회에 어른 역할을 하던 분들도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사라진 어른들의 모양새도 이름도 좀처럼 기억하지 않습니다. 아니 기억해 내려고 애조차 쓰지 않습니다. 왜냐고요?

그들은 그냥 어른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추기경처럼 왕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아서이지요. 몇몇 개신교 신자들은 이번 추모행렬의 거대함에 마냥 부러운 눈길을 쏟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개신교에 가신 분에 비할 '어르신'은 또 없는지 고개를 두리번 두리번 합니다. 그러면서 '사람'을 찾고, '어른'을 찾는 것이 아니라, 꼭대기에 서있는 '왕'을 찾고, '임금'을 찾고, '황제'를 찾습니다.

저는 이 점이 영 못마땅합니다. 예를 들어 가신 분이 추기경이 아니었다면, 그리고 인구 10억의 세계 최대 국가 중의 한 구역 수장으로서의 책임을 지고 있는 꼭지점에 서 있었던 분이 아니었다면, 그리고 47세의 최연소 나이로 추기경의 위치에 오르지 않았다면, 그 이후 지속적으로 언론의 중심에 서 있으면서 어느 누구보다도 많이 사람들에게 홍보되지 않았다면.. 그분의 삶을 우리 사회는 얼마나 추적했고, 또 알아 볼 수 있었을까..

그러면서 또 우리 사회는 앵무새처럼 읊조립니다.

"우리 사회에 어른이 없어서..."

그런데 제 눈에는 우리 사회에 어른이 없는 것이 아니라, 어른을 찾을 수 있는 '눈'이 없는 것은 아닌지 매우 궁금해집니다.

이 점에서 한국 사회는 여전히 '왕조국가'입니다. 북쪽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남쪽의 평균적 시민의  에토스에서도 여전히 왕정은 무너지지 않은 견고한 간성같아 보입니다. 개인화된 시민들의 자의식에 기초해 이룩된 계몽주의적 시민사회가 아직 한국에서는 요원하고, 먼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다보니 사회적 시선은 언제나 집단을 향해, 그리고 그 집단의 수장을 향해 주목되고 집중되기 마련인가 봅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추기경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한국 사회는 왕의 승하를 슬퍼하는 왕조국민들의 모습과 매우 닮아있습니다. 구태여 구석구석에 숨어있는 '어르신들'을 찾아내는 번거로움보다는 승하한 왕의 주검 앞에 큰 어르신의 이데아를 덧 씌우고 싶었던 것이 우리 사회의 한 욕구가 아니었는지 매우 궁금해집니다.

일전에 저는 <기독교 사상>에 한국에서 가장 큰 종교세력은 <집단주의적 속성>은 아닌가라고 진단을 한 적이 있습니다. 작금의 모습 역시 그러한 제 판단에 큰 변화를 주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사람과 사회를 읽는 어쩌면 '일방적'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 이 집단주의의 큰 질고가 언제쯤 한국 사회에서 떠나 줄른지 오늘도 제 주 관심은 오히려 거기에 있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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