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카르트와 뉴턴은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습니다. 1596년 생인 데카르트에 비해 뉴턴은 1643년 생으로 한 세대 정도 늦기는 하지요. 흥미롭게도 두 사람 모두 <원리>(Principia)란 책을 펴냈습니다. 먼저 데카르트는 <철학 원리>(Principia philosophiae, 1644), 그리고 뉴턴은 <자연 철학의 수학적 원리>(Philosophiae Naturalis Principia Mathematica, 1687)란 책을 썼습니다. 40 여 년의 시차로 출간된 두 사람의 책은 그런 점에서 묘한 상관 관계 속에 있다고 봐야 할 것이고, 무엇보다 뒤에 책을 낸 뉴턴이 데카르트를 심하게 '의식'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당시 유럽 지성계는 데카르트라는 거인의 체계 위에 서 있었습니다. 그걸 한 세대 후배인 뉴턴이 뒤집으러 기를 쓰고 있는 중이었구요. '질량을 가진 존재는 모두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고 생각한 뉴턴은 우주 천체의 운동을 데카르트보다 훨씬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의사이자 뛰어난 과학자요 철학자였던 데카르트는 지동설을 수용하며 천체의 안정적인 움직임을 에테르라는 용매를 통해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그냥 쉽게 비유하여 해와 달, 그리고 뭇 별들 모두 에테르라는 액체 같은 존재 위에 둥둥 떠다니는 존재로 이해한 것입니다. 이런 설명 방식은 만유인력을 몰랐던 그 시절 입장에서는 천쳬의 움직임을 가장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방식이라 생각했을 겁니다.
우주는 에테르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 위를 수영하듯 온갖 별들이 떠다니고 있으며, 그 부양에는 일정한 규칙이 있어 서로 충돌하거나 간섭하지 않고 우주는 기묘한 질서를 유지하고 있다는 생각.. 그것이 당시 가장 과학적인 세계 이해였습니다. 허나 거기에 뉴턴의 만유인력은 매우 미신적인 도발이 됩니다.
아니 허공 위에 저 엄청난 덩치의 별들이 '떠' 있다니, 그리고 서로 끌어당기는 힘의 균형 속에 타원 형태의 회전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고 있다니!
이걸 어떻게 믿으라고 하는 것인지.. 당대 학인들 눈에 뉴턴의 우주관은 마녀의 그것과 다를 바 없었을 겁니다. 저 뭇 별들을 떠 받치는 용매가 있는 것도 아니고, 허공 속 별들의 유영이라니! 이런 미신을 케임브리지 대학의 수학자가 떠들어 대다니!! 이 새파란 애송이가 거인 데카르트의 저 합리적 설명을 뒤집으러 하다니!
이런 발칙한!!!!
예, 뉴턴은 발칙했죠. 그러니 한 세대 전 위대한 사상가요 과학자의 책을 패러디했겠죠~
<철학 원리>를 넘어서는 <자연 철학의 수학적 원리>~
그렇게 뉴턴의 패기는 데카르트를 정조준했고, 결국 그가 제시한 만유인력이 고전 역학의 기준이 됩니다. 뉴턴은 에테르라는 용매 위 천체의 운행은 종국엔 마찰력때문에 멈춤 현상이 수반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매우 수학적인 판단을 한 뒤였기에 그의 주장을 굽힐 일도 없었겠죠~
동시대 사람들에게 뉴턴은 허공에 별들이 떠다닌다는 주장을 한 미신적 존재였을 테지만, 지금은 고전 역학의 아버지라 칭송되고 있지요.
과학이 미신이었다가, 다시 미신이 과학이 되는 지점입니다. 그러니 지금의 '생각'에 너무 집착하지 마세요. 지금의 생각이 때론 과학이나 언젠가 미신이 될 수도 있으며.. 지금의 미신이 훗날 적확한 과학의 이름으로 우리 앞에 서 있을 수도 있거든요.
보다 탄력적인 생각을 갖고 세계를 응시하면, 보지 못했던 많은 것을 찾을 수 있을 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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